▲ 시즌2로는 조오오오금~ 할만 해진 디아블로4
<이미지 출처 : 블리자드 홈페이지>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라.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디아블로 4 이야기다. 모두들 11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디아블로 4에 아주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디아블로'라는 이름값 때문에. 더 들어가면 핵 앤 슬래시의 교과서이자 전설의 게임인 디아블로 2를 아직도 잊지 못해서다. 디아블로 2는 리마스터까지 나올 정도로 디아블로 시리즈 중 가장 흥행한 게임이었다. 화끈한 전투, 낮은 진입장벽, 그리고 레전드 아이템의 가치 덕분에 별생각을 하지 않고도, 또 생각을 하더라도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그런 디아블로 2를 더욱 즐겁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글라이드 API를 지원하는 그래픽카드. 3Dfx의 VOODOO 시리즈다. 정말 짧은 시간, 전세계 PC 시장에 미친 전설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VOODOO를 추억해본다.
그냥 게임 성능에 미친..... 3Dfx VOODOO 1의 탄생
1996년 10월 1일 3Dfx는 VOODOO 1(이하 부두 1)을 출시했다. 참고로 부두 1은 그래픽카드는 그래픽카드인데, 정확히 말하면 3D 전용 가속기였다. 2D 그래픽카드가 붙어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부두 1을 장착하고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 3Dfx Voodoo1 4MB EDO RAM PCI A-Trend
<이미지 출처: classicvga.com>
굳이? 이렇게까지? 물론이다.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3D 게임 API 글라이드. 글라이드는 부두 시리즈에서만 가능했다. 그 글라이드를 적용하면 3D 게임 성능이 놀랄 만큼 상승했다. 3D 대전격투게임 '투신전'을 예로 들면 엔비디아 NV1 2200, 매트록스 미스틱, 3D 블라스터 PCI 등이 30프레임도 찍지 못했는데, 같은 조건에서 부두는 시원하게 30프레임을 달성했다. 그것도 그래픽 품질이 뛰어난 상태로 달성한 30프레임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사이버펑크 2077:펜텀 리버티 4K 해상도에서 100 프레임을 찍어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RT, FSR 모두 끈 울트라 옵션에서 말이다.
▲ 3D Acceleration Comparison Ep13: Battle Arena Toshinden on 3DFX / 3D Blaster / Mystique / NV1
<영상 출처: RetroCompaqGuy>
이 글라이드를 지원하는 부두 1은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부두 1은 1995년 엔비디아가 최초로 선보인 NV1을 완벽하게 제압했고, 이후 엔비디아가 다시 선보인 리바 128마저도 KO 시킨 것이다. 당시에는 지상파 TV가 초당 30프레임이기에 그게 고사양 게임의 기준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부두 1은 CPU와 상관없이 그냥 기본으로 30프레임을 뽑아냈다. 앞서 언급한 투신전에서도 경쟁사들의 경우 저사양 CPU를 장착하면 프레임이 급감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두는 이와 상관없이 30프레임을 뽑아냈던 것이다.
▲ 엔비디아 최초의 그래픽카드 NV1. Diamond EDGE 3D 2120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됐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렇다고 해서 부두 1이 무적은 아니었다. 다른 그래픽카드에 비해 화면이 뿌옇게 흐려지는 상황이 잦았다. 부두 1이 성능을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뿌연 색감에 적응할 수 없던 사람들은 화질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매트록스 계열 그래픽카드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3D 성능은 나락이었지만...
악연의 시작, 3Dfx 부두 2 vs 엔비디아 리바 TNT
▲ 별볼일 없었던 부두러시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부두 1은 성능만 놓고 보면 딱히 대체재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냥 핵 쓰는 반칙 같았았던 부두 1은 늘 천하통일 코앞까지 올라갔지만, 참을 수 없는 뿌연 화질이 발목을 계속 잡았다. 그래서 따로 2D 비디오 카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말로는 2D 비디오 제어를 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를 선보였다. 이른바 Voodoo Rush(이하 부두 러시). 1997년 4월 등장한 부두 러시는 그래픽카드를 한 장만 꽂으면 되니까 편할 것 같았지만, 실제 체감 성능는 부두 1에 비해 낮았다. 또한, 2D 화질도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물로켓처럼 빠르게 사라지고 말았다.
▲ 최고의 그래픽카드였던 부두 2. SLI 케이블이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그 이후 1년 남짓 시간이 흐르고 1998년 3월이 되어서야 VOODOO 2가 등장했다. 라이벌 엔비디아는 1998년 6월에 RIVA TNT(이하 리바 TNT)를 선보였다. 3개월 텀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됐기에 두 그래픽카드는 어쩔 수 없이 자강두천, 1:1 맞짱을 뜰 수밖에 없었다.
▲ 훗날 부두2 SLI 구성으로 2004년 게임인 둠3를 구동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영상 출처: David>
성능만 놓고 보면, 다시말해 리바 TNT가 사용할 수 없는 부두의 트레이드마크인 글라이드만 빼고 보면 두 그래픽카드의 성능은 비슷했다. 리바 TNT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밀고 있었던 API, 다이렉트3D, OpenGL 3D에서는 부두2에 못지않았다. 사용자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부두 2를 막을 수는 없었다. 부두 2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그래픽카드이자 당시 기준으로는 미친 폭주 기관차와도 같았다. 시대를 한참 앞서갔던 것이다. 비결은 바로 부두 2 그래픽카드 2장을 연결해 사용하는 SLI 기술! SLI는 화면을 분할해 두 장의 부두 2에 각각 분담시키는 구조로 돌아갔다.
▲ 부두 2 2장을 SLI로 연결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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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비싸고 성능 좋은 그래픽 카드의 기준은 '퀘이크 2'를 800x600 해상도에서 60프레임까지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폭주 기관차 부두 2는 그 기준부터 파괴해버렸다. 800x600 해상도를 넘어 당시 기준(1998년)으로 고해상도인 1024x768을 구현해버린 것. '퀘이크 2'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부두 2로 재미를 본 게임이 퀘이크 2, 언리얼, 니드 포 스피드 3 등이다. 뭔가 좀 마초적인 냄새가 나는 게임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 Quake 2 on pentium 200MMX and 12mb Voodoo 2.
<영상 출처: Richard Shears>
재미를 본 게임은 또 있다. 바로 2000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디아블로 2. 디아블로 2는 글라이드에 최적화됐다. 디아블로2는 글라이드 신(神)적화 게임이다. 글라이드 없이 디아블로 2를 구동시키는 건 삼겹살에 소주를 안 먹는, 치킨에 콜라를 안 먹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었다. Direct3D로 게임을 즐기면 몹을 한데 모아 쭉쭉 학살을 할 때, 혹은 네크로맨서가 시체 폭발 스킬을 한꺼번에 시전할 때 등의 상황에서 프리징 현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수습해보고 나면 죽어있는 난감한 상황. 하지만, 글라이드는 그러지 않았다. 디아블로 2 게임 속 세상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지옥이지만 3D 그래픽 운용은 도나우강을 헤엄치는 백조처럼 정말 안정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디아블로2에서는 부두와 부두가 아닌 그래픽카드로 양분해버리는 파급효과가 생길 정도였다.
▲ 3dfx Voodoo Banshee - Diablo 2 (June 2000)
<영상 출처: 3dfx Voodoo Cards....>
또한, 이 시기에는 3Dfx가 부두 칩셋을 보드 제조사에게 공급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조사마다 다양한 가격대의 부두 2를 선보일 수 있었다. 현재 그래픽 카드을 엔비디아나 AMD가 레퍼런스 형태로 발표를 하고 다른 제조사들에게 그것을 공급받아 비레퍼런스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구조와 동일하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여기까지는…
단 한번의 실수로 공든 탑이 와르르...
▲ 사실 이게 부두의 흥망성쇠를 가름하는 중요 포인트가 되어버린 슬픈 역사
부두의 버전업이 계속 이루어지면서 3D 성능 위주로 폭발적인 혁신이 일어났다. 또한, 부두 2의 성공 이후 3Dfx는 찬란한 성공 가도로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VOODOO Banshee(이하 부두 밴시)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부두 밴시는 1998년 6월 22에 출시된 단일 그래픽카드로 부두 2.5세대에 해당되며 부두 러시의 후속작이라 볼 수 있었다.
▲ 크리에이티브 3D 블라스터로 출시된 부두 밴시 AGP 버전.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부두 밴시는 체감 속도가 느렸던 부두 러시와는 완전히 달랐다. SDRAM을 장착해 메모리 대역폭이 향상됐고, 실제 성능은 부두 2의 90%에 근접했다. 경쟁사의 단일 카드인 리바 TNT와 달리 부두이기에 글라이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부두 러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어 1999년 초 VOODOO 3(이하 부두 3)가 발표됐다. 부두 3부터는 부두 러시, 부두 밴시처럼 2D 비디오 기능을 기본으로 지원하게 됐다. AGP도 지원하고. 성능만 놓고 보면 상당히 괜찮은 그래픽카드였다. 일례로 부두 3 2000는 부두 2 SLI와 비슷했다.
▲ 부두3 3000 AGP 버전의 박스샷.
<이미지 출처: thandor.net>
그런데 여기서 3Dfx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야 만다. 이전에 3Dfx는 부두 2 칩셋을 보드 제조사에게 공급해 다양한 그래픽카드를 선보지만, 부두 3부터는 자사 공장에서만 부두 3 완제품을 독점 생산하게 변경한 것이다. 그러면? 생산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고, 가격도 오른다. 그래서 부두 3부터는 상대적 가격이 크게 올라버렸다.
전략적이었는지,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와중에 엔비디아는 칩셋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녀 점유율을 올렸다. 고성능 그래픽카드인 리바 TNT2의 성능도 부두3 2000에 근접했고, 저가형 그래픽카드인 리바 TNT2 M64도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제품들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그 결과 엔비디아는 3Dfx의 중저가형 그래픽 시장 점유율을 상당히 뺏어오는데 성공했다.
악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욕심쟁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상당수 새로운 기능(멀티 텍스처링, 범프 매핑)을 탑재한 DirectX 6 API를 선보인 것이다. 이 시점부터 글라이드 API가 DirectX API에 따라잡히기 시작했고, 뒤이어 DirectX 7 API가 공개되고 나서는 결국 글라이드 API는 디아블로 2 외에는 딱히 별볼 일 없게 됐다.
확실한 막타는 최초의 지포스 그래픽 카드인 지포스 256이 쳤다. 지포스는 DirectX 7을 지원했다. 그런 DirectX 7의 핵심 기능은 하드웨어 T&L(CPU에서 수행했던 좌표 변환 연산과 조명 처리를 GPU가 담당하게 됨) 이었고, 이를 가장 먼저 구현해낸 것이다. 이에 부두 3는 초라해졌다. 아무리 그래픽 카드를 여러장 겹친다고 해도 CPU까지 붙어버린 조합을 어떻게 이겨?
▲ 엔비디아 지포스 256 GPU. 우리가 아는 그 지포스의 시작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부두교의 가르침은 짧고 굵었다. 하지만 3Dfx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2000년에 등장한 디아블로2가 부두의 인공호흡기를 계속 붙여주고 있었기 때문. 이에 3Dfx는 부두 4, 부두5를 내놨지만, 문제는 여전히 하드웨어 T&L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디아블로2 외에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 버프가 무섭다.
또한, 문제는 엔비디아만이 아니었다. Rage 시리즈를 선보이던 ATI. 부두와는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라 3Dfx 입장에서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나중에는 Rage Fury Pro 등도 나오긴 했는데, 부두 3 3500에 밀리는 성능이라 크게 신경 쓸 것은 없었다. 그런데 2000년 8월부로 ATI는 기존 RAGE 시리즈에서 RADEON(이하 라데온)으로 라인업을 변경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문제는 라데온도 DirectX 7을 지원했다. 는 것. 성능은 지포스 2MX나 지포스 256과 비슷했다. 가뜩이나 버거운 상대인 엔비디아에게 계속 지게 생겼는데, 거의 비슷한 상대인 ATi까지 나타나니 3Dfx는 정말 죽을 맛이었겠다.
하지만 3Dfx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걸까?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아직까지 독점 생산을 고집했다. 덕분에 가격은 아직도 천정부지. 그 와중에 회사를 구해줘야 할 부두 4, 5는 지포스 2 GTS에 무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3Dfx는 2000년 12월 모든 지적 재산권을 NVIDIA에게 팔아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시장에서 사라졌다. GG
▲ 3Dfx 부두 5 5500
<이미지 출처: Wikipedia>
모두 불태웠어. 모두 새하얗게...
▲ 둠 시리즈로 유명한 ID Soft의 창립자 존 카맥
부두는 짧은 시간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다 떠났다. 고작 4년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4년간 3Dfx 부두가 남긴 강한 인상은 아직도 회자되는 PC 업계의 전설 중 하나다. 둠의 아버지이자 전설의 프로그래머인 존 카멕도 3Dfx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를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졌던 회사가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 엔비디아 타이탄 4-way SLI
<이미지 출처 : Hardware Info>
그러나 3Dfx가 남긴 유산은 엔비디아를 통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부두 2를 두 장 연결해서 쓰던 SLI 기술은 지포스 타이탄 때까지 이어졌다. 또한, 3Dfx는 게임 그래픽의 척도가 초당 프레임이라는 사실을 유저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런 프레임에 대한 인식은 현 시점까지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의 기술력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 Tom's Harware>
여담이지만, 이젠 RTX 4090을 200만 원 넘게 주고 사는 세상이다. 옛날에는 부두 2가 그런 RTX 4090의 위치였다. 그래서 그 시절 부두 2를 사 보는 것이 필자의 소원이었는데, 결국 이룰 수는 없었다. 돈이 없어서. 대신 부두 3 2000을 나중에 사게 됐다. i740을 빼고 부두 3 2000을 장착했을 때 기분이 엄청나게 좋았다. 지금 RTX 4090을 사면 그 정도일까? 기분은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다. 부두 시리즈와 함께 보낸 20세기의 마지막은 참 즐겁고 아련한 추억이었다.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것 하나~ 이젠 뭘 사더라도 그때와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젠 바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부두여~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글 / 김도형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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