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소통(Communication)’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통을 통해서 인적 교류가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여러 결과물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농담이나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의사결정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소통은 우리 생활에 있어 없어서 안될 귀중한 행위라 하겠다.
소통의 방법은 여럿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다. 표정부터 말투, 행동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더해지니 최대한 정확한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 만날 수 없다면 글을 써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과거의 오프라인(?) 소통법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네트워크의 발달로 기존의 소통법 외에 다양한 형태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메신저’가 빠질 수 없다.
▲ 메신저의 원조인 ICQ, 과거에는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긴 했다. 현재 러시아 기업에서 운영한다
지금은 누구나 쓰는 메신저, 우리가 흔히 문자와 이모티콘 등을 사람과 주고받는 형태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와 한자리에 모여 채팅하는 것을 메신저라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대방과 일대일로 채팅하는 형태는 인스턴트 메신저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메신저의 역사는 약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미라빌리스(Mirabilis)라는 기업에서 개발한 ICQ라는 서비스가 최초의 메신저로 불리기 때문. ICQ는 나는 너를 찾는다는 “I Seek You”를 발음했을 때 나오는 문장에서 착안됐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 기업을 거쳐가면서 원조 메신저의 자존심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자연스레 네트워크 환경이 발전하면서 메신저 서비스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중요한 것은 모든 메신저 서비스가 꾸준히 발전하지 못하고 깡통을 차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는 하나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과 우정을 쌓았을 터다. 비록 망했지만 낭만 가득했던 그때 그 메신저를 추억해 본다.
MS의 끼워 넣기 신공으로 인기 누렸던 ‘MSN 메신저’
해외에서는 ICQ가 최초의 메신저라 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1996년 전후는 IT 기술이 그렇게 발달된 사회가 아니었다. 정치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발전의 가속화를 이뤄낸 계기가 김대중 정부가 수립한 정보통신 4개년 계획이었으니 메신저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것도 이때라 볼 수 있다. 그 시작이 바로 1999년 개발된 MSN 메신저다.
MSN 메신저는 초창기에 ICQ와 비슷한 기능을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했던 Windows XP 시절의 MSN 메신저는 제법 다양한 기능을 갖췄는데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요즘 메신저 못지않았다. 메시지 주고받는 것은 기본이고, 대화명 관리나 메일 전송, 이미지 전송 등도 가능했다. 이후에는 여러 기능이 더해지면서 완성도를 점점 더해갔다.
▲ Windows와 함께 태평성대를 누렸던 MSN 메신저.
Windows Live Messenger로 이름을 바꾸고 이후에는 스카이프에 통합되었는데
그마저도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불편한 부분도 많았다. 아무래도 서비스 초창기이다 보니 계정관리가 꽤 불편했다. 우선 장시간 로그인이 되지 않으면 계정이 삭제됐는데, 그 사이에 계정 비밀번호나 아이디를 잊으면 찾을 길이 묘연했다. 추후 마이크로소프트 메일 서비스는 핫메일(Hotmail)과 연동이 됐지만, 때는 늦은 후라 큰 의미는 없었다. 이후 메신저 점유율은 타 메신저에 밀려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MSN 메신저는 'Windows Live Messenger'라는 이름으로 변경도 하고 2013년에는 스카이프와 서비스를 통합했지만, 이것도 결국 완전히 종료되면서 끝을 맞이하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운영체제에 열심히 자사에서 개발한 서비스를 끼워 넣었다. 아웃룩부터 시작해서 이 MSN 메신저도 운영체제 설치와 함께 기본 설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번들 판매라는 이유로 서비스에 철퇴를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Windows Vista K 버전을 시작으로 사용자가 선택해 설치하는 형태로 변경됐다. 아무래도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타 메신저의 등장으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편집자의 MSN 메신저에 대한 실제 에피소드
군대 가서 첫 휴가를 나와 술을 진탕 먹고 친구집에서 잤을 때, 켜져 있는 PC에서 무언가 또롱또롱 알림 소리가 계속 났다. 무언가 게임을 열심히 해서 내 잠을 방해하나 싶어 짜증을 냈는데, 아침에 일어나 그 소리가 MSN 메신저로 친구의 애인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2G폰의 SMS 문자 서비스처럼 돈을 내는 것 아니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친구가 많이 당황해했던 에피소드. 지금 생각하면 참 창피한 순간이었다. 2023년 현재, 그 커플은 어느덧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딸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다.
2000년대 청소년들이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했던 ‘버디버디’
MSN 메신저가 약간 성인, 그중에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잘 사용했던 메신저로 꼽는다면 당시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이 최고로 꼽았던 메신저는 아무래도 ‘버디버디’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2000년이 시작되던 그 해에 등장해 국내 3대장 메신저 중 하나로 손꼽히던 버디버디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용자층 덕에 많은 신조어들이 난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필자는 대학생이었는데 다양한 문자가 난무해 당황했었다.
▲ 지금 보면 손발이 오글거릴 문구가 난무했던 버디버디. 다양한 기능에 청소년, 학생들이 좋아했다
특히 버디버디는 다양한 채널이 강점으로 꼽혔다. 어떻게 보면 소모임 느낌이었다. 큰 채널 안에 다양한 채팅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친해져 실제로 만나기도 하고 이성들이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당시 필자의 친구 중 하나도 취미 채널에서 연인을 만나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오래가지 않아 헤어졌지만...
채널은 자유 채널부터 음악방송, 취미 등 다양했다. 무엇보다 음악방송은 마치 라디오 방송 느낌으로 진행하는 곳이 많아 즐거움을 줬다. 또한 메신저 내에 인터넷 쇼핑과 게임 등을 연계해 다양한 서비스를 함께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아바타 및 여러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등 수익 모델도 운영했다. 젊은 사용자층이 좋아할 서비스로 빠르게 성장한 버디버디는 2008년 8월, 점유율이 56.21%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
▲ 버디버디가 부활을 선언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감감 무소식이다
그러나 버디버디도 수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소통의 장이 아닌 온갖 불법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으로 변질되었고 다계정, 주민등록번호 도용 등 개인정보 운용 문제도 심각했다. 결국 2012년 6월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편집자의 버디버디 메신저에 대한 실제 에피소드
인생에 가장 여유로웠던 시절, 잠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당시 PC방 아르바이트생들은 대부분 게임을 공짜로 하려고 뛰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PC가 고장 나면 수리업체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PC 조립과 수리가 취미였던 나는 줄곧 카운터를 지키며 손님들의 요구를 대부분 해결하는 '이상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지막한 저녁에 방문한 여고생 두 명이 카운터에 다가와 버디버디가 안된다며 손을 좀 봐줄 것을 요청했다. 젊은 피로 들끓었던 나이라 어찌나 심장이 뛰고 떨리던지 그 여고생 옆에 앉아 버디버디 메신저를 삭제 후 재설치해 주면서 말도 더듬었던 기억이 난다. 그 여고생은 지금은 행복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겠지?
싸이월드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던 ‘네이트온’
버디버디는 너무 가볍고, MSN 메신저는 좀 그런 이들에게 각광받은 메신저가 있으니 바로 ‘네이트온’이다. SK 커뮤니케이션즈가 2003년에 1월부터 서비스를 실시한 네이트온은 그해 하반기에 합병한 싸이월드와의 연동과 무료 문자 보내기 서비스 등에 힘입어 빠르게 세를 확장해 나갔다. 네이트온 등장 이전에는 MSN 메신저와 버디버디, 드림위즈의 지니, 세이클럽 타키 등이 각축전을 벌였으나 이 서비스의 등장으로 버디버디를 제외하면 사실상 압살당했을 정도라고.
▲ 무료 문자 보내기와 싸이월드 연동으로 승승장구했던 네이트온. 아직도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흔히 버디버디는 중학생들이 많이 쓰고 고등학생은 네이트온, 대학생과 직장인은 MSN 메신저라는 공식이 있었을 정도로 네이트온의 위상은 상당했다. 기능도 훌륭했다. 파일 연속 전송도 지원했고 Windows는 물론 리눅스나 모바일 기반의 시스템에서도 지원했을 정도였다. 당시 열풍에 가까웠던 싸이월드에 메신저 기능이 탄탄하니 안 쓰는 것이 이상했다.
아쉬웠던 점은 프로그램 리소스가 제법 소요됐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싸이월드에 여러 기능을 붙이니 초기 실행이 제법 무거운 편에 속했다. Windows 시작과 함께 버벅대게 만든 주범 중 하나가 네이트온이다. 오죽하면 네이트온이 시작 프로그램으로 실행되지 않도록 설정하는 검색도 많았을 정도다.
네이트온도 결국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카카오톡의 등장이 타격을 줬는데, 모바일 환경으로의 전환이 실패하면서 사용자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1년 발생한 SK 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도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그나마 파일전송과 같은 업무용 요소도 2013년 카카오톡이 PC 버전 메신저를 선보이면서 빛을 잃었다. 추후 네이트온의 모바일 버전이 등장하긴 했는데 거의 못 쓸 수준이라 카카오톡의 대체제로 자리하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일부 기업은 아직도 네이트온을 쓰고 있다고 하니 명맥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편집자의 네이트온 메신저에 대한 실제 에피소드
네이트온은 항상 Windows 시작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어 PC를 켜면 어김없이 첫 화면으로 뜨곤 했다. 하지만, 술 한잔 거하게 마시고 들어온 날 어딘가 기분이 적적~해지면 헤어진 여친이나 예전 친했던 동료들에게 오타 가득한 메신저 술 주정을 종종 했던 기억이 있다. 네이트온 친구의 숫자가 중요했던 시절이라 감히 차단을 못했었고, 다음날 일어나 이불킥을 차며 해장보다는 후회를 더 많이 했었다. 인간관계는 역시 맺고 끊음이 확실해야한다는 교훈을 네이트온이 가르쳐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득히 먼 옛날에도 소통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해왔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세상은 원초적인 형태이지 않았을까?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형태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의 발전이 소통의 선택지를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중 간편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단들은 언제나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그렇다.
처음에는 문자 메시지라는 유료 서비스를 시작으로 인스턴트 메신저가 탄생한 이후 개인과 개인의 소통을 가로막았던 벽은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언어의 장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번역 기능을 통해 점점 해소되고 있음을 보면 머지않아 전 세계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시대가 곧 올 것이라 예상된다. 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과 같은 단말기가 아니라 가상현실, 메타의 시대도 다가오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사용하게 될 메신저는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까? 혹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메신저는 이들처럼 사라지게 될까?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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