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을 닮은 로봇을 꿈꿔왔으며, 최근에는 그 경계 또한 허물어지고 있다. ⓒshutterstock
생명공학이 꾸는 꿈, 오가노이드 기술로 현실화
경계를 넘나드는 인류의 욕망이 날이 갈수록 풍성해지고 있다는 것은 SF뿐 아니라 생물학 분야에서도 잘 나타난다.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을 예로 들어보자. 1910년에 처음 사용된 합성생물학이라는 용어에는 말 그대로 생물 구성요소를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공학적으로 재설계한다는 의미이자 포부가 담겨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다소 모호했던 첫 등장과는 달리 이제 이 말뜻은 무엇보다 구체적이고 촉망받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오가노이드(organoid)’라는 개념을 들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줄기세포를 배양해 분리한 세포를 응집하고 재조합해 특이적인 세포 집합체를 만드는 기술이다. 오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인공 장기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최근 생물학계에서는 또 다른 신조어가 나타났다. 인류(anthropo)와 로봇을 합한 ‘앤스로봇(Anthrobot)’이다. 미국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앤스로봇은 인간의 세포를 이용해 만든 생체 로봇이다. 화학적 재료나 다른 생물의 세포가 아닌 인간 세포로 구성됐다는 것은, 추후 인체 내에서 생체 로봇을 사용할 때 면역반응을 회피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이다.
지난 12월, 연구진은 앤스로봇이 단순히 ‘움직이는 인체 유래 세포’가 아닌, 매우 특별한 잠재성을 지닌 생체 로봇임을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의하면 앤스로봇은 모양이나 섬모로 뒤덮인 정도, 배치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더하여 연구진은 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을 프로그래밍한다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세포들이 다세포 개체처럼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로봇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비록 뉴런의 재생을 촉진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앤스로봇이 뉴런에 일종의 생화학적 신호를 보내 성장을 유도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게다가 앤스로봇은 실험상 45~60일 생존했다가 몸속에서 분해되며,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일 연구진의 추측이 옳다면, 앤스로봇은 손상된 망막이나 척수 등 치료하는 데 폭넓게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세포들이 이리저리 헤엄치며 덩어리를 형성한다고 해서 이를 ‘로봇’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평가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섬모의 움직임은 단순히 뉴턴 역학에 따른 우연한 현상일 뿐 이를 일제히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연구를 이끈 마이클 레빈 박사는 섬모의 구조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앤스로봇을 엔지니어링 할 수 있기 때문에 앤스로봇이 주변 세포에 특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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