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리메이크 작품이 흥행하며 다시 주목받게 된 페르시아의 왕자 허큘리스 모니터 타이틀
이거 알면 진짜 아재가 아닐까 싶다. 최소 40대 후반. 오늘의 아재 판독기는… 이른바 흑백 모니터! TV 버금가는 화질의 모니터가 너무도 당연해진 요즘에 흑백 모니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80년대 영화, 특히 금융권이 배경이거나 SF 장르라면 CRT 모니터를 통해 녹색 글씨 가득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MDA 시대. 단순히 부두 시절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선사시대 정도라 볼 수 있다. 대략 기억하고 있다면 40대 후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컴퓨터 학원에서 봤던 그 흑백 모니터를 떠올려 본다.
태초에 IBM PC가 있었고 모니터가 있었다
▲ IBM PC 5150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1981년 8월 12일 IBM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나왔다. 이름하여 IBM PC. 정식 명칭으로는 IBM Personal Computer 5150 이었다. 우리가 쓰고 있는 x86 아키텍처의 시작을 알렸던 중요한 PC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PC는 사실상 IBM PC의 후예로 IBM PC 호환 기종이라 볼 수 있다. 그럼 PC가 뭐 다 PC지 다른 PC가 있었겠냐만, 코모도어 아미가, PC-9801 등 이 친구들도 PC로 불렸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 MDA 그래픽카드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아무튼 이 IBM PC는 모니터 종류에 따라 그래픽카드를 선택할 수 있었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그래픽카드는 그래픽카드고 모니터는 모니터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컬러 모니터, 흑백 모니터를 고를 수 있는데, 이것에 따라 그래픽카드가 바뀌는 것이다. 당시 기본은 컬러 모니터였지만 사무용으로 활용한다면 흑백 모니터를 고르게 된다. 그럼 흑백 모니터를 골랐을 때 사용하는 그래픽카드는? MDA라는 것이다.
이 MDA는 그래픽카드이긴 한데 문자만 출력됐다. 당시 사무용은 현대 사회처럼 문서에 그림을 넣거나 그래프를 넣는 등의 현란한 작업이 딱히 필요가 없었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또한, 문자 출력 수준은 확실히 CGA보다 뛰어났다. 문자 모드로는 80자를 25행 출력할 수 있었다.
▲ MDA로 4색 컬러를 구현하는 영상
<출처 : Youtube TubeTimeUs 채널>
또한, MDA는 이른바 흑백으로 불렀지만 엄연히 4색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 검은색, 어두운 단색, 밝은 단색, 더 밝은 단색 표현이다. 심지어는 4색 컬러를 연출한 영상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경쟁 기종인 애플II에선 이미 컬러 그래픽까지 구현이 가능했는데? 그럼 MDA로 컬러는 무리라 쳐도 그래픽이라도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럴 때엔 허큘리스 그래픽카드를 사용해야 했다.
허큘리스는 MDA 기반이다. 수평 주사율 18.4kHz, 수직 주사율 50Hz, 연결단자는 RGB를 사용했다. 문자 모드는 80자를 25행 출력했고, 실효 해상도는 720x350이다. 그래픽 모드는 720x348(1:1.55 비율)인데 한국에서는 640x400으로 변형돼 사용됐다.
▲ 컴퓨터 학원에서 많이 봤던 페르시아 왕자의 허큘리스 플레이 모습
<출처 : Youtube sensmint 채널>
이 허큘리스는 한국과 유독 연이 깊다. 그게 정품 카드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IBM PC 호환 기종에는 대부분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카드가 장착됐다. 한때는 사실상 표준이라 볼 수 있었다. 초록색 모니터로 페르시아 왕자와 남북전쟁을 즐겼던 기억이 많이 난다.
컬러라고 꼭 선명한 건 아니다
다음으로는 CGA다. 컬러 모니터 CGA는 1981년 MDA와 같이 개발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똑같이 IBM 모델 5150에 탑재용으로 들어갔다. 구입할 때 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고르는 거야 좋지만 당시에는 컬러 모니터가 엄청나게 비쌌다고 한다. 거짓말 좀 보태서 자동차 한 대 값?
▲ 4색 모드를 활용했음에도 그럴듯하게 꽃을 묘사했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문자 모드에선 16가지 컬러를 출력할 수 있다. 검은색, 파란색, 초록색, 청록색, 빨간색, 보라색, 황갈색, 흰색, 회색, 밝은 파랑, 연두색, 하늘색, 밝은 빨강, 밝은 자홍, 노랑, 밝은 흰색. 다양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자 모드 한정이다. 그래픽 모드에서는 320x200 해상도 기준으로 16색 중 동시 4컬러를 발색할 수 있었다. 메모리가 16KB에 불과해 컬러 그래픽 출력 시 3원색과 흰색을 모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바탕이 검은색, 흰색을 사용하면 나머지는 2가지 컬러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CGA 게임 화면은 뭔가 붉거나 파랗다. 그렇다면 320x200 해상도를 지금 기준으로 상상하면? 농담으로라도 선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해상도만 놓고 보면 오히려 MDA가 더 선명하다.
EGA를 넘어 드디어 VGA 등장하다
시간이 흘러 1984년 EGA가 등장했다. CGA를 보강하려 나온 그래픽카드며 AT 시절과 거의 동일 시대를 풍미했다. 그래픽 모드 시 640x350 해상도에서 동시 16컬러를 표현했다(맥시멈은 64). 특히 비디오 메모리가 기본 64KB로 업그레이드됐다.
▲ 메인보드에 VGA가 내장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다만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EGA를 자주 볼 수 없었다. 비쌌기 때문이다. 허큘리스 그래픽카드를 단 시스템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해당 시스템은 나중에 죄다 VGA로 넘어갔다. 즉 실질적으로 EGA는 중간 과정이었고 그마저도 생략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EGA로 표현한 게임 화면 등은 묘하게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다. 이는 이후 설명할 VGA가 EGA 하위 호환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1987년 드디어 VGA가 등장했다. 업계 표준이 되어버린 VGA. 분명 VGA가 등장하기 전에도 그래픽카드라 부를 만한 제품군이 있었지만, 요새는 대놓고 VGA가 그래픽카드와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오죽했으면 WIndows 7까지 그래픽카드에서 표준 VGA 호환 어댑터를 지원했을 정도다. 안전 모드나 BIOS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10 이후로는 변경되어 불가능하다.
이 VGA는 사양이 대단했다. 비디오 메모리가 256KB다. 또한, 640x480 해상도에서 262,144컬러 중 단색 혹은 16색 출력을 지원했다. 320x200 해상도에선 256색을 출력했고, CGA 및, EGA 하위 호환을 지원한다.
▲ 테스트 드라이브 게임 플레이 영상
<출처 : Youtube xtcabandonware 채널>
이러한 VGA의 폭발적인 성능에 힘입어 1987년부터 PC 게임의 부흥기가 시작됐다. 젤리아드, 위저드리4, 테스트 드라이브 등 주옥같은 게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컬러 모니터가 아직 엄청나게 비쌌기에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보급이 천천히 이루어졌다.
▲ 편집자가 기억하는 첫 컬러 게임, 젤리아드
당시 컴퓨터 학원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모니터도 컬러는 거의 없었고 허큘리스가 대부분이다. 컬러 모니터는 대부분 학원 깊숙한 골방에 신줏단지 모시듯 고이 보관되었었다. 희미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페르시아왕자와 남북전쟁, 부도칸 등을 허큘리스에서 플레이했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참 웃기는 일이지만, 그땐 이런 허큘리스 모니터라도 마냥 행복하고 즐거웠다. VGA 이후엔 1990년 XGA가 한 번 더 나왔다(최대 1024x768). 1MB 비디오 메모리를 갖췄다. VGA와 호환되면서 확장된 그래픽 성능을 지원했다.
흑백이라도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
▲ 여주인공 앞에서 공격자세를 취하면? 카라데카 플레이 영상
이번 기획에서 설명한 그래픽카드와 모니터는 필자에게는 특히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40대 후반 아재들이 컴퓨터를 처음 접할 때의 모니터이기 때문이다. 허큘리스 모니터에서 게임이 나오고 PC 스피커의 비프음으로 즐기던 그 재미가 참으로 행복했다. 남은 삶 동안 그만큼 재미있게 즐길 만한 게임 환경이 또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글 / 곽달호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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