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에 담긴 시공간, 피어나는 금수강산
되살아나는 겸재의 숨결!
1711년 가을 어느 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겸재 일행은 단발령에서 걸음을 멈췄다. 단발령 앞에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내금강은 찬란하고 신묘했다. 단발령 앞에 펼쳐진 내금강 풍경을 보고 있으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속세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여 고개 이름이 단발령이었다.
단발령은 금강산 유람의 첫머리였다. 1711년 신묘년 금강산 유람 당시 얻은 영감을 화폭에 담은 겸재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에는 13폭의 그림이 담겼다.

단발령에서 본 풍경을 그린 그림이 <단발령망금강산도(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다)>다. <금강내산총도>는 내금강의 봉우리, 계곡, 사찰 등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렸고, 이름도 기록하여 금강산 안내도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신라시대 창건된 절 장안사를 볼 수 있는 <장안사도>에 소나무 무성한 숲과 계곡도 담겼다. 장안사는 단발령을 넘은 여행자들이 하룻밤 묵어가던 곳이기도 했단다.

금강산에서 가장 수려한 풍경으로 손꼽히는 만폭동과 벽하담 오른쪽 절벽에 보덕굴이 있다. 그 입구에 보덕암이 7.3m 높이의 구리 기둥에 의지하여 제비집처럼 자리 잡았다. 금강대와 대향로봉, 소향로봉의 모습도 보인다. 이 그림이 <보덕굴도>다. 내금강과 외금강 경계에 있는 거대한 돌기둥 형태의 바위 봉우리인 불정대를 그린 <불정대도>에는 십이폭포와 기암괴석 봉우리들도 담겼다. 불정대는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백천교 주변 계곡에서 쉬는 겸재의 일행을 그린 <백천교도>에는 당시 가마꾼이자 길 안내를 해주었던 스님들도 등장한다.

<총석정도>에는 아주 작게 그린 비석이 하나 보이는데, ‘매향비’다. 내세의 발원을 위해 향을 강이나 바다에 잠기게 묻고 그 사실을 표시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가 매향비란다. 그렇게 묻은 향이 오랜 세월 지나면 침향이 된다고 한다. 1712년 겸재는 다시 금강산을 찾는다. 한양을 출발해서 삼부연, 금화현, 단발령, 장안사, 만폭동, 정양사, 표훈사, 만폭동, 보덕굴, 마하연, 불정대, 백천교, 삼일포, 통천, 시중대, 용공사, 회양 등의 순으로 유람 했다.

겸재정선미술관에 전시된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중 5개 그림을 보고 마주한 건 정선의 금강산 그림 중 백미로 꼽히는 <금강전도>였다. 1734년에 그린 <금강전도>를 오래 보았다. 멀리서 한 눈에 넣기도 하고 가까이서 기암괴석 봉우리와 그 사이로 난 계곡과 숲, 산길, 사찰, 금강산의 비경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보았다. 금강대와 만폭동, 벽하담, 보덕굴이 그림의 중심에 있다. 그림 아래 장안사가 보이고 꼭대기에는 비로봉이 우뚝 솟았다. 오른쪽에 혈망봉이 보이고 그 옆으로 문수보살 형상의 묘길상이 아주 작게 표시됐다.
●겸재, 그림으로 말을 걸다
겸재는 금강산을 비롯하여 한양의 여러 풍경은 물론, 경기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경상도, 충청도 등 전국의 명승을 그림으로 남겼다.(다만 호남지역의 풍경을 담은 그림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겸재의 그림을 한 점 한 점 자세히 살피다보면 화폭에 담긴 풍경에서 바람이 이는 것 같고 그림 속 인물들이 말을 거는 것 같다.

충청북도 단양의 구담봉을 그린 <구담도>에는 충주댐이 생기면서 물에 잠긴 구담봉의 옛 모습, 물에 잠기기 전 온전한 구담봉의 모습이 남아 있다. 구담봉 아래 강기슭의 소나무들과 지붕 낮은 집들, 작은 모래밭이 벼락같이 우뚝 솟은 기암절벽 구담봉 아래 고즈넉하다. 물결 이는 남한강에 떠있는 배는 그 자체로 한가로운 풍경이다.

경상도의 한 풍경을 그린 <계상정거도>는 퇴계 이황 선생과 관련된 서당 풍경을 담았다. <도산서원도>에 담긴 풍경과 흡사한 풍경이 <계상정거도>에도 보인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지어진 것이고 겸재는 그 풍경을 <도산서원도>에 그렸을 것이다. <계상정거도>는 도산서원이 생기기 전 퇴계가 공부하던 작은 서당 풍경이고, 겸재는 그 모습을 유추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계상정거도> 그림 속 서당에 앉아 있는 사람이 겸재가 상상했던 퇴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본다. 천원 권 지폐에 새겨진 그림이 <계상정거도>다.


<북원수회도>는 은암 이광적의 집에서 열린 회방연(과거에 급제한 지 예순 돌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던 잔치)을 그린 그림이다. 잔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서 머리에 이고 가는 반빗아치(옛날에 반찬을 만드는 일을 하던 여자 하인), 마당에 모여 앉아 쉬는 가마꾼들, 잔치가 벌어지는 강당에 모여 앉은 원로들, 축하객들, 어린 손주들의 모습에서 잔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광적 선생은 1628년에 태어나 1717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은 1716년 작품이다.

<장안연우도>는 안개비 내리는 한양을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어디쯤에서 보고 그린 것이다. 안개비가 가린 풍경이 아련한 여백으로 가득하다. <세검정도>에서 옛 세검정과 홍제천 주변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의 묵직한 감동을 안고 발길을 옮기면 겸재 정선의 진품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원화전시실이 나온다.(겸재정선미술관 원화전시실에 전시된 원화 이외의 모든 작품은 복제품이다.)
●소악루와 궁산 고성 터
겸재정선미술관을 나와 궁산근린공원 소악루 쪽으로 걷는다. 소악루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이유가 양천 현아 뒷산, 한강이 보이는 악양루 터에 재건한 정자였다. 당시 소악루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탑산, 선유봉이 보였다고 한다.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있을 때 그린 <안현석봉>, <목멱조돈> 등의 그림에서 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목멱조돈>은 궁산에서 한강 건너 남산 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그린 그림이다. 그 풍경에 감동한 겸재는 그 풍경을 그려 이병연에게 보냈고 이병연은 그 그림에 시 한 수를 지어 화답했다.

[<목멱산에서 아침 해 돋아 오르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른다]

지금도 궁산에 오르면 행주산성, 북한산, 남산이 보이고 유장한 한강의 모습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소악루를 지나면 성황사가 나온다. 궁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도당할머니로 여겼던 여신을 모신 사당이 성황사다.

궁산은 해발 74m의 낮은 산이다. 마을 뒷동산이다. 소악루와 성황사를 지나면 정상 너른 터가 나온다. 그곳이 양천 고성지다. 옛날에 이곳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성 둘레가 218m이고 돌로 기초를 다지고 흙으로 쌓은 토석혼축성으로 추측하고 있다.

2015년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성 내부 시설로 추정되는 유적이 확인 됐다고 한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조사에서는 남서쪽으로 28.7m 정도 이어지는 성벽을 확인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단다. 한강 건너편 서쪽에 행주산성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 전투를 앞두고 이 성에 잠시 머물렀다고 전한다.
●궁산 땅굴과 양천 현아 터
다시 소악루를 지나 겸재정선미술관 쪽으로 내려간다. 겸재정선미술관 쪽으로 도로를 건너기 전 오른쪽에 ‘궁산 땅굴 역사 전시관’이 있다.


궁산 땅굴은 2008년 발견 됐다. 길이 68m, 높이 2.7m, 폭 2.2m 정도 규모의 땅굴이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일제가 군사시설로 판 땅굴로,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 저장소로 사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2008년 이후 체험 전시관을 만들던 중 일부 구간에서 대형 낙석이 생기면서 땅굴을 폐쇄했다. 2018년에 땅굴의 출입구에서 땅굴 내부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3.1km 정도 거리에 김포비행장이 있다. 일제는 1937년 궁산 옆 한강의 선유봉을 폭파해서 석재를 만들어 김포비행장을 닦았다고 한다.

‘궁산 땅굴 역사 전시관’에서 나와 강서구 가양동 238-5를 찾아간다. 그곳에 양천 현아가 있었던 곳을 알리는 푯돌과 안내판이 있다.

‘종해헌 남쪽에는 아전들이 있는 길청, 향청의 동쪽에는 장교청, 그 앞의 좌우에 창고가 있었다. 종해헌 부근까지 강물이 들었다.’라는 내용이 안내판에 적혀있다. 종해헌은 양천 현아의 동헌이었다. 양천 현령 시절 겸재는 종해헌 누마루에 앉아 조수 소리를 들었다. 이곳은 한강 하류, 밀물 때면 바닷물이 이곳으로 밀려와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과 섞인다. 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소리를 겸재는 종해헌 누마루에 앉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흥을 <종해청조>라는 그림으로 남긴다.

겸재정선미술관 2층 전시실로 들어가면 디지털 영상으로 꾸민 <종해청조 – 종해헌 누마루에 앉아>가 관람객을 반긴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