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북쉘프 스피커?

당초 하이파이클럽에서 연락을 받고 시청실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최신 스피커가 하나 들어왔는데,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이라는 정도? 막상 실물을 접하고 나니, 한숨부터 나왔다. 거의 영한사전 사이즈?

요즘에 와서 북쉘프라는 용어가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쓰이고 있어서, 한 덩치 하는 제품이 많아졌다. 하지만 순수하게 북쉘프의 의미를 따져보면 이 정도 사이즈가 맞다. 북쉘프는 책장이란 뜻이다.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 가볍게 집어넣고 쓰는 제품이라는 게 북쉘프 스피커의 원래 개념이다.

사실 최근에는 이런 제품을 모니터 혹은 미니라고 부른다. 북쉘프라는 단어가 이제는 제대로 스탠드도 받쳐야 하고, 사이즈도 커지고, 담당 대역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북쉘프라고 하니까 좀 차별화가 필요해진 모양이다. 모니터? 이게 무슨 말인가? 곰곰이 따져보면, 모니터는 스튜디오용 스피커가 떠오른다. 방송용으로 쓰이는 것도 있고, 공연장에서 쓰이는 것도 있다. 즉, 가정용 하이파이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북쉘프의 퍼포먼스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경우도 있어서, 일종의 프로용 모니터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북쉘프와 모니터가 혼용되는 듯하다. 실제로 많은 메이커에서 자신의 제품에 모니터란 용어를 붙이는 것이 이제는 흔해졌다. 따라서 본 제품처럼 작은 사이즈에 미니 모니터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미니 모니터의 세계

이렇게 작지만 의외로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 꽤 된다.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이 BBC LS3/5A 계열이다. 비록 저역이 70~80Hz 정도에서 멈추지만, 중역대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셀레스천에서도 작은 제품들을 여럿 내놨고, 어쿠스틱 에너지의 AE1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열광했던 프로악의 리스폰스 시리즈 역시 무척 작지만 당당한 음을 내줬다. 작지만 당차다.

혹시 후 노부유키라는 평론가를 알지 모르겠는데, 그분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음장형 스피커의 장점, 스테레오 이미지의 의미를 정말 제대로 전파한 분이다. 덕분에 평판형 스피커의 미덕이라던가, 각종 음장형 스피커, 이를테면 아발론과 같은 제품을 널리 소개한 바 있다. 그분은 개인적으로 B&W의 오리지널 노틸러스를 오랜 기간 애용하고 있다.

나는 그의 유려하고, 문학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글을 좋아해서 빠짐없이 읽고 있다. 언젠가 그의 칼럼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아마도 최초의 음장형 스피커는 LS3/5A가 아닐까, 라는 말이다. 이 문장을 읽고 정말로 깜짝 놀랐다. 사실 1990년대 중반에 처음 LS3/5A를 들었을 때, 스피커 주위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음장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도 개발 당시에는 이런 효과를 기대한 엔지니어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음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마치 비아그라처럼 전혀 다른 부분에서 놀라운 효과가 태동한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마치 LS3/5A처럼 미니 모니터를 잘 만들면, 음장이 따라올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당연히 세팅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작다고 깔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뱅가드가 뭐길래?

일단 제품의 모델명을 봤다. 뱅가드 스카우트? 뱅가드는 뭐고, 스카우트는 뭔가? 또 친절하게도 XSA라는 회사명도 나온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베라 파이(Vera-Fi)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도무지 헷갈린다.

먼저 뱅가드를 보자. 단순히 검색해 보면, 주로 마이크를 만드는 뱅가드 오디오 랩스가 나온다. 본 제품과 전혀 관련이 없다. 한편 뱅가드 사운드라는 회사도 나오는데, 놀랍게도 중국의 녹음 스튜디오다. 더욱더 관련이 없다.

그 가운데 문득 뱅가드 레이블이 떠올랐다. 군소 레코드 회사 중 인상적인 업적을 남긴 터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이 레이블은 1950년, 메이너드와 세이모어 솔로몬 형제에 의해 창업되었다. 주로 클래식을 많이 녹음했는데, 아드리언 볼트, 존 바비롤리, 미샤 엘만, 요셉 시게티 등의 중요한 음반이 여기서 나왔다.

한편 60년대부턴 블루스, 재즈, 포크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특히, 포크 쪽에서 발군의 성과를 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조앤 바에즈의 전성기가 바로 뱅가드의 음반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외 독 왓슨, 위버스, 피트 시거, 오데타, 버피 세인트 마리, 이언 & 실비아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한다. 아, 저 그리운 뱅가드!

따라서 뱅가드라는 이름만으로도 이 스피커는 내 마음에 와닿은 셈이다.

XSA의 의미

한편 스피커 뒤에 있는 XSA의 의미가 궁금했다. 그래서 뒤져보니 이런 뜻이었다. “eXtemely Sexy Audio”. 오 마이 갓! 자칫 오해를 살 만한 문구다.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부제를 보면 사운드, 룩, 필, 가격 등에서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읽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럼 베라 파이는 뭔가? 아마도 XSA의 자회사일 수도 있고, 단순 판매처일 수도 있고, 아무튼 뭔가 긴밀히 연결이 된 듯하다. 일단 베라 파이가 널리 쓰이는 이름이라, 이것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 집단(?)에서 판매하는 것은 스피커뿐 아니라, 앰프도 있고, 각종 액세서리도 있다. 그중 흥미를 끄는 제품도 여럿 보였다. 느닷없이 등장한 회사인데, 미국에서는 큰 화제를 모는 모양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가격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요즘 알리나 테무의 저가 제품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오디오계로 치면 이 회사의 제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퀄리티에 관한 한 신뢰할 만하다. 예를 들어 톤(Tone)이라는 오디오 잡지의 제프 도게이가 대표적이다. 제품 가격의 열 배, 아니 스무 배 정도의 퍼포먼스를 한다고 극찬하고 있다. 꽤 유명한 분의 발언이라 일단 믿어볼 만하다.

참고로 나는 숱한 스피커를 리뷰했지만, 이번에 만난 제품이 가장 저렴했다. 최저가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느낀 점도 많았다. 차근차근 풀어보기로 하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팀은 철저하게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모델을 만들면 일정한 양이 팔리자마자 단종시킨다. 그러므로 이번에 뭔가 떴다 하면, 정말로 빠른 동작이 필요한 셈이다.

뱅가드 스피커 시리즈

현재 베라 파이를 이끄는 수장은 마크 쉬프터(Mark Schifter)라는 분이다. 아직 이 분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한편 엔지니어 팀은 그 경력이 다양한 듯하다. 오디오뿐 아니라 전기라던가 항공이라던가 아무튼 레인지가 무척 넓다. 이들의 경력을 모두 합치면 110년이라고 한다. 즉, 기본적으로 오디오를 좋아하는 노장들이 모인 집단이라 하겠다. 따라서 신생 업체이고, 가성비 지향의 제품을 내놓지만, 그 내공은 엄청나다고 판단할 만하다.

처음 베라 파이에서 내놓은 것은 당연히 뱅가드다. 본 제품 스카우트는 그 주니어 제품이라 해도 좋다. 뱅가드란 모델의 지향점은 너무나 분명했다. 바로 LS3/5A다. 가격 차이는 많은 데에도 전혀 꿀림이 없었다. 바로 이 부분에 놀란 평론가 일부가 열광한 것이다. 나는 여러 평을 읽어봤는데, 평론가들 중에 미드 파이 정도를 쓰는, 저 위대한 70년대의 유산을 기억하는 분들이 특히 베라 파이에 높은 평점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분은 자택에 쓰는 앰프가 파이오니아 SX-424였다. 이것은 1971년에 나온 리시버 타입으로 채널당 24W, 어떤 자료에는 12W로 쓰여 있는데, 아무튼 소출력이지만 꽤나 매력적인 음을 내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분을 보면, 메인 스피커가 바로 KLH였다. 1960~70년대 AR과 함께 동부 사운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아니던가?

모두 아날로그 황금기의 유산들이고, 그런 음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세대의 음을 잘 알고 있고, 지향하는 음도 그런 쪽이라, 당연히, 아니 어쩌면 숙명적으로 뱅가드 시리즈를 만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뱅가드 스카우트와 스피카 TC-50

이번에 만난 뱅가드 스카우트는 뱅가드 시리즈의 신제품이다. 동시에 칼데라라는 10인치짜리 우퍼를 쓴 액티브 서브우퍼도 발매되었다. 즉, 본 기를 쓰다가 저역을 보강할 때 칼데라(Caldera)를 쓰라는 의미다. 물론 꼭 쓰라는 뜻은 아니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하긴 칼데라의 가격이 고작 200달러. 뭐, 큰 부담이 갈 정도의 금액은 아니다. 당연히 뱅가드 스카우트의 가격도 착하다. 미국의 평을 보면, 가솔린의 갤런당 가격이 6달러 할 때, 다지의 램(RAM)을 가득 채울 정도만도 못하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만큼 싸다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종종 언급되는 스피커가 바로 스피카(Spica)라는 회사의 TC-50이다. 이것은 1984년에 처음 등장해서 여러 가지 변형이 나올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사운드의 제품이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뱅가드 스카우트가 추구하는 음이 바로 전통적인 아메리칸 사운드라는 뜻도 된다. 뱅가드가 브리티시 사운드라면, 뱅가드 스카우트는 아메리칸 사운드 지향인 셈이다.

스펙의 추적

사실 프로젝트 베이스로 제품을 만들고 또 가격대도 저렴한 터라, 베라 파이의 여러 제품에 대한 스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라는 의미다. 참고로 베라의 앰프들을 보면 얼마 전에 단종된 A25가 고작 25W를 내는 데에 그친다. 최근에 런칭된 A40은 40W. 단 클래스 A 방식의 설계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검색해 봤더니, 이마저 구할 수가 없다. 한숨이 나온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들어보고 싶다.

이런 부분을 파악하고, 또 파이오니아 SX-424를 보면, 스피커의 구동에 있어서 큰 출력을 요하지는 않는다고 보인다. 물론 감도는 무척 낮지만, 임피던스의 변화가 심하지 않아서 앰프가 받는 스트레스가 적다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여기서 뱅가드 스카우트의 스펙을 잠시 살펴보자. 일단 감도는 84.5dB. 정말 낮다. 단, 감도는 8옴이다. 50W의 출력이 권장되고 있다. 드라이버 구성은 25mm 실크 돔 트위터에 130mm 페이퍼 콘이다. 전형적인 2웨이 스피커이고, 뒷면 상단에 둥근 덕트가 배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의 설계라 하겠다. 이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스펙의 전부다.

그래서 참고 사항으로 TC-50의 스펙을 알아봤다. 1984년에 나온 오리지널 모델을 근거로 삼은 내용이다. 이 제품의 감도는 84dB. 본 기와 거의 같다. 단, 임피던스는 4옴. 주파수 대역이 60Hz~17KHz다. 사실 뱅가드 스카우트를 들으면, 중역대의 에너지가 충실하다고 판단이 되는데, 약간 협소한 주파수 대역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음의 표현력에 있어서는 별 부족함이 없었다.

이 작은 스피커의 사이즈를 생각할 때, 저역의 리스폰스를 확 내리라 요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딱 필요한 만큼의 주파수 대역이라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본격적인 시청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동원한 것은 웨이버사의 W Slim Lite 2.0. 80W의 출력을 내는 제품인데, 스트리머가 포함되어 있어서, 일종의 올인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 타이달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시청곡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다이애나 크롤 ⟨Temptation⟩
• 스탄 게츠 & 조앙 길베르토 ⟨The Girl from Ipanema⟩
• AC/DC ⟨Back in Black⟩
• 레드 제플린 ⟨Whole Lotta Love⟩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Temptation
앨범   The Girl In The Other Room

우선 크롤부터. 베이스 라인이 명료하고, 드럼의 타격감이 일품이다. 반응 또한 빠르다. 무대는 넓지 않지만, 악기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고, 포지션도 명료하다. 미드베이스의 유닛을 보면, 과거 쭈구리라고 불렀던 명 유닛이 떠오른다. 분할 진동이 억제되고, 자연스러운 음색이 일품이었는데, 바로 그 느낌이다.

진솔하면서, 가식이 없는 음이 특히 매력적이다. 크롤의 보컬은 화장기가 일절 없다. 오히려 무덤덤하게 다가온다. 모니터라는 말이 어울리게 일절 착색이 없으면서도 힘이 넘치는 사운드가 특별했다.

아티스트   Stan Getz, João Gilberto
곡   The Girl From Ipanema
앨범   Getz/Gilberto

이어서 스탄 게츠. 60년대의 녹음이지만, 매우 정돈되고, 안정된 음이 나왔다. 해상도에 큰 불만이 없고, 뮤지션들의 포지션도 명료하다. 보컬은 깊은 내공으로 편안하게 상대를 설득한다고나 할까? 전혀 힘을 주지 않고 부르는데 매력적이다.

특히, 아스트러드의 매혹적인 음색은 특필할 만하다. 이윽고 게츠가 나오는데, 특유의 관능적이고, 풍부한 음색에 깜짝 놀랐다. 마치 게츠를 위해 스피커를 만든 듯, 이 뮤지션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아티스트   AC/DC
곡   Back In Black
앨범   Back In Black

이제 록으로 바꿔서 AC/DC를 들었다. 와우 전혀 다른 느낌이다. 드럼의 타격감, 기타의 리프, 보컬의 샤우트 등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그렇다. 이 스피커의 핵심은 이런 록에 있는 것이다.

충실한 중역대의 매력이 정말 파워풀하게 펼쳐진다. 의외로 킥 드럼의 모습도 명료한데, 스펙을 넘어선 모습이다. 이 작은 녀석이 이처럼 당찬 음을 낼 줄 전혀 상상을 못했다.

아티스트   Led Zeppelin
곡   Whole Lotta Love
앨범   Led Zeppelin II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 과연 존 보냄의 묵직한 드러밍과 지미 페이지의 화려한 기타 웍이 정말 눈부시게 펼쳐진다. 로버트 플랜트의 싱싱한 보컬 역시 일체 가감이 없이 나온다. 중간에 다양한 소음을 넣은 효과음이 나오는데, 아마도 사이키델릭 시대의 유산 같다.

이 부분에서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사운드가 재생되었다. 무대 또한 전혀 좁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 록에서 완전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록이나 메탈, 가요 등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들어보라 권하고 싶다.

결론

요즘 자고 일어나면 억대의 제품이 나오는 형상이다. 정말 그림의 떡이다.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로우 파이 쪽도 착실히 진화를 해서, 정말 이 가격대의 제품마저 자신의 개성과 존재감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 이래서 참 오디오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취미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제품을 찾는 분들이라면, 꼭 체크해야 할 스피커라 본다. 본격적인 하이파이뿐 아니라, 홈시어터에 써도 좋고, 혹은 데스크 탑용으로도 무방하다. 여러모로 쓰임새가 다양해서 마치 보험을 들 듯,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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