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이자와, 그리고 나가노현에 깃든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숨결.

호텔로 정의할 수 없는 곳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고작 1시간. 도쿄 근교 여행지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쉽지만,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가루이자와(Karuizawa)는 가루이자와 자체로 온전하다. 오늘날의 가루이자와는 1886년 캐나다 선교사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Alexander Croft Shaw)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지역의 순수한 자연과 온화한 기후에 감명받았고, 여름 휴양지로 사방에 소개했다. 많은 선교사와 그 가족이 가루이자와에 정착한 계기가 됐으며, 교회와 서양식 건물도 속속 들어섰다. 그렇게 형성된 지역 사회는 가루이자와를 밝고, 깨끗하고, 아늑한 마을로 가꿔 나갔다. 1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커뮤니티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한결같다.

애석하게도 여행자가 이 감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다. 짧은 체류 시간과 제한된 공간 등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혀서 그렇다. 대신 가루이자와를 만나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는 있다. 가루이자와의 터줏대감, 110년의 역사를 지닌 ‘호시노야 가루이자와(HOSHINOYA Karuizawa)’다. 호시노야 구역에 발을 들일 때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오감으로 가루이자와를 느낄 수 있다. 숲에 자리한 별도의 리셉션 공간에서 투숙 경험은 시작된다. 달콤한 아마자케(감주)와 선선한 바람으로 이동 시간의 피로를 녹이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싱잉볼 연주, 새와 계곡이 만든 자연의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사회와 단절되는 순간이다.


놀라움의 시작일 뿐, 타나다 라운지(계단식 논을 모티브로 한 정원)와 계곡, 객실(미즈나미·야마로지·니와로지 총 77개), 라운지 등 메인 무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독채 형태의 객실들 사이로는 계곡이 흐르고, 아사마산과 수많은 나무가 배경이 돼 준다. 자연과 맞닿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과 TV를 끼고 사는 보통날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높은 층고와 은은한 빛이 감싸고 있는 방은 안식처이자 전망대가 돼 준다. 모든 공간을 관통하는 특징인데, 광활한 숲을 닮은 듯 어디에서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고 조명은 필요한 곳에만 적절히 배치해 자연광과 그림자의 역할을 빼앗지 않았다. 아침에는 화사함이 내려앉고, 해가 지면 낭만이 깃들도록 한 치밀한 설계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호시노야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숙소 곳곳을 걷거나 프로그램(모닝 스트레치·피키오 등)에 참여하면 이곳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마무리는 특별한 온천탕(Meditation Bath)에서의 명상이다. 외부의 자극이 차단된 어둠과 따스한 빛, 서로 다른 분위기의 탕을 오가며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 머물렀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호시노야의 여러 공간을 부산하게 움직이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곳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분명 럭셔리 호텔로 분류돼 있지만, 시설 모양새를 제외하고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모든 호시노야 지점을 디자인한 리에 아즈마(Rie Azuma)의 인터뷰에서 단서를 찾았고, 호텔과 료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생각했다.

호텔과 전통 료칸(일본식 숙박시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호시노 리조트는 각 시설이 설정한 프라이빗(사적인 공간)과 퍼블릭(공공장소)의 차이로 봤다. 호텔은 객실을 제외하고 모든 공간이 퍼블릭 영역이다.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도, 라운지에 갈 때도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야 한다. 고급화될수록 드레스 코드 등 지켜야 할 규칙도 많아진다. 료칸은 조금 다르다. 료칸 밖은 퍼블릭이고, 객실은 프라이빗이다. 외부와 객실 사이에 있는,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면서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이 모호해진다. 료칸은 이 중간 영역을 서비스 공간으로 활용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에 대입하면 정원과 레스토랑, 라운지, 온천 등이 중간 지대다. 호시노야는 외부인의 중간 지대 이용을 제한해 투숙객이 사유할 수 있는 범위를 호텔보다 훨씬 넓게 설정했다. 게다가 복장에도 자유를 부여했다. 객실에 비치된 사무에(Samue, 남색이나 갈색으로 염색한 일본 전통복)를 입고 잠을 잘 수도, 식당을 가거나 라운지에서 쉴 수도 있다. 완전한 휴식이자 해방이다.
즉,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호텔의 현대적인 디자인을 차용하고, 료칸의 서비스와 공간 활용, 가루이자와의 특색 등을 잘 버무린 곳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개념이고, 가루이자와의 문화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하나의 철학, EIMY
호시노야가 자연을 활용하는 방법은 미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에너지 자급자족, EIMY(Energy In My Yard)를 행하고 있다. 낯선 개념인데,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직접 생산한다는 철학이다. 95년 전 호시노 료칸(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전신)이 수력발전에 성공한 덕분이다. 숙소에서 쓰는 전기의 70%는 스스로 충당하고 있으며, 현재는 지열(활화산인 아사마산과 온천의 영향)도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다.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가루이자와의 청정함을 지켜나가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세계로 넓혀 봐도 이처럼 자연 에너지를 잘 이용하는 숙소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기적의 입지’라는 직원의 설명처럼 110년 전 이 땅에 호시노야의 씨앗을 심은 창업주 구니지 호시노(Kuniji Hoshino)의 혜안에 놀랄 뿐이다.

가루이자와를 탐닉하는 지름길
지역을 가장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음식에 있다고 믿는다. 가루이자와가 속한 나가노현은 야생을 품고 있다. 식문화에서도 이러한 지역색이 드러나는데 산나물이 풍부하고, 수렵육(Gibier, 지비에) 요리가 발달해 있다. 우리가 소, 돼지, 닭고기를 흔하게 먹듯 여기서는 사슴, 토끼, 멧돼지 고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하고 있다. 또 맑은 강이 흐르고 있어 산천어와 잉어 등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미식가라면 벌써 흥미가 생겼을 터.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가스케(Kasuke)는 ‘산의 가이세키’를 통해 가루이자와, 나가노현의 맛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여행자가 가루이자와의 계절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철 먹거리를 활용하고, 음식 구성도 2개월마다 바꾸고 있다. 이번 초여름에는 은어와 갯장어, 톳을 활용했고, 잉어회와 사슴고기 스테이크 등으로 가루이자와를 선사했다. 또 물냉이와 아스파라거스를 활용해 일본 정원을 표현한 스키야끼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올해 가을, 겨울의 맛은 어떻게 해석하고, 형상화할지 벌써 궁금하다.

가이세키를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 사케 & 와인 페어링이다. 가스케는 가루이자와 인근 사쿠(Saku) 지역 양조장의 사케를 비롯해 음식에 맞는 다양한 술을 준비하고 있다. 한 잔 또는 한 병만 고르기 어렵다면 페어링으로 여러 술을 조금씩 맛보는 게 합리적이다.


아침 식사는 10개 코스로 구성된 가이세키보다는 가볍고, 산뜻하게 준비된다. 산의 기운을 머금은 채소를 많이 쓰고, 소화하기 편하게 간을 약하게 한다. 달큼하고 아삭한 양상추로 입맛을 깨우고, 단맛이 한껏 응축된 찐 채소(아스파라거스·화이트 아스파라거스·버섯·베이비콘·당근)로 위장에 시동을 건다. 채소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미소(된장)를 곁들이면 맛이 한층 풍성해진다. 나가노현이 일본 미소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미소에 진심인 지역이니 듬뿍 찍어 먹자. 메인은 고슬고슬한 쌀밥, 그리고 생선구이, 계란말이, 오뎅(곤약·무 등), 해초류 무침, 일본식 채소절임이 반찬으로 나온다. 밥이 부담스럽다면 누룽지와 비슷한 맛이 나는 소바죽이 대안이다.

조식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건 타나다 라운지의 경치.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초록빛 정원이 운치를 더한다. 라운지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야외 좌석에서 즐기는 일본식 애프터눈티다. 흔히 보는 3단 트레이의 서양식 구성이 아니라 지역의 정서를 듬뿍 넣었다. 알록달록한 꽃 초밥과 와사비 마카롱, 미소 마카롱, 민물고기 커틀릿 샌드위치, 화과자 등으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샐러드와 과일, 고기도 포함돼 있어 식사와 디저트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졸졸 흐르는 물, 귀여운 오리도 벗이 돼 준다.

마지막으로 사사로운 이야기 한 가지 더. 호시노야(도쿄·교토·후지·인도네시아 발리·대만 구관 등)의 메인 다이닝 공간은 별도의 이름 없이 운영되는데, 오직 가루이자와만 ‘가스케’라고 명명했다. 호시노 가문의 출발점인 가스케 호시노(Kasuke Hoshino, 1849~1919)의 이름을 따 왔는데, 실질적으로 호시노 리조트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이다. 호시노상점(식료품 & 잡화)을 운영하던 그가 방적으로 큰 부를 축적했으니 말이다. 아들인 구니지 호시노가 이 자본을 기반으로 1914년 료칸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는 5대째 요시하루 호시노(Yoshiharu Hoshino)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175년이라는 긴 시간이 유기적으로 엮인 호시노 세계관, 식당 이름 같은 작은 부분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호시노 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