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로 향하는 비행기 안, 상공에서부터 니가타의 정체성이 물결친다. 끝없이 넘실대는 황금색 논밭. 풍요롭고 기름진, 곡식의 땅. 니가타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일본 알프스’인 호쿠리쿠 지방의 산맥들로부터 연중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는데다, 비옥한 토양과 뚜렷한 사계절 기후, 농부들의 전통적인 농업 기술까지. 쌀 재배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전부 갖췄다.
쌀이 맛있으니 당연히 쌀로 만든 사케도 맛있을 수밖에. 니가타는 일본의 단일 현들 중 가장 많은 사케 양조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현 내 약 90개 이상의 사케 양조장에선 깔끔하고 세련된 맛의 고품질 사케를 정성껏 빚어 낸다. 니가타는 일본에서 가장 긴 현이기도 하다. 현의 대부분은 해안과 인접해 있다. 신선한 해산물이 거리의 편의점만큼이나 흔하단 얘기. 도처에 사케 양조장에, 이자카야에, 숨은 맛집들과 해산물 직판장이 즐비하니, 도저히 니가타에선 먹고 마시는 일에 게을러질 수가 없다. 담백하고 삼삼한 시골 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구수하고 따뜻한 한 끼. 그런 포근한 밥상을 닮은 곳이 바로, 니가타다.
부농의 대저택
북방문화 박물관
에도 시대, 에치고(니가타현의 옛 명칭) 제일의 대지주이자 부농으로 우뚝 올라섰던 이토 가문. 그들 7대의 역사와 문화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는 곳이 바로 북방문화 박물관이다.
부농의 저택답게 규모부터 대단하다. 약 2만9,000m2의 광대한 부지에 본채, 안채, 다실, 창고, 정원 등 이토 가문의 옛 대저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다미방 개수만 무려 65개. 순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졌고, 정삼각형의 다실과 회유식 정원 등에선 남다른 품격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100장의 다다미가 깔린 안채. 관혼상제 등 특별한 행사가 열리던 공간인데, 바깥의 정원이 액자처럼 펼쳐져 손은 자동으로 카메라 셔터로 향하게 된다. 단순히 건축물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박물관’답게 고고학 자료, 공예품, 역대 당주가 소장했던 미술품 컬렉션까지 니가타의 전통과 예술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놀랄 준비 되셨나요?
니가타시 수족관 마린피아 니혼카이
반전의 연속이다. 평범한 수족관인가 했는데, 느닷없이 우주선 같은 대왕가오리가 시야를 가로막더니, 손톱만 한 해파리가 몽환적인 청록빛으로 발광한다. 야외에선 훔볼트펭귄들이 모여 수다 삼매경이다. 니가타시 수족관에선 뭘 목격하든 놀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마린피아 니혼카이’란 애칭을 지닌 니가타시 수족관. 바다에서 서식하는 약 600종 2만여 마리의 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본관에서는 산호초와 갯벌 등 7개 해안 환경을 재현하고 그곳에서 서식하는 어류들을 관찰할 수 있다. ‘니혼카이대수조’에는 수조를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마린 터널’도 있다. 야외의 별관 어트랙션도 즐길 거리가 빵빵하다. ‘돌고래 스타디움’에서는 수족관 넘버원 인기 프로그램인 돌고래쇼가 매일 열린다. 멸종 위기종인 훔볼트펭귄 70마리가 살고 있는 ‘펭귄 해안’도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장담하건대, 펭귄들이 이리저리 헤엄치고 뒤뚱거리는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니가타시의 상징
반다이바시
니가타시의 상징 중 하나. 시 중심부에 흐르는 시나노강에 놓인 약 307m 길이의 다리다. 튼튼한 석조와 6개의 유려한 아치가 연속으로 이어져 다리를 완성한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지만 겉면은 화강암으로 장식했기에 중후한 느낌을 풍긴다.
지금의 다리는 1929년에 놓인 3대 반다이바시다. 이래 봬도 1964년에 발생한 니가타 지진에도 끄떡 없었을 만큼 견고하다고. 그 건축 기술과 디자인은 국가 차원에서도 인정했다. 가교 75주년이었던 2004년 7월, 반다이바시는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국도에 놓인 교량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 도쿄의 니혼바시 다리에 이어 두 번째라고. 시내의 주요 교통로이기 때문에 평소 차량 통행량이 많지만, 인도가 넓게 정비돼 있어 걸어서 건널 수도 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시나노 강가의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반다이바시 다리가 가장 예쁘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데, 두 풍경 모두에 낭만이 있다.
일본 100경의 위엄
사사가와 나가레
니가타 시내에서 북쪽으로 1시간 반쯤 달렸을까. 파도치는 바다가 차창을 가득 메우더니, 풍경이 별안간 다이내믹해졌다. 거친 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기암괴석, 암초, 동굴 그리고 절벽…. 굴곡진 풍경을 선사하는 이곳은 무라카미시에 있는 사사가와 나가레다. 11km가량 이어진 긴 해안 명승지로, 국가 명승 및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뿐 아니라 ‘일본 100경’에도 선정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크고 작은 해변과 암초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독 자동차들이 바퀴를 멈추는 곳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벤텐암(弁天岩)이다. 해저 화산의 분화에 의해 생긴 암초섬으로, 어선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는 등대와 바다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 파도와 함께 붉은 도리이를 배경으로 찰칵, 훌륭한 인증숏 포인트다.
사사가와 나가레를 구석구석 탐색하는 덴 유람선만 한 방법이 또 없다. 약 40분간의 여정 동안 안경 바위, 공룡 바위 등 웅장한 기암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에는 맑게 갠 바다, 저녁에는 암벽 사이로 지는 태양을 바라볼 수도 있다. 선상에서 ‘갈매기 먹이 주기’는 꼭 해 봐야 할 체험 중 하나다. 여기에 맛깔나는 각종 건어물과 훈제 생선 쇼핑까지 알뜰하게 마치면, 사사가와 나가레 완전 정복 가능.
260년의 양조 역사
이마요 쓰카사 양조장
약 26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양조장. 발효 음식으로 유명한 ‘눗타리’ 마을에서 1767년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매년 나무통에 술을 빚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사탕수수, 옥수수, 녹말 등을 발효시킨 양조 알코올 또한 일절 첨가하지 않는단다. 달달하면서도 잡미 없이 깔끔하고 세련된 술맛의 비결은 ‘전통’과 ‘순수’에 있던 것.
양조장 견학을 미리 예약하면 술 제조 과정은 물론, 니가타와 눗타리 지역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14개의 큰 회색 술 탱크가 있는 담금실, 압착기로 술을 짜는 압착실, 짜낸 술을 탱크에서 혼합하고 여과 공정을 거치는 양조실. 이 모든 공간을 차례로 둘러보다 보면 한 병의 사케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짙은 땀과 노력이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
양조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시음! 매점의 시음 코너에서는 계절별 술, 무알코올 누룩주 등 10종류 이상의 술을 상시 맛볼 수 있다. 오직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사케도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는 게 이득이다.
500엔의 행복
폰슈칸
단순한 주류 판매점도 아니고, 지루한 사케 박물관도 아니다. 니가타현 내의 모든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인기 브랜드 사케 111종을 전부 시음할 수 있는, 여기는 ‘사케 천국’ 폰슈칸이다.
폰슈칸의 꽃은 단연 ‘500엔 사케 시음 코너’.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500엔으로 5개의 시음용 코인을 구매하고, 쭉 늘어선 소형 자판기에서 원하는 사케를 골라 코인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끝. 술 종류마다 가격도, 정미율도 조금씩 다르다. 참고로 정미율 숫자가 낮을수록 고급 사케다. 한쪽 구석에 놓인 갖가지 종류의 소금과 양념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소금을 입에 조금 머금고 사케를 마시면 술의 단맛이 극대화된다.
폰슈칸은 시음 코너 외에도 기념품 숍의 구성이 풍성하다.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사케 잔부터 폰슈칸 오리지널 굿즈, 쌀로 만든 각종 간식들까지. 술이 술술 넘어가고, 지갑도 술술 열리는, 다소 위험한(?) 곳이다. 니가타현에 폰슈칸 매장은 총 3곳이 있다. 그중 니가타역점이 가장 접근성이 좋다. 지하에 폰슈칸에서 운영하는 사케 전문 이자카야 ‘우오누마 니가타점’도 있으니 함께 들러 보길 추천.
●Local Taste
등뼈 기름의 축복
세아부라 라멘
‘세’는 척추, ‘아부라’는 기름. 돼지 등뼈에서 추출한 지방을 넣은 라멘이다. 두툼한 면발 위로 국물에 둥둥 뜬 동글동글한 것들이 전부 세아부라다. 마치 뚜껑처럼 면을 덮고 있어 면이 식거나 부는 걸 막아 준다.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은 돼지고기 지방이 잘 녹아 있어 진득하니 풍미가 깊다. 숙주, 계란, 차슈, 멘마, 김 등 취향껏 토핑을 올려 먹으면 되는데, 마늘이나 고추를 듬뿍 넣으면 기름진 맛을 잡아 주면서 국물 맛이 훨씬 깔끔해진다. 정신없이 코 박고 접시를 들이키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 뚝딱! 아, 등뼈 기름의 축복이 끝이 없다.
진득한 바다의 맛
말린 연어
니가타에는 ‘사쿠라 마스’라는 품종의 연어가 유명한데, 살이 정말 부드럽고 기름지다. 회, 스시, 구이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지만, 간장 소스에 재워 일광 건조한 말린 연어가 특히 인기가 높다. 인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연어를 태양과 바닷바람의 힘을 이용해 철저하게 수제로 말린 게 진득한 맛의 비결. 씹을수록 깊고 진한 바다 맛이 입 안에 퍼진다. 다양한 연어 제품이 궁금하다면, 사사가와 나가레에서 니가타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위치한 연어 전문 상점 ‘센넨자케 킷카와’를 들러 볼 것.
술과 밥의 완벽한 조합
사케 전문 이자카야
술과 밥이 맛있는 도시에 가장 흔한 게 있다면, 바로 사케 전문 이자카야다. 일반 이자카야와 다른 점은 수많은 종류의 니가타산 사케를 집중적으로 맛볼 수 있다는 것. 사케 샘플러를 주문하면, 니가타의 다양한 지역별 사케를 소량씩 맛보며 비교해 볼 수 있다. 사케와 페어링할 안주들로는 이왕이면 니가타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들이 좋겠다. 고시히카리로 만든 오니기리, 숯불에 구운 와규, 해산물 구이 등등 어느 걸 선택해도 사케와 찰떡궁합이다.
니가타산 특산물 파티
피아반다이 시장
니가타의 모든 먹거리는 피아반다이 시장으로 통한다. 생선, 육류, 쌀, 사케에 이르기까지 니가타가 자랑하는 최고의 특산품은 모두 이곳에 있다. 우선, 니가타 시내 최대 규모의 어시장에선 바다에서 갓 잡은 신선한 해산물들이 우글우글하다. 특제 생초밥, 회, 삶은 게, 숯불에 구운 생선 ‘하마야키’ 등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맛볼 수 있다. 해산물만 있다고 생각하면 섭하다. 연간 출하 두수가 30여 마리밖에 되지 않는 희귀한 ‘사도규’, 니가타를 대표하는 흑우 ‘무라카미규’ 등 고품질 육류 직판점도 있다. 피칸 테라스(Peekan Terrace)의 BBQ 공간을 미리 예약하면 시장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그릴에 구워 먹는 낭만이 현실이 된다.
이 밖에도 시장 내엔 마트와 베이커리, 카페와 식당 종류도 다양하다. 방문객들은 최대 난제에 직면한다. 도대체 뭘 먹을 것인가. 선택 장애가 온 당신을 위해 식당 하나만 추천하자면, ‘누카가마 스테이크 덮밥 전문점’. 니가타산 최고급 쌀인 고시히카리를 누카가마(쌀겨 솥)에 끓여 만든 스테이크 덮밥을 제공한다. 결코 고기 맛에도 지지 않는 쌀밥을 맛볼 수 있다.
해초와 메밀이 만나면
헤기 소바
니가타 향토 음식 중 하나인 헤기 소바. 해초를 넣고 만든 소바를 ‘헤기’라는 그릇에 한입 크기로 동글동글 뭉쳐 담는 게 특징이다. 쪽파와 와사비, 갈아 둔 깨 등을 소스에 넣고 소바를 적셔 먹으면 된다. 약간의 푸른빛을 띠는 면발은 찰기가 있어 목 넘김이 매끄럽고 탄력적이다. 일반 소바보다 메밀 함량이 높아 메밀 본래의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난다. 마지막엔 미역처럼 살짝 미끌미끌한 식감도 느껴진다. 노도구로(금태) 솥밥, 덴푸라, 계란찜 등과 곁들여 먹으면 보다 풍성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엄마 손맛
왓파메시
니가타의 명물이자 일본 전통 가정식 요리. 가다랑어포나 다시마로 묽게 국물을 내 지은 밥을 나무통인 왓파에 올려서 쪄 낸 ‘찐 밥’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나무 향이 미세하게 밴 밥은 촉촉하고 향긋하다. 밥 위에는 일반적으로 제철 야채, 해산물, 고기 등이 토핑처럼 올라간다. 여러 종류의 왓파메시가 있지만, 연어가 유명한 니가타인 만큼 연어와 연어알을 올린 연어 왓파메시가 인기다. 토란, 당근, 표고버섯 등 채소를 듬뿍 넣고 삶아 걸쭉하게 만든 요리인 ‘놋페’를 반찬으로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다. 엄마가 해 준 듯한 소박한 일본 가정식을 느끼고 싶다면, 왓파메시가 답이다.
극한의 스시
기와미 스시
실력 있는 스시 장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특상의 니기리 스시다. 이름에서부터 자부심이 느껴진다. ‘기와미’, 우리말로 극한 또는 최고라는 뜻이다. 번역하면 극한의 스시, 또는 최고의 스시. 좀 과장된 이름인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다. 정말 한 접시에 극한의 맛이 담겨 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신선한 제철 해산물의 맛이 순수하고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기와미 스시에는 반드시 ‘난반에비 쇼유’가 따라 나온다. 새우를 발효시켜 만든 간장인데, 스시의 풍미를 세 배는 더 끌어올려 준다.
Travel Tip
니가타, 어떻게 가요?
인천-니가타 직항 노선은 현재 대한항공이 주 3회 일정(화·목·토요일)으로 운항 중이다. 도쿄에서는 신칸센을 타고 약 2시간이면 니가타에 도착한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 니가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