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 자세히 보면 맛있는 여행지다. 대구육개장, 막창구이, 뭉티기, 동인동 찜갈비, 복어 불고기, 야끼우동 등 지역색이 강한 음식이 많고, 맛집으로 소문난 곳도 제법 많다. 게다가 치킨, 커피 등 유명 브랜드의 출발점이 대구인 경우도 많다. 덕분에 미식 테마로만 여행 일정을 채워도 2박3일은 거뜬하다.
최근에는 예술 여행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개관 한 달 만에 누적 관람객 7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흥행몰이에 성공했고, 근대건축물을 활용해 대구예술발전소, 일상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신세계갤러리도 있다. 11월에는 맛집+예술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트래비가 먼저 다녀왔는데, 대구 여행이 시작되는 동대구역 근처에서 맛집 3곳을 찾았다.
100년을 지켜갈 맛
해금강
‘맛집’임을 증명하는 온갖 수식어는 다 붙었다. 까다로운 맛집 인증제, 백년가게와 블루리본 등을 모두 사로잡은 대구 복불고기 식당이 있다. 그 명성이 궁금하다면 복불고기와 황복튀김, 복지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길 추천한다.
대구 사람이라면 이따금 복불고기가 아른거린다고 하는데, 먹자마자 단번에 이해했다. 부드러운 복어 살코기에 감칠맛 좋은 양념이 버무려지고, 식감을 더해줄 팽이버섯과 파가 장식한다. 오직 대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황복튀김은 바삭한 튀김옷 사이로 터져 흐르는 복어의 속살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배가 불러도 마지막 복지리는 놓칠 수 없다. 맑고 깔끔한 국물인데도 맛이 진해 감명 깊다. 동대구역에서 도보 4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대구에 들른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세기말 레트로 카페
영원아카이브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옛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영원아카이브는 이들을 100% 만족시킬 레트로 콘셉트의 카페다. 시그니처 메뉴는 알록달록한 과일과 과자가 올려진 프라페들. 시즌에 맞게 맛과 모양이 다양하게 변동된다. 프라페와 케이크의 예쁜 플레이팅에서 볼 수 있는 사장님만의 독특한 감성이 인테리어에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을 어디서 구하지?’ 싶은 힙하고 오래된 잡화들이 카페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홍콩 영화가 생각나는 금붕어 어항부터 세기말 디자인의 커튼, 포스터, 인형 등등 인정할 만한 빈티지 수집가다. 심지어 화장실까지 개성 있게 꾸며져 있어 괜히 오래 있고 싶게 만든다. 동성로에 놀러 왔다가 눈도 입도 즐기며 기분 좋게 머물다 가기 딱 좋은 카페다.
미스터 라멘의 상륙
라멘세타가야
뉴욕에서 라멘 붐을 일으키며 ‘미스터 라멘’이라 불린 마에지마 츠카사(Maejima Tsukasa)의 첫 한국 지점이다. 2000년에 라멘세타가야를 오픈한 이후 일본을 넘어 세계 곳곳에 세타가야 계열 라멘을 선보였다. 현재는 7개 브랜드를 운영하며 식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대구에서는 토핑에 따라 조금씩 메뉴명이 다르지만 크게 5개 라멘(시오·토리차슈·쇼유·토리파이탄·카라파이탄)를 선보이고 있다. 면 위에 올리는 재료들은 차슈(등심·삼겹살), 토리차슈(닭고기), 완탕, 시오 타마고, 죽순 등을 활용하고 있다. 깔끔한 국물을 즐기고 싶다면 닭과 해산물 육수를 섞어 소금으로 맛을 낸 시오라멘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토핑이 많을수록 좋으니 차슈와 완탕이 모두 올라간 시오 제타쿠 모리가 좋겠다. 한국인답게 매콤한 맛을 가미하고 싶다면 닭육수 라멘의 매운 버전인 카라파이탄 라멘을 권한다.
라멘 외에도 마요차 고항(다진 차슈와 마요네즈 덮밥), 세타가야시키 오야꼬동(세타가야식 닭고기 덮밥), 사라완탕(완탕 한 접시) 등이 곁들임 음식으로 준비된다. 또 오키나와 특산품인 시콰사(감귤류)로 만든 달콤한 주스와 생맥주도 갖췄다.
대구+
마르지 않는 간송의 꿈
대구 간송미술관
간송을 담은 큰 그릇이 대구에 자리 잡았다. 무려 9년을 공들인 국보급 박물관이다. 올해 9월 개관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개관 기념 특별전인 ‘여세동보(與世同寶)’를 놓치지 않으려 발걸음을 서둘렀다. ‘세상과 함께 보배 삼는다’는 메시지처럼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국보와 보물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고려청자 하며, 김홍도의 민화 등 귀중한 자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중에서도 눈을 떼기 힘든 작품은 신윤복의 ‘미인도’ 실물. 미술관은 2전시실 전체를 ‘미인도’ 한 작품에 내주었다. 2전시실의 어둡고 좁은 복도를 쭉 따라 걷다 보면 반듯하게 서 있는 미인도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다. 부가적인 설명이나 안내도 없다. 숨죽인 듯 조용한 공간에서 작품 속 미인의 머릿결부터 저고리, 버선까지 눈으로 찬찬히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소수 인원이 미인도를 독대하듯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고 한다.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 또 있다. 바로 ‘훈민정음해례본’이다. 3전시실에 입장하면 청각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읊는 소리가 들려온다. 훈민정음의 애민정신을 잘 담은 기획이다. 훈민정음해례본도 미인도와 마찬가지로 단독 전시되는 국보다. 간송 미술관을 꼼꼼히 둘러보면,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들 것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김예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