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국인들에겐 베일에 쌓인 여행지, 중국 무이산.
그가 숨기고 있는 7가지 그림자를 들추어 봤다.
차향이 흐르는 산
중국 대륙의 남동쪽, 복건성의 대왕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맥이 하나 있다. 중국인들이 평생 한 번은 찾고 싶은 명소라는 그곳, ‘무이산’. 약 1,000에서 2,000m 높이의 산들이 펼쳐져 있는 지역인데, 일단 지질학적 형상이 꽤 독특하다. 대체로 카르스트 지형(물에 녹기 쉬운 암석으로 구성된 대지가 용해되어 생성된 지형)이라 눈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에, 높은 절벽에, 깊은 협곡의 연속이다. 그 험준한 높낮이와 굴곡진 대지의 곡선이 곧 무이산의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큰 맥 중 하나다.
평균 해발 고도는 350m. 아열대 기후라 겨울에도 비교적 온난하다. 12월에도 평균 낮 기온은 15도 안팎이다. 다양한 희귀 생물종들이 무이산에 다수 자생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도시가 맵다고 했던가. 인구는 26만명밖에 안 되는 소도시지만, 인당 GDP는 무려 1만4,000달러에 달한다. 중국의 1인당 GDP가 약 1만2,500달러인 걸 생각해 보면 상당한 수치다. 자본의 원천은 찻잎에 있다. 과장 좀 보태서 무이산에선 길거리의 간판 중 90%가 찻집이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차, ‘대홍포’가 이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무이산 인구의 대다수가 차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지나가다 높은 지대에 널려 있는 푸른 밭의 정체는 백이면 백, 전부 차밭이다.
차 역사만큼이나 문화적 역사도 깊다. 무이산은 성리학의 이론을 집대성한 철학자 주희의 고향이기도 하다. 약 3세기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무이산엔 여러 고대 사찰과 건축물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 또한 남아 있다. 1999년, 무이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이곳이 지닌 자연경관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계문화유산’과 같은 단순한 수식어로 표현해 버리고 마는 건 글쎄…. 적어도 나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로.
Travel Tip
무이산 여행, 막막하다면?
2024년 현재, 한국과 무이산을 잇는 직항 노선은 없다. 그래서 추천한다. 교원투어, 노랑풍선, 온라인투어 등 국내 여행사들의 무이산 패키지 여행 상품. 낯선 소도시를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대부분 티웨이항공 또는 중국국제항공을 이용해 온주(원저우)에 도착해, 온주에서 무이산까지 버스로 약 5시간 이동해 여행하는 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동 시간이 다소 길긴 하지만, 귀한 풍경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쯤은 투자할 만하다. 온주+무이산 4일 또는 5일 상품을 이용하면 구곡계, 천유봉, 인상대홍포, 몽화록 등 무이산의 주요 명소들과 온주의 안탕산 및 신선거 트레킹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구곡계를 한눈에
천유봉
무이산 아홉굽이를 뜻하는 ‘구곡계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천유봉. 구곡계의 여섯 번째 굽이인 육곡에 속하는 곳으로, 무이산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봉우리다. ‘천유봉에 오르지 않고는 무이산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한번 올라 보면 그 말뜻을 알게 된다. 약 409m 높이의 산꼭대기에 여러 명봉들과 구곡강(Jiuqu River)의 장엄한 풍경이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문제는 절경을 보기 위해선 정상까지 총 880개 이상의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것. 절벽 위에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은 형태인데다 계단 하나하나의 높이가 웬만한 계단 3개를 합친 것보다 가파르다. 돌계단을 오르면 ‘천궁 속을 유람하는 듯하다’ 해서 천유(天游)의 칭호를 가지게 됐다는데. 천궁은 모르겠고, 당장이라도 황천길 티켓을 끊어야 할 것처럼 험난하다. 다행히 인고의 시간을 버티면 그에 상응하는, 아니 그 이상의 절경을 보답받을 수 있다.
무릉도원 속으로
구곡계 대나무 뗏목 래프팅
힘들여 등반할 필요도 없다. 무이산 구곡계를 유람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구곡계 대나무 뗏목 래프팅에 있다. 그저 구명조끼를 입고 뗏목 위에 올라타면 끝이다. 구곡계 상류에서 시작해 쌍유봉과 천유봉, 옥녀봉을 끼고 돌아 무이궁까지, 9.5km 길이의 ‘구곡 코스’를 약 1시간 반 동안 편히 앉아서 즐길 수 있다. 하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 양쪽으론 웅장한 봉우리가 펼쳐진다. 뗏목꾼의 노질에 보트가 절벽을 휘돌아간다. 고전적인 동시에 묘하게 몽환적이다. 물은 워낙 맑아 강바닥의 돌과 물고기 떼가 ‘시스루’로 다 보일 정도다. 이곳의 경치에 반한 주희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에서 ‘이곳이 바로 이상세계인 무릉도원이니 더 이상 별천지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노래했다. 돌아보니, 과연 그의 말이 맞다.
성리학의 고향
오부진
무이산시 남동쪽에 위치한 오부진은 성리학의 대가인 주희의 고향이다. 그가 40년간 머물며 공부하고, 저술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견습생을 가르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성리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주희의 생애와 학술 성과에 관한 자료가 전시돼 있는 주자사당, 주희가 강학한 곳인 주자서원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주희가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동네인 우푸 타운(Wufu Town). 남송 말기에 번성했던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대 마을로, 송나라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과거엔 상점 밀집 지역이자 유명 인사와 학자들이 모여들었던 곳이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구불구불한 골목, 무너진 흙벽, 곰팡이 핀 나무판, 다정한 노인들과 햇볕을 쬐는 닭들만이 고요히 자리를 지키는, 너무도 담백하고 소박한 동네다.
71피트에 담긴 생애
주희 동상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주희 동상. 71피트(약 22m)의 높이는 주희의 71년 생애를 상징한다. 무이산의 새로운 랜드마크 중 하나로, 동상 앞 연못은 온통 연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나라의 오죽헌과 여러모로 닮아 있는 곳.
주희의 왼손에는 두루마리가 들려 있고, 오른손은 가슴 쪽을 향하고 있다. 마치 방문객에게 사물에 대한 지식과 탐구 정신을 알려 주려는 듯, 친절하고도 따뜻한 얼굴이다.
황제의 차
대홍포
역사를 알려면 북경에 가고, 돈을 벌려면 상해를 가고, 차를 마시려거든 복건성을 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복건성의 차는 중국에서도 손꼽히게 유명하다. 그중 바위 틈에서 자라는 무이산의 암차(巖茶)가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인데, 특히 가장 진귀한 게 바로 대홍포(大紅袍)다.
kg당 가격대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데 사실 그럴 만하다. 대홍포는 높은 바위 절벽 위에서 자생하고 있는 네 그루뿐인 차나무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차다. 뭐든 한정판엔 그만한 값이 붙는 법. 명나라 황제가 병에 걸렸을 때 무이산의 차가 그의 건강을 회복시켰다는 전설 또한 전해진다. 대홍포가 ‘황제의 차’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다. 깊고 진한 맛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 동안 우려도 그 맛이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송나라 시대로 시간여행
몽화록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문화 테마 단지다. 복건성 북부의 고대 마을부터 장시성과 안후이성의 안뜰에 이르기까지, 명청 시대의 역사적 건축물 100여 채가 한곳에 모여 있다. 무술관, 와인 상점, 대장간, 착유점 등 수많은 상점과 행상인들이 모여 있는 뒷골목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킨다. 매일 저녁 15분간 진행되는 대규모 라이브 공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주희가 무이산에서 건양까지 배를 타고 강의를 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장면을 전문 배우들이 재현해 준다. 뻔한 표현이지만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뭔지, 걷기만 해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장예모 감독의 걸작
인상대홍포
중국 전역에서 보러 올 정도로 유명한 공연이라더니. 과연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만 봐도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2008년과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을 연출한 장예모 감독의 ‘인상 시리즈’ 공연 중 하나인 인상대홍포. 일단 실제 천유봉이 야외 공연장 뒷배경에 비현실적으로 서 있는 것부터 압권이다. 자연환경이 곧 무대 배경이니 따로 설치 구조물이 필요 없다. 공연이 시작되면 3,000여 석의 객석 전체가 360°로 뱅글뱅글 돌아가며 무대가 바뀐다. 출연진만 해도 족히 수백 명은 되는 거대한 규모다. 주 스토리는 무이산 옥녀봉과 대왕암의 유래와 대홍포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어로 진행되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흥미롭다. 공연 막바지에 출연진 모두가 찻잎을 공중에 흩뿌리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1시간 반의 시간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공연.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플랜에이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