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에 걸쳐 이어진 아리타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다.
●아리타 도자기의 시작점
규슈 도자기문화관 & 아리타 세라
일본 도자기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그 시작에 조선의 도조(陶祖) ‘이삼평’이 있다. 그는 정유재란 때 히젠국(지금의 사가현과 나가사키현) 사가번의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군대에 잡혀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 도공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그는 영주로부터 백자를 만들 것을 명령받았고, 1616년 이삼평은 도자기의 원료인 양질의 도석(고령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역이 바로 ‘아리타의 이즈미야마’다.
그렇게 1620년대부터 1650년대까지, 조선의 도공에 의해 일본 최초의 백자가 생산되었고, 당시 이 백자는 ‘이마리항’을 통해 출하되었다. 그래서 아리타 도자기를 ‘이마리 도자기’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 시기에 생산된 도자기는 소지(흙)가 두껍고, 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청화백자’가 대부분이라 소박하고 일상적인 느낌을 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타 도자기의 색회(이로에) 기법은 1640년대, 일본의 도공인 ‘사카이다 가키에몬’에 의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도자기용 안료를 유약 위에 채색하는 기법을 통해 ‘단색 자기’에서 ‘다색 자기’로 발전했다. 이후 1650년대에 들어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의 각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1670년대 이후 가키에몬 양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당시 대략 700만개의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일본 도자기 문화를 지탱하는 아리타 도자기는 크게 3가지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백색 자기 위 여백의 미를 살려 청색과 대비되는 붉은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가키에몬(右衛門) 양식’, 깨끗한 표면과 정교한 그림을 그려 고급미를 추구한 ‘나베시마(鍋島) 양식’, 흰 표면에 푸른 계열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고 이마리(古 伊万里) 양식’. 이 모든 아리타 도자기의 역사는 규슈 도자기문화관에서 한눈에 만나 볼 수 있다. 상실 전시실은 총 5개로 구성되어 있고 특별 기획전을 제외하곤 무료 전시다. 입구에는 아리타 지역의 가마들이 힘을 합쳐 만든 오르골 도자기 시계가 자리한다. 높이는 무려 193cm, 폭이 180c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인데 30분마다 오르골이 재생된다.


아리타 도자기를 구입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단연 아리타 세라(Arita Sera)를 추천한다. 약 6만6,000m2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에 걸쳐 도자기 숍이 사방으로 가득하다. 식기, 미술품은 물론이고 레스토랑, 호텔, 카페도 곳곳에 숨어있다. 만약 아리타 세라에서 쇼핑 중 휴식이 필요하다면 ‘1616 아리타 재팬(Arita Japan)’ 카페를 추천한다.
●YASUNA
아리타의 맛 야스나
야스나는 1971년, 아리타에 개업한 가이세키 레스토랑이다. 가이세키 요리는 일본식 정찬으로 음식별로 재료와 조리법이 중복되지 않게 내는 것이 특징이다. ‘야스나’는 점심 한정으로 고젠(高膳)을 선보인다. 밥, 반찬, 국, 절임음식 등이 올라간 한상차림을 아리타 도자기에 담아 정갈하게 내어 준다. 일식의 정수를 아리타의 예술에 담아내는 콘셉트.

레스토랑 옆쪽으로는 방대한 빈티지 도자기 컬렉션을 보유한 숍이 자리한다. 야스나의 오너, ‘니시야마 야스히로’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수집한 컬렉션이다. 그는 미술상 면허까지 취득한 아리타 도자기 전문가다. 그에게 ‘빈티지 아리타 도자기’의 매력을 물었다.

Q. 빈티지 도자기 수집에 어떠한 기준이 있나? 왜 하필 아리타 도자기인가?
수집의 기준이라면, 역시 돈이 되는 것. 농담이고,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수집한다. 그중 아리타 도자기를 유독 고집하는 이유는, 일본의 도자기 역사가 아리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초기 에도시대의 아리타 도자기를 보면 작가의 진심 어린 고뇌와 시간이 느껴진다.

Q. 빈티지 도자기는 주로 어디서 수집하나?
솔직히 질 좋은 아리타 빈티지 도자기는 아리타에 거의 없다. 아리타 도자기 역사를 400년 정도로 보는데, 그중 초기 150년 정도가 전부 해외에 수출됐다. 주로 유럽에 많고, 의외로 도쿄에서도 좋은 컬렉션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아리타 도자기는 수출용 작품과 국내용 작품의 추구미가 확연히 다르다. 유럽에 있는 빈티지 아리타 도자기는 주로 화려함에 초점을, 국내(도쿄)에서 있는 빈티지 아리타 도자기는 우아함과 정교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Q. 빈티지 도자기 수집의 묘미는?
글쎄, 수집은 결국 아름다운 역사를 모아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수집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에 기준을 두고 모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면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물레를 사용하는 데 세금이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자기를 손으로 성형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는 기계 물레가 도입되면서 도자기에 모양이 점점 더 세밀해진다. 역사적인 특징을 공부해 시대별로 컬렉션을 모아 가는 재미가 바로 수집의 묘미다.
●GENEMON GAMA
아리타의 멋 겐에몬가마
도자기는 작가의 의도를 100% 담기 어려운 예술이다. 반드시 가마에서 소성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구워지는 과정 중 어떤 모습을 최종적으로 갖출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도자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리타 곳곳에서 특색 있는 가마를 찾아볼 수 있다. 아리타 겐에몬 가마는 1753년 창업 이래로 무려 약 270년간 생활 자기를 빚어 온 곳이다. 검은 기와 위로 우뚝 솟은 빨간 벽돌의 굴뚝. 겐에몬 가마의 오너, 카네코 쇼지를 만나 아리타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좋은 도자기란 무엇일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아리타 도자기의 쓰임을 2가지로 크게 분류하자면 장식용과 식기용으로 나눌 수 있겠다. 겐에몬 가마에서는 대부분 식기용 도자기를 만든다. ‘식기’는 아침부터 밤까지, 삶에 가장 밀접한 도자기다. 그래서 아름답지만 편안해야 하고, 단단하지만 따뜻해야 한다. 그래서 겐에몬 가마의 모든 식기는 도공의 손으로 직접 만든다. 인쇄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물론 효율적인 측면에서 그리 좋진 않다. 그러나 겐에몬 가마의 모든 제품은 여전히 손을 고집한다. 흙을 직접 만지며 온기를 담고, 메시지를 담는 과정이랄까. 손으로 만든 도자기의 형태, 손으로 만든 도자기의 그림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도안, 감촉, 개성, 무엇보다 따스함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그랬으면 하는, 이토록 막연한 소망을 담은 도자기가 바로 좋은 도자기가 아닐까.

Q. 겐에몬 가마에서 생산하는 도자기의 특징은 무엇인가?
겐에몬 가마는 이마리 양식으로 ‘생활 자기’를 빚는 곳이다. 현재 겐에몬 가마에는 40명 정도의 도공이 일하고 있다. 겐에몬 가마는 누구나 구입 가능한 도자기, 동시에 그릇 위에 올라가는 음식이 빛날 수 있는 도자기를 추구한다. 우리는 예술품이 아닌 생활 자기를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그것이 겐에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드는 곳.

Q. 도자기의 매력은?
사실 태어나 보니 곁에 도자기가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생각해 보진 않았다. 내겐 도자기가 삶이나 다름없으니까. 삶에서 매력을 찾는 일은 큰 의미가 없지 않나. 그 자체로 삶인 것을. 그래도 생각해 본다면 아리타 도자기의 매력은 역시나 문양이 아닐까. 전통적인 문양은 하나하나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들을 어떻게 함축적으로 도자기에 표현할 것인가를 주로 고민한다. 겐에몬 가마는 실생활에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들고 있고 매장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쓰임에 대한 피드백이 즉각적인 편이다. 단순히 도자기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그 쓰임을 체감하고 소통하는 것. 이것 역시 도자기의 매력이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