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에서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
고이 간직해 온 그 여행의 영수증.

■Hong Kong Sheung Wan, Hollywood Road
WHERE : 홍콩 셩완 할리우드 로드
EDITOR’S COMMENT
내 인생 첫 도자기는 홍콩 출신이다. 셩완(Sheung Wan) 캣 스트리트, 어느 고물상 선반 위에서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있던 배가 둥글고 목이 긴 화병. 와인처럼 붉은 적색과 바랜 듯한 옥색이 섞일 듯 섞이지 않으며, 곡선마다 농담을 달리하는 외형. 홍콩에서 이 도자기를 발견하고는 문득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참 덜컥도 구매했더랬지.
코로나로 멈췄던 세상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2021년에서다. 멈춰 봐서 알았다.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내게는 이 여행에서 문득 마주한, 저 영롱한 도자기를 가지는 일이 그랬다. 여행의 행운을 도자기로 기억하는 삶, 근사하지 않은가.

홍콩에서 빈티지 도자기 쇼핑을 계획한다면, 아무래도 셩완이 딱이다. 이곳에 ‘캣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벼룩시장 거리가 있다. 과거 홍콩에서는 도둑을 쥐라고 표현했고, 그 도둑이 훔친 물건을 매입해 판매하는 장물아비를 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한 거리 이름이다.

사실 캣 스트리트에는, 물론 그 와중에 제대로 된 것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어느 다락에서 뒹굴던 정체불명의 고물이 대부분이다. 연대불명의 잡동사니를 지나쳐, 만모사원 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센트럴(Central)까지 직선으로 뻗은 할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가 펼쳐진다. 이 길 양옆으로 빈티지 도자기 편집숍이 가득 모여 있다. 할리우드 로드는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물품들을 거래하던 거리다.

이곳에서 다루는 도자기들은 비교적 연대가 특정되는 편이며, 좋은 컨디션에서 보관해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도 높다. 이따금 진품을 가장한 가짜 골동품도 섞여 있어 쇼핑 전, 홍콩의 아트북이나 홍콩 고궁박물관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좋은 도자기를 찾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좋은 것을 좋게, 나쁜 것을 나쁘게 구분할 수 있는 그대의 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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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Arita, Yasuna
WHERE :일본 아리타 야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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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도자기라면, 그 누구라도 ‘아리타’의 것을 최고로 꼽는다. 사실 일본 도자기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그 시작에 우리나라, 조선이 있다. 도조(陶祖) ‘이삼평’, 그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인데, 그는 당시 일본의 영주로부터 백자를 만들 것을 명령받는다. 이후 1616년 도자기의 원료인 양질의 도석(고령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역이 바로 ‘아리타 이즈미야마’다.

조선인 도공에 의해 1620년대부터 1650년대까지 일본 최초의 백자가 생산되었는데, 이 백자는 ‘이마리항’을 통해 출하되며 ‘이마리 도자기’라고 불리게 된다. 사실 과거에 생산된 질 좋은 아리타 도자기는 현재 아리타에 거의 없다. 아리타 도자기 역사를 400년 정도로 보는데, 그중 초기 150년 정도에 생산된 물량 전부가 해외로 수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외로 아리타보다는 수도인 도쿄에 물량이 많고, 유럽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아리타에서 오래된 아리타 도자기를 찾는 방법은, 아리타 빈티지 도자기를 수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야스나’는 무려 1971년에 개업한 가이세키 레스토랑인데, 이곳의 사장 내외가 방대한 아리타 빈티지 도자기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상 면허까지 취득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구입하고자 하는 아리타 도자기가 만들어진 개괄적인 시대나 이야기를 특정할 수 있다. 사진은 야스나 사장에게 직접 구매한 모과 모양의 청백자. 연대는 메이지 시대 이전으로 추정. 과거 일본은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물레를 사용하는 데 세금이 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자기를 손으로 성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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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ia Vienna, Naschmarkt
WHERE :오스트리아 비엔나 나슈마르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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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예술품을 수집하는 사람에게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최고의 놀이터다. 링 슈트라세(Ring Boulevard) 안팎으로 다채로운 빈티지 편집숍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공방도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링 슈트라세는 슈테판 성당, 호프부르크 왕궁, 국회의사당과 시청, 미술관을 품은 비엔나 중심부를 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도로다. 링 슈트라세 안쪽에서 비교적 이름 있는, 그리고 가격대가 높은 예술품을 쇼핑할 수 있다. 보다 캐주얼한 가격대의 쇼핑을 원한다면 ‘그래츨(Grätzel)’이 좋다. 그래츨은 ‘동네’를 뜻하는데, 그중 제어비텐피어텔(Servitenviertel) 지구에는 인테리어 소품숍이 유독 뭉쳐 있다.
추천 품목은 빈티지 옷걸이 혹은 손잡이. 굳이 찾아다니는 것이 귀찮다면, 찾아오는 것에 집중하자. 매주 토요일, 나슈마르크트 벼룩시장이 열린다. 새벽부터 거래상들이 천막을 치고 세월 수북한 골동품을 가득 늘어놓는데, 특히 유리 제품을 눈여겨볼 만하다.

무라노 유리 제품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무라노는 이탈리아 베니스에 위치한 섬인데, 유리 세공 기술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무라노 유리공예 장인들은 집안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리 성분 조합의 비법을 비밀수첩에 기록해 보존하고, 수제자를 통해 그 비법을 이어오고 있다. 유리지만 유일한 것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새벽에 나슈마르크트를 방문하면 그림 경매에 참여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다만 예술의 도시, 비엔나라고 해서 바가지가 없을 거란 생각은 절대금물. 부르는 게 값인 전쟁에서 소비자의 첫 제시는 언제나 반값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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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Jingdezhen Taoxichuan & Beijing Panjiayuan Antique Market
WHERE : 중국 경덕진 타오시촨 & 베이징 판자위엔 앤티크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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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왜 차이나(China)일까. 가장 현실적인 어원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중국의 경덕진(景德, 징더전)에 닿는다. 경덕진은 중국 도예 산업의 중심지다. 과거부터 경덕진을 가로지르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이 강의 이름이 ‘창강(昌江)’이었고, 창강 이남 지역에서 특히 도자기가 많이 생산되다 보니 ‘창난(昌南, 창남)’이라는 발음으로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당시 창난에서 생산되는 정교한 도자기는 전 세계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서양에서는 ‘창난의 도자기’를 일컫는 말로 중국을 ‘차이나(Chian)’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황실 전용 자기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온 경덕진의 청화백자와 오채자기는 황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사랑받았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러한 경덕진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 1958년에 설립된 경덕진 국영 우주(宇宙) 자기공장을 ‘타오시촨 문화창작거리 구역’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이곳에는 주말마다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근처에 위치한 ‘경덕진 도자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있는 경덕진 도자기를 구매하고 싶다면 삼보촌(三村)으로 향하면 된다. 이곳은 중국 남송 때부터 도자기를 생산해 온 지역인데, 현재 중국에서 손꼽는 도자 작가들의 작업장이 이곳에 몰려 있다.

도자기보다 ‘빈티지’에 집중한다면, 아무래도 베이징의 판자위엔이 더 잘 맞겠다. 판자위엔은 베이징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이다. 중국 전역에 있는 빈티지 물건이 이곳에 모인다. 없는 게 없는데, 사실 없어도 만들어 가져오는 곳이 판자위엔이기도 하다. 조금 많이 터프한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판자위엔을 가기 전에는 무엇을 주로 볼 것인지 정하는 게 좋다. 규모가 워낙 크기도 크고, 구획별로 완전히 다른 물품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도자기 밑쪽에 흙이 심하게 묻어 있거나, 진흙이 발려있는 듯한 것들은 삼가하자. 출토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 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깔끔하게 관리된 것들이 진짜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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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