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텀 키보드 시장은 오랫동안 ‘복잡함’을 미덕처럼 여겨 왔다. 조립은 공정화되었지만 여전히 진입 장벽은 높았고, 디테일을 좇는 과정은 종종 반복적인 피로를 수반했다. 그 안에서 커세어는 MAKR 75라는 이름의 키트와 Web Hub라는 설정 인터페이스를 통해 질문을 던졌다.
“정말 모든 디테일을 손으로 붙잡아야만, 그것이 제대로 된 커스텀인가?”
MAKR 75는 전형적인 하이엔드 DIY 키보드 키트를 기반으로 한다. 풀 알루미늄 프레임, 가스켓 마운트 구조, 층층이 흡음재를 쌓아올린 사운드 설계, 나사 고정 스테빌라이저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물리적 조립 과정을 충실히 담고 있다. 그러나 조립 과정을 마친 이후의 사용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설정을 위한 전용 소프트웨어는 필요 없다. Web Hub라는 이름으로 설계된 플랫폼은 브라우저 기반에서 바로 작동하며, 키 리맵핑, 조명 설정, 매크로 구성, 펌웨어 업데이트까지 모든 절차를 하나의 탭에서 처리하게 했다. 설치와 드라이버, 로컬 저장소를 둘러싼 복잡성을 제거한 점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커스터마이징의 접근성과 설계철학 자체를 뒤흔드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커세어 키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도구를 단순화한 데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 MAKR 75는 입력 지연 최소화를 위한 8,000Hz 하이퍼 폴링, SOCD 처리, 확장 가능한 모듈 슬롯 등 게이밍 기어의 정교한 물리계를 DIY 키보드 구조에 녹여내면서, 양 극단의 사용자층을 하나의 경험 곡선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즉, ‘커스터마이징’과 ‘성능’이라는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가진 사용자를 하나의 플래폼으로 만족시킬 수 있게 했다. 단순히 게이머를 DIY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DIY 사용자에게도 고성능 입력 장치가 가져다주는 입력 신뢰성과 효율성을 경험시킬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핵심이다.
“시간을 덜 들이고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가능성”
취미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취향을 지키거나, 편리함과 속도를 택해 체험을 얕게 흘려보내거나. MAKR 75는 그 양자택일을 의외로 간단히 비껴간다. 하드웨어 조립은 여전히 손맛을 지켜내지만, 설정과 유지·보수는 손가락 클릭 몇 번으로 환원한다.
납땜 인두 대신 브라우저 탭이 열려도, 타건음이 빈약해지지 않는다. DIY가 ‘복잡해야만 깊다’는 믿음에 작지만 설득력 있는 균열을 내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멈췄을 때—“어쩌면, 복잡하지 않아도 좋은 물건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MAKR 75는 그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키스트로크를 기다리고 있다.
By 컴퓨텍스 공동취재단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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