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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향기

    퇴근 후 술자리는 본능일까? 침팬지에게 물어보라

    2025.05.29. 13:35:43
    읽음410 댓글3
    오늘따라 유난히도 고달픈 하루를 보낸 당신. 극한의 스트레스를 무사히 견뎌낸 당신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있다. 첫째, 곧장 집으로 달려가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 둘째, 몇 명의 친구들을 불러내어, 그들과 함께 상사의 뒷담화를 즐긴다.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던 당신은 드디어 한 장의 카드를 선택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은 겉옷 호주머니 속에서 잠들어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건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여보세요? 우리가 자주 가던 그 술집 알지? 내가 쏠 테니까 나와. It’s party time!”
    사진 1. 우리는 흥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곤 한다. ⓒshutterstock
    유대감이 필요한 순간, 우리는 술을 찾는다
    너무도 익숙한 지금의 이 상황.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길 원하는 사회적인 동물, 우리 인간은 ‘감정 공유’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하물며 ‘극히 제한된 시간(퇴근 직후~귀가 직전) 안에 스트레스를 줄이라’라는 자체 임무(mission impossible)를 어렵사리 수행해야만 하는 우리는, 그 달성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알코올이라는 ‘유대감 증폭제’의 도움을 받곤 한다. 알코올의 섭취가 도파민 및 엔도르핀의 분비를 가속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알코올 성분을 포함한 물, 즉 술은 파티의 흥을 돋울 수 있는 인류 역사상 최고, 그리고 최상의 부스터(booster) 재료인 셈이다.
    술이 가진 유대감 증폭 능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이를 표현하는 옛말도 더러 있지 아니한가.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 ‘반 잔 술에 눈물 나고, 한 잔 술에 웃음 난다’ 등이 그러하다. 식탐이 너무 커서 음식은 나눠 먹을 줄 모르는 사람조차, 하물며 술은 나눠마실 줄 알며, 이는 인류가 조상 대대로 오랫동안 직접 경험을 수없이 해오며 몸소 체득한 탓이다.
    그런데 잠깐, 이런 사회적 술자리 문화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가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낸 산물일까? 아니면 우리 DNA 속 깊은 곳에 숨겨진 태초의 본능일까? 최근 영국 엑서터대학의 킴벌리 호킹스 교수팀이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
    침팬지도 술에 이끌렸다
    아프리카 기니비사우 칸탄헤즈 국립공원의 울창한 숲속. 그곳에서 야생 침팬지들이 발효된 아프리카 빵나무(Treculia africana) 열매를 함께 나눠 먹는 모습이 동작 인식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10차례나 말이다. 최대 30kg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과일은 상당한 양의 알코올 성분을 포함하고 있었고, 개 중에는 그 함량이 최대 0.61%인 것도 있었다. 물론 맥주나 소주에 비하면 알코올 함량은 새 발의 피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침팬지가 하루 종일 과일만 먹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점은 침팬지들의 ‘선택’이다. 관찰된 10건의 사례 중 7건에서 침팬지들은 다른 과일이 근처에 있는데도, 한 과일을 함께 ‘나눠’ 먹었다. 평소에 음식을 잘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침팬지이기에, 이는 더욱 특별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에게 선택되지 않은 과일의 발효 정도가 다소 덜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알코올 함량이 적은 과일은 거들떠보지 않고, 알코올 함량이 높은 과일을 함께 나눠 먹고 있었다. 마치 맛 좋은 술을 서로에게 권하는 우리네의 평범한 모습처럼 말이다.
    사진 2. 침팬지들은 수 차례 발효된 과일을 나눠 먹었다. ⓒCurrent Biology
    술자리 문화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침팬지의 알코올 섭취 현장이 발각(?)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구 책임자인 호킹스 교수는 2015년에도 서부 아프리카 기니에서 침팬지가 자연 발효된 야자 수액(알코올 함량 약 3%)을 마시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침팬지의 생존 확률은 그들이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알코올을 먹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사회적 유대감. 또 다른 가능성은 영양학적 이점. 발효가 진행되면서 과일의 비타민 함량이 증가하기도 하니 말이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 알코올 대사를 크게 증가시키는 분자적 적응이 발견되면서, 발효 과일을 통해 알코올을 섭취하는 것이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는 우리의 술 문화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역사가 있음을 암시한다. 호킹스 교수는 “침팬지가 항상 음식을 공유하지는 않기 때문에 발효된 과일을 함께 나눠 먹는 행동은 중요할 수 있다”며 “이 행동이 ‘잔치’의 초기 진화 단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이 친구와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느끼는 그 따뜻한 연대감, 그 비밀스러운 속삭임, 그 해방감은 어쩌면 수백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이 발효된 과일을 나누며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술 한잔’을 제안할 때, 그것은 단순한 현대적 유희가 아니라, 인류의 DNA 깊숙이 새겨진 태초의 의식(儀式)을 행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3. 챔핀지는 항상 음식을 공유하진 않는다. 이에 과학자들은 침팬지들이 발효된 음식을 나눔으로써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거나 영양학적 이점을 얻는다고 추론한다. ⓒshutterstock
    그러니 오늘 밤, 당신이 동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상사의 뒷담화를 즐길 때, 잠시 생각해 보라. 멀리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침팬지들도 발효된 과일을 나누며 비슷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물론, 이 모든 과학적 발견이 지나친 음주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고농도 알코올을 정기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었기에, 현대의 ‘증류주’에는 특별히 취약하다. 하지만 적정량의 알코올이 사회적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오늘 퇴근 후,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혼자만의 휴식, 아니면 친구들과의 술자리?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DNA 속에 새겨진 본능과 사회적 환경, 그리고 현대적 필요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침팬지들의 ‘알코올 파티’가 말해주듯, 당신이 친구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는 그 행동은, 어쩌면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인간다운 특징 중 하나일 수 있다.

    글 : 권태균 청주대학교 에너지융합공학과 교수,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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