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가파도 피드가 쏟아진다. 연초록의 물결, 사진과 영상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다. 그런데 벌써 끝물이란다. 가파도에서 캠핑해야겠단 마음이 급해졌다.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도로
이 일 저 일 따지다 보면 올해도 그냥 넘어갈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제주살이의 느긋함이 문제다. 여행과 가깝다는 건 꼭 이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파도에 텐트 한 번 못 던져 본 것도, 올겨울 눈 덮인 백록담이 잡힐 듯 멀어진 것도 같은 이유다.

아무튼, 어찌어찌 캠핑 당일 모슬포 운진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주차장이 만원이다. 청보리 축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5~6월 가파도까지의 여객선 운항은 30분 간격, 1일 15회로 늘어나지만, 예약 없이 왔다가는 허탕 치기 십상이다. 현장 발권 역시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 예약자 매표창구에 들러 캠핑 계획을 알렸다. 그러자 1시간 50분간 머물 수 있는 표가 아닌, 다음날 오전 배로 나올 수 있는 왕복 티켓을 끊어 줬다.

가파도에는 마트가 없다. 그래서 모슬포 홍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기타 식재료를 조금 샀다. 꼼꼼한 준비는 캠핑을 풍요롭게 한다. 집에서 가져온 와인 한 팩과 묵은지도 한 끼를 책임져 줄, 믿는 구석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물결
가파도는 운진항에서 5.5km 거리, 여객선을 타고 15분이면 바로 내려야 할 정도로 가깝다. 가파도는 정말 작은 섬이다. 해안선 길이라고 해봐야 고작 4km 남짓. 게다가 최고 높이도 20.5m에 불과하다. 이것도 해수면에서부터 따진 것이니 그냥 평지만으로 이루어진 섬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이제 청보리밭을 향해 쏜살같이 걸어갈 차례다. 상동포구에서 가파포구로 이어지는 가파로67번길은 그야말로 ‘보리밭 사잇길’이다. 양 갈래로 나누어진 보리밭은 바다에 가 닿을 듯 드넓게 펼쳐져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물결, 가히 압권이다.

가파도가 청보리 섬으로 불리는 것은 섬 면적의 반 이상이 보리밭이기 때문이다. 청보리 아이스크림, 빵, 막걸리, 에일맥주 등 보리를 재료로 하는 먹거리들도 등장했다. 섬을 걷고, 사진 찍고, 먹거리까지 즐기려면 관광객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짧다.

캠핑장으로 향한다. 태봉왓캠핑장은 선착장의 반대편 하동 마을의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다. 주인장은 가파도 출신, 이태봉씨. 그는 제주 본 섬에서 전기공사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땅을 조금씩 사 모았고 몇 년 전 캠핑장을 개장했다. 태봉왓캠핑장은 한자리에서 한라산과 산방산 그리고 마라도를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가 탁월하다. 10개의 데크 사이트 그리고 100여 동 이상은 넉넉히 들어갈 노지 사이트에 화장실과 샤워실, 매점, 휴게실, 카페 등 육지 캠핑장 부럽지 않은 시설을 갖췄다.

솔로 캠핑의 묘미
마지막 배가 돌아간 후 가파도는 주민과 남겨진 이들의 차지가 됐다. 축제 뒤편으로 물러섰던 골목과 가옥 사이로 고양이들이 나타난 것도 신기했다. 알고 보니 가파도는 길고양이를 여행의 콘텐츠로 접목하는 ‘생태관광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는 중이란다. 섬에는 약 15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산다. 녀석들은 이미 90% 이상 중성화를 마쳤고 17곳의 급식소를 통해 규칙적으로 먹이를 공급받고 있다. 어쩌면 일본의 아이노시마처럼 고양이를 보러 가파도를 찾아오는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소고기와 가파도표 해산물 모둠 그리고 와인의 페어링은 기가 막혔다. 밤새 텐트를 두들기다 잠시 물러섰던 바람은 아침이 되자 두꺼운 구름 떼를 몰고 다시 나타났다. 머무는 이들의 조금 더 깊은 여행은 첫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어졌다.

골목에서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던 주민에게 ‘요수바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모슬포가 주항이 됐지만, 과거 가파도는 자리, 멜, 방어의 주요 생산지였고 그 포획 방식이 두 척의 배가 큰 그물을 연결해 잡는 어업 방식인 ‘수바리’였다는 것. 요수바리는 어선을 뜻하는 말이란다.

주민은 덤으로 식당 한 곳도 소개해 줬다. “해물라면 꼭 먹어 봐요.” 부성식당의 해물라면은 실로 역대급이었다. 전복, 소라, 홍합, 문어 다리는 너무도 큼직해서 면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간단하게 먹으려던 계획은 단번에 무산됐다. 소주를 부르고 해물파전을 주문했더니 백조기 접시가 덤으로 오른다. 꽤나 근사한 섬 아침, 해돋이 대신 취기가 발갛게 올랐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