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고, 짙은 색으로 여행자를 꾀는 곳.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5가지 색감으로 추억한다

여름날의 노란색 동화
부다페스트는 유럽 온천의 중심지다. 도심에 10여 곳의 온천 시설이 있는데, 여행자에게 가장 친숙한 건 112년 역사의 세체니 온천이다. 시설의 규모, 매력적인 외관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유럽 궁전과 닮은 건물은 웅장하나 색감 덕분에 깜찍한 인상이다.
항상 인파로 북적인다는 말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뜨거운 햇빛 아래 자리를 선호하는 외국인과 달리 그늘 밑 선베드가 절실했다. 목표를 달성하고 일단 누웠다. 파란 하늘과 옥색 온천탕, 노란색 건물, 수많은 사람이 어우러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부다페스트에 바랐던 광경이라 서둘러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에는 바쁘기 그지없다. 실내외를 넘나들며 17곳(야외 1곳은 공사 중)의 탕에 몸을 담갔다. 한껏 보드라워진 몸을 다시 누이고, 선선한 바람을 진득하게 만끽했다.

Golden Days
유럽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톡 튀어나오는 웅장함을 만날 때 배가된다. 어느 골목길을 걷다가 고개를 돌리니 성당 첨탑이 보인다. 밋밋한 건물 사이에 핀 꽃처럼 봉긋한 탑이다. 지도를 보니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었고, 자연스레 목적지는 성당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첫 번째 금빛을 봤다. 헝가리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네오클래식 양식의 성당으로, 높이 100m에 달하는 금빛 돔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에 시선을 뺏겼다. 또 미라로 변한 이슈트반 국왕의 오른손이 보존돼 있어 영험한 기운이 감돈다.


다음은 부다페스트를 ‘다뉴브강의 진주’라고 불리게 한 황금빛 야경. 건물을 비추는 조명도 야경에 적합하게 설치했다는데, 성능이 확실하다. 부다성에서 바라본 다뉴브강은 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 세체니 다리와 어우러져 황홀감을 선사한다.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물들고, 건물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데, 부다페스트를 대변하는 가장 완벽한 장면인 건 확실하다.

일상의 온도
여행도 일상처럼 쉼표가 필요하다. 머르기트 다리(Margit híd) 위에서 강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자꾸 반대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블랙홀이 별을 빨아들이듯 말이다.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현지인들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초록색 별천지를 만났다. 로컬들이 매일 아침 뛰고, 주말에는 피크닉을 즐기고, 저녁에는 콘서트가 열리는 머르기트 섬이다. 이곳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초록색이 무성했고, 키 작은 꽃들이 화려한 색감을 더했다. 유독 볕이 좋았던 오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의 축복을 만끽했고, 여행자는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남겼다. 물론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이 섬뿐만 아니라 화창한 날과 잔디밭 2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어디든 제집처럼 벌러덩 드러누웠다. 자꾸 보니 여행 3일째 되는 날, 그들처럼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풍선과 파프리카의 공통점
부다페스트 상공에는 팔 시네이 메르세(Pál Szinyei Merse) 작가의 <풍선(Balloon)>과 똑같은 모양의 열기구(BalloonFly)가 둥둥 떠 있다. 빨간색 줄이 그어진 열기구는 150m 높이까지 떠올라 도심 어디에서나 보인다. 존재감이 상당한 친구다. 열기구에서는 가깝게 세체니 온천과 영웅광장(Hősök tere)이 보이고, 날씨와 운이 모두 따르는 날에는 저멀리 타트라산맥(Tatry)도 보인다.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빨간색은 파프리카와 고추다. 우리처럼 매콤한 맛을 즐기는 현지인들은 파프리카와 고추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파프리카를 활용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굴라쉬(Gulyás, 소고기와 감자, 당근, 파프리카, 향신료 등을 넣고 끓인 스튜)와 치르케 파프리카시(Csirke Paprikás, 파프리카 소스를 곁들인 닭고기 요리), 콜바사(Kolbász, 헝가리 전통 소시지) 등이 있다. 일반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전통식들인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