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에서 희귀 광물을 채굴하는 무인정 상상도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영토 분쟁이 한창이던 2010년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센카쿠 인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충돌하자 선장을 구금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희토류는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자석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와 모터, 스마트폰,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다. 당시 수출 통제 조치로 일본의 전자 및 자동차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중국에 편중된 희귀 광물 공급망의 리스크를 절감하고, 인도·베트남·호주·카자흐스탄 등과의 자원 협력 확대에 나섰다. 동시에 자국 내 대체 자원 확보를 위한 국가적 탐사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심해 광물 탐사였다. 정부의 지원 아래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한 이 탐사 프로젝트는 일본의 비영리 공익재단인 니폰재단(The Nippon Foundation)이 핵심 역할을 맡았다. 니폰재단은 일본 최동단 미나미토리시마(Minami-Tori-shima, 南鳥島) 해역에서 대규모 심해 탐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산업적·전략적 가치가 높은 망간 결절(manganese nodules)과 희귀금속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음을 확인했다. 니폰재단과 국립 연구기관 RIKEN이 주도한 해저 탐사에서 해저 5700m 지점에서 다수의 망간 결절이 무인 수중탐사기(ROV)를 통해 발견했다.
이 결절에는 코발트(Cobalt), 니켈(Nickel), 구리(Copper) 등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금속이 고농도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정 매장량은 코발트 약 61만 톤(시장가 148억 달러, 약 20조 2500억 원), 니켈 약 74만 톤(114억 달러, 약 15조 6000억 원)으로, 자산 가치는 총 262억 달러(약 35조 90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발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매장량이나 자산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립 종합과학연구소 '리켄(RIKEN, 理研, 일본 이과학연구소)' 연구진은 망간의 결정 구조를 조작함으로써, 기존 백금이나 이리듐 같은 고가 귀금속 촉매 없이도 양성자 교환막(PEM) 수전해 방식에서 기존 대비 10배 이상의 효율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수 천미터 심해에서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소재가 될 희귀 광물 채굴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를 경험한 일본은 최근 태평양 심해에서 산업적·전략적 가치가 높은 망간 결절(manganese nodules)과 희귀금속을 발견해 주목을 받았다. (오토헤럴드 DB)
이는 수소 경제의 핵심 병목인 고비용 촉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술적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은 수소차, 그린수소 플랜트,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등 탄소중립형 에너지 인프라 전반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2050년 ‘넷 제로(Net Zero)’ 목표 달성에도 강력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망간 결절은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서도 새로운 희망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발트는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을 제공하는 고성능 소재지만 가격이 비싸고 공급량이 제한적이다. 니켈은 NCM(니켈-코발트-망간),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의 필수 구성 원소로 에너지 밀도 향상에 기여한다. 망간은 고온 안정성과 저비용이라는 강점을 지녀, 차세대 배터리에서 핵심 혼합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망간 결절은 전기차, 반도체, 방산, 항공우주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산업군에서 미래 전략 자원으로 활용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일본은 심해 광물의 상업적 채굴을 위한 인프라 구축, 해양 환경 평가, 국제 해양법에 따른 협상 등 후속 절차를 추진 중이다. 이번 발견은 바다가 단순한 생태계가 아닌 ‘광물의 블랙박스’라는 인식을 강화하며, 향후 자원 전쟁의 새로운 전장을 예고하고 있다.
심해 광물 확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독도 해역과 남태평양 일부 지역에서 희토류 및 망간 자원 탐사를 진행 중이며, 중국은 이미 심해 채굴을 위한 시범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망간 결절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 해소와 탄소중립 전략을 동시에 충족하는 게임 체인저”라며, “이 자원을 둘러싼 탐사 기술력과 국제 협력 수준이 향후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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