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 글로벌 본사에서 열린 닛산자동차 제126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난 4월 취임한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이 연설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인력의 약 15%, 공장 7곳 폐쇄를 포함한 5000억 엔(약 34억 달러) 규모의 강력한 비용 절감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닛산)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경영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관행적 수순이 닛산에서 시작됐다. 닛산이 유럽 지역의 일부 협력사에 대해 납품 대금 지급을 미루는 대신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결제 연기’를 제안한 사실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확인됐다.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닛산은 최근 영국과 유럽연합(EU) 내 다수의 협력업체에 결제 연기를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업체는 기존 기한에 맞춰 지급을 받거나 혹은 웃돈이 더해진 금액을 1~2개월 뒤 수령하는 방안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협력 업체들은 납품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 연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닛산 측은 강제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기업 내부 문서에는 최대 1500억 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표가 설정돼 있었고 이를 위해 협력사 쥐어 짜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 됐다. 지난 4월 취임한 이반 에스피노사 신임 CEO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전 세계 인력의 약 15%, 공장 7곳 폐쇄를 포함한 5000억 엔(약 34억 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을 예고한 이후 이어진 후속 조치다.
닛산은 2024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약 4조 50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 실적 전망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개된 이메일에 따르면 닛산 재무 및 구매 부서는 이번 조치를 ‘단기 현금 흐름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공유했다. 내부에서는 "CEO의 위에서 내려온 요청에 따라 다시 한 번 협력사에 결제 유예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일부 결제는 8월 15일, 길게는 9월까지 미뤄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닛산은 성명을 통해 "현금 흐름 개선을 위한 자발적 참여 유도"라며 "즉시 결제를 원할 경우 기존 방식대로, 연기 결제를 택하면 보상금리를 붙여 지급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일부 공급사의 경우 HSBC를 통해 기한 내 결제를 보장하고, 닛산이 이후 은행에 상환하는 방식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HSBC는 해당 내용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닛산은 이 같은 방식으로 영국과 유럽 내 12개 이상의 기업, 예컨대 인력 파견 업체 맨파워그룹(ManpowerGroup), 일본 해운사 미쓰이 O.S.K.라인 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최대 5900만 유로(약 939억 원)의 현금 유동성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닛산은 이전에도 일본 내 수십 개 협력업체에 부당하게 대금을 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규제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바 있다. 닛산의 이번 결제 연기 요청은 단기적인 유동성 위기를 넘기기 위한 선택이지만, 협력업체의 연쇄적 피해나 거래 신뢰도 저하로 이어져 장기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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