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공력시험동의 메인 팬 모습, 시속 200km의 강력한 바람을 만들어 낸다. (출처:현대자동차)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직경 8.4m, 3400마력의 대형 송풍기가 가동되자 시속 200km의 인공 난기류가 시험장 내부를 천천히 뒤덮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의 중심에 들어온 듯한 강력한 기류 속에서 사람의 몸이 휘청이고 연기 입자가 차량의 유선형 곡면을 타고 정교하게 흐른다.
차체를 감싸며 흐르는 '유동 가시화' 장면은 단 0.01Cd의 공기저항계수를 줄이기 위해 벌이고 있는 숨 막히는 기술 경쟁의 생생한 현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은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의 심장부, 세계 최고 수준의 공력 성능을 구현하는 공력시험동이다.
글로벌 전기차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지금, 현대차·기아는 '기술'의 우의를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 중심에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남양기술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 ‘전기차 혁신의 심장’이라 불리는 모빌리티 시험 인프라를 직접 확인했고 그 시작은 단연 이 공력시험동이었다.
바람의 놀라운 비밀이 드러난, 풍동 테스트
공력시험동에서는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Cd)인 0.144를 기록한 콘셉트카 ‘에어로 챌린지 카’가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사진은 아이오닉 6 공력 시험 모습이다. (출처:현대자동차)
‘에어로 챌린지 카’가 자리를 잡은 풍동 챔버에 거대한 송풍기가 가동되며 시속 200km의 바람이 서서히 불어 오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서는 공력 저항, 즉 항력과 양력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차량 후면의 소용돌이 같은 ‘후류’를 시각화해 효율적인 공기 흐름을 설계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놀랍게도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탄소섬유 복합 소재로 제작된 초대형 송풍기 날개는 소음까지 제어한다. 소음뿐만이 아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은 “바닥은 동전 하나를 올려놔도 무게를 감지할 수 있는 초정밀 센서가 숨겨져 있다"라고 했다.
챔버에는 실제 차량 하부와 바퀴 사이의 지면 공기 흐름까지 모사하기 위해 회전 벨트로 구성된 지면 재현 장치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공력 실험이 가능한 설비가 구비돼 있다.
이날 처음 공개된 콘셉트카 ‘에어로 챌린지 카’는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Cd)인 0.144를 기록한 전기차였다. 액티브 리어 디퓨저와 사이드 블레이드, 3D 언더커버 등 미래차에 적용될 첨단 공력 기술이 집약된 모델이다.
연구원은 전비 향상과 제품 원가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바로 '공력 개선'이라고 설명했다. (출처:현대자동차)
현대차 공력개발팀에 따르면 공기저항계수(Cd)를 0.21에서 0.14로 낮추면 아이오닉 6 기준으로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약 64km 늘어난다. 이는 도심과 교외 주행을 모두 아우르는 실사용 거리에서 체감 가능한 수준이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한 주행거리 향상을 배터리 용량 증가로 달성하려면 약 200만 원에 달하는 배터리 비용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공력 효율성을 높여 공기저항계수를 단 0.01Cd를 줄이는 것만으로 주행거리가 약 6.4km 늘어나고 25만 원 이상의 배터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것이 배터리 투자 대비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전비 향상과 제품 원가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 바로 '공력 개선'이라는 것이 개발진의 설명이다. 전기차의 공기 저항을 줄이는 데 현대차그룹이 왜 사력을 다하고 있는 지 알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60도 고온부터 영하 40도 한파까지, 환경 실험실
환경시험동에서는 최고 60도 고온부터 최저 영하 40도 한파에 달하는 다양한 기후 조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출처:현대자동차)
다음으로 향한 곳은 전기차 실사용 환경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환경시험동’이다. 이곳은 고온·한랭·강우·강설 등 전 세계 모든 기후 조건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전기차 성능 검증의 ‘리얼 월드’다.
처음 체험한 ‘고온 환경 풍동’ 챔버의 내부는 그야말로 중동 사막을 옮겨놓은 듯했다. 최고 기온 50도와 여기에 인공 태양광까지 더해져 챔버 안에는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감돌았고 들어선 순간 안경에는 뿌연 김이 서렸다.
이 극한 환경에서는 모터, 인버터, 배터리 등 전기차 핵심 부품들이 과열 없이 정상 작동하는지를 확인한다. 반대로 혹한 조건에서는 배터리 출력 저하와 난방 시스템의 성능 저하 여부를 집중적으로 검증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극한 상황에서의 반복적인 환경 시험을 통해 최신 전기차에 적용된 ‘4세대 통합 열관리 시스템’을 개발, 지구 어느 지역의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확보할 수 있다.
전기차의 특성상 기후 환경에 따라 배터리의 성능 편차가 큰 만큼 이 곳에서는 다양한 기온에 맞춰 실험을 할 수 있다. (출처:현대자동차)
이 시스템은 배터리, 모터, 냉난방 장치의 열 교환 경로를 하나의 냉매 회로에 통합하고 히트펌프 기술을 적용해 외기에서 발생하는 잔여 열까지 회수한다. 냉방 효율은 물론, 열 부하 조건에서도 부품 손상 없이 작동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 효과는 실전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개발팀에 따르면 동일한 외기 온도 조건에서 열관리 시스템 유무에 따라 전비가 최대 10~20% 차이를 보인다. 히트펌프가 적용되지 않은 차량은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에서 주행거리가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사례도 있어 이 기술은 주행 성능과 에너지 효율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눈과 비까지 인위적으로 쏟아낼 수 있는 강설·강우 챔버도 준비돼 있다. 여름에는 데스밸리,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기후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의 테스트 능력을 갖춘 셈이다.
수치로 완벽함을 향해가는, R&H 성능 개발동
R&H 성능 개발동에서는 서스펜션, 타이어, 스티어링 시스템만을 구성한 상태에서 차체 없이 하중을 측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량 거동을 예측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출처:현대자동차)
R&H(Ride & Handling) 성능 개발동은 자동차의 주행 감성을 정밀하게 정량화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을 구현하는 공간이다. “차는 타봐야 안다”는 과거의 인식과 다르게 현대차·기아는 이곳에서 차량 성능을 수치로 진단하고 예측하는 첨단 기술을 통해 완벽한 품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핵심은 ‘시스템 기반 개발’이다. R&H 성능 개발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개별 부품의 특성을 정밀 측정해 ‘캐릭터라이즈(Characterize)’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가 시스템, 조향 시스템, 차체, 타이어 등 주요 하위 시스템과 차량 전체 성능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코릴레이트(Correlate)’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각 차급별·차종별 성능 기준을 표준화하는 ‘스탠다다이즈(Standardize)’가 이뤄진다.
R&H성능개발동 고속 타이어 유니포미티 시험기를 작동시키는 모습. (출처:현대자동차)
주행성능을 측정하는 방식 또한 과학적이다. 서킷 환경을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상태에서 로봇 드라이버가 직접 차량을 주행시키며 코너링이나 감속 시 반응을 수치로 기록한다. 이 과정을 통해 드라이버 성향이나 날씨 등 외부 변수 없이 완전히 동일한 조건 하에서 반복 평가가 가능해진다.
주목할 점은 실차가 아닌 ‘모듈 시험기’를 활용한 점이다. 서스펜션, 타이어, 스티어링 시스템만을 구성한 상태에서 차체 없이 하중을 측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량 거동을 예측한다. 이를 통해 실차 제작 전 부품 단위에서 승차감과 조향 특성을 미리 분석하고, 성능 저하 원인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라는 큰 효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정량화 과정은 단순한 기술력 검증을 넘어 글로벌 각국의 노면 환경, 고객 감성에 부합하는 승차 품질까지 구현하게 만든다. 차량 성능의 ‘감성적 품질’마저 데이터로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감각의 영역이던 승차감과 핸들링을 과학과 수치로 옮겨낸 차세대 자동차 개발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정숙함 뒤에 숨은 ‘소리의 기술’, 음향 NVH 동
NVH동 몰입음향스튜디오에서 앰비소닉 환경 속 버추얼 사운드 평가하는 모습, 헬멧 마이크로폰 어레이 장비를 활용해 실제 차량 내 음향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출처:현대자동차)
이날 마지막 방문지는 음향 및 NVH 성능동이다.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감성 품질’까지 구현하는 공간이다.
특수 방음 설계된 챔버 내부는 외부 소음을 철저히 차단해, 엔진 소리, 도로 소음, 실내 잡음 등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마이크가 부착된 마네킹이 탑승한 차량 안에서는 소리의 방향, 주파수, 잔향까지 데이터로 저장된다.
남양연구소는 여기에 몰입형 음향 기술도 더했다.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전기차에도 감성적 운전 경험을 부여하는 것이다. 단순한 소음 감소를 넘어 듣기 좋은 ‘브랜드 사운드’를 만드려는 시도다. 차량에 따라 심장 박동 같은 강렬한 사운드나, 잔잔한 전기적 고주파음을 설계해 운전자 감성을 자극한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 경험한 건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전기차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치열한 연구의 현장이었다. 자동차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정밀도와 수치, 그리고 감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나의 신차를 완성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최첨단 시설과 설비 그리고 감성까지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을 반복해 하고 있다. (출처:현대차그룹)
이렇게 완벽한 품질의 신차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현대차그룹이 쏟아붓는 노력과 기술적 검증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동전 하나의 무게 변화도 감지하는 정밀한 풍동 실험부터 사막의 열기와 북극의 혹한을 그대로 구현해내는 환경 시험, 그리고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을 수치로 해석하는 첨단 분석까지 치열한 과정을 거친 테이터의 집합체였다.
남양연구소는 과거와 다르게 매우 은밀한 공간까지 23일 국내 미디어에 공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동화시험센터 핵심 시설인 전기차 동력계 시험실을 외부인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하나의 자동차를 성능과 안전을 넘어 감성까지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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