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나래호는 백령, 대청, 소청을 하루 두 차례 순환하는 여객선이다. 백령도에서 문득 소청도가 그리워졌다. 즉흥 일정,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이다.

변화의 작은 걸음
답동 선착장에는 그간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여객선 후미 접안을 위해 부잔교가 설치된 것이다. 이는 차량 선적이 가능해졌음을 뜻한다. 얼핏 마주한 풍경은 8년 전 그대로인데, 섬 주민들의 일상은 그 사이 조금은 더 편안해졌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백령도나 대청도에 비해 소청도는 매우 작은 섬이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차량은 필수다. 이동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육지에서 건너오는 생필품을 집으로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청도는 길의 굴곡과 경사가 매우 심하다. 순환도로도 없으니 매번 같은 길을 왔다가 되돌아가는 일도 다반사다.

소청도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답동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만나는 곳이 예동, 그리고 등대 가까이에 자리한 마을이 노화동이다. 예동은 비교적 큰 마을이다. 작은 포구와 해수욕장이라 우겨 볼 만한 백사장을 배경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살림살이답게 집을 짓고, 마당 한 켠엔 텃밭을 일궈 채소를 자급자족한다. 민박집도 여섯 곳이나 된다.

노화동은 서북방 섬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낡고 붉은 지붕이 애틋하다. 파도와 해풍을 막기 위해 세워 놓은 해안의 높은 벽체에서, 그리고 그 앞에 나란히 놓인 낡은 홍합채취선에서 거칠고 험했던 섬의 역사가 읽힌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등대와 분바위는 각각 섬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있다. 민박집 차량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결국 두 발로 돌아봐야 하는 여정이다. 중복되는 길까지 감안하면 거리도 만만치 않다. 소청도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섬에서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발걸음이 자연 빨라진다. 등대로 갈 때는 차도보다는 능선 위로 이어진 탐방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걷는 내내 흙길을 밟을 수 있고 탁 트인 하늘 바다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청등대는 1908년 세워진 우리나라 두 번째 근대식 등대다. 일제가 포경선단의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해 건립한 이 등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해 북단을 지키는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 등대는 해발 80m의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의 경관이 구겨진 천을 펼쳐 놓은 듯 시야를 덮는다. 특히 절벽 아래의 해식지형과 바다 건너 대청도의 실루엣이 압권이다.

대청도는 동백나무 북한 자생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위도가 조금 낮은 소청도에도 만만치 않은 군락지가 있다. 바로 노화동과 예동 사이의 산기슭이다. 소청도 동백나무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이상 된 고목들이다. 개체 수는 많이 줄었지만, 위용은 여전하다. 이 동백나무 군락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천주교 사제로 서품을 받고 귀국하던 중,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등 서해의 작은 섬들을 순회했다. 신부는 소청 등대에서 동쪽에 있는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고, 결국 1846년 순교했다.

소청도는 우리나라 중북부와 중국 산둥반도를 잇는 최단 거리 지점에 자리해, 생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지형적 특성 덕분에 철새의 약 70%가 소청도를 비롯한 서해5도를 경유한다. 봄이 되면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오는 철새들이 산둥반도를 거쳐 소청도에 잠시 내려앉는다. 이처럼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닌 소청도에는 2019년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설립되었다. 단, 이곳은 철저히 전문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일반 여행객을 위한 전시실이나 탐방 시설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지질의 시간과 바다의 맛
분바위에 닿기 전,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스트로마톨라이트 분포지다. ‘굴딱지 암석’이라 불리는 이 퇴적암은 수십억 년 전, 광합성 미생물인 남세균이 쌓여 형성한 생물 기원 암석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광물과 결합하며 켜켜이 굳어 버린 이곳은, 지질학적 유산이자 지구 생명의 기원을 품은 장소다. 스트로마톨라이트에는 파도가 칠 때마다 얇은 결을 따라 물이 스미고 햇살이 내려앉는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깃든, 지질의 미학을 보는 듯하다.

스트로마톨라이트 분포지와 분바위는 나란히 붙어 있다. 단, 썰물 때는 해안을 타고 왕래가 가능하지만, 물이 들어오면 탱크가 놓인 전망대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야 한다. 분바위는 얼핏 해안 절벽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지질학적으로는 결정질 석회암 덩어리다. 흰색을 띠고 있는 데다 워낙에 규모가 커서 옛사람들에겐 등대와 같은 존재였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분바위는 지질학적 가치와 맞먹는 또 하나의 보물을 품고 있다. 바로 홍합밭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산 홍합은 물이 많이 빠진 갯바위에 붙어 살지만, 소청도 홍합은 분바위 주변으로 깊지 않은 곳에 군집을 이뤄 서식한다. 발에 채는 것이 홍합이라 할 만큼 분포 지역이 넓고 개체 수도 많다. 그간 수많은 섬을 여행하며 홍합을 먹어 봤지만, 소청도 홍합은 크기나 맛에서 단연 일등이다. 물에 넣어 끓이면 사골 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나고 쫀득한 식감에 담백함이 절절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홍합을 맛보지 못했다.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합은 11월에서 3월까지가 제철이다. 여행은 이가 아니면 잇몸이다. 다행히 분바위에서 자연산 미역을 채취하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낫으로 숭덩 잘라 낸 미역을 맛봤다. 짠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이면의 싱그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 시기 채취한 미역을 씻어 데친 후,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그리고 일년 내내 먹는다.

분바위는 등대에서 도로상으로 약 5km 거리에 있다. 따지고 보니 답동에서 등대를 찍고 다시 분바위를 거쳐 원점 회귀하려면 10km는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때 예동에 숙소를 정하고 두 지점을 나눠 탐방했을 때는 꽤나 여유로웠다. 하지만 이번처럼 당일치기로, 그것도 정해진 배 시간을 의식하며 섬을 걷는 일은 여간 벅찬 게 아니다. ‘섬에서의 하룻밤’은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줌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