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가을은 봄처럼 꽃이 흐드러진다.

비어 있던 땅에 꽃이 피기까지
포성이 울려 퍼지던 자리에 꽃밭이 흐드러졌다. 철원 고석정 꽃밭, 1972년부터 36년간 군부대 포훈련장(구 고석정 Y진지)으로 사용됐던 공간인 이곳은 현재 철원을 대표하는 꽃밭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훈련장 이전이 추진되면서 황무지로 남은 공터에 철원 주민들이 힘을 모아 땅을 일구고 꽃을 심었다. 전쟁을 대비하던 땅이 계절을 맞이하는 정원으로 바뀌기까지 걸린 세월은 대략 10여 년.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이어지길 소망하며 정성스러운 손길로 고석정 꽃밭을 그렇게 가꿔 온 것이다.
양손으로 감싸 안을 만큼 작던 꽃 한 송이가 하나둘 모여 너른 밭을 이뤘다. 그렇게 꽃의 평원이자 바다가 되어, 오롯이 꽃으로만 이루어진 지평선을 여행자에게 선물한다.

고석정 꽃밭의 면적은 무려 24만 평방미터, 축구장 33개 정도의 규모다. 아득할 만큼 넓은 꽃밭을 어떻게 다 둘러볼까 싶지만, 다행히 몸만 싣고 편히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깡통 열차’다. 2.5km의 구간을 15~20분 정도 달리며 꽃밭을 누빈다.
구역마다 다른 수종이 채워져 있으며 맨드라미, 천일홍, 백일홍, 코키아, 코스모스, 버베나, 핑크뮬리, 가우라, 억새, 해바라기 등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꽃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시기마다 다른 종류의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개장 기간 중 언제 가도 볼거리는 풍성하다. 어떤 꽃이 절정을 지나면 다른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해 섭섭할 틈이 없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의 접근성도 좋다. 서울(중랑IC)에서 고석정 꽃밭까지 자동차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꽃들 사이로 고개 내미는 추억들
바람이 꽃을 스치면 그 결에 향기가 스민다. 꽃물결은 나비와 벌뿐만이 아니라, 여행자들의 발걸음까지 끌어 모았다. 고석정 꽃밭은 지난해 무려 70만명의 여행객이 찾았다. 금세 피고 지는 꽃만 가득한 공간이라면 이런 성과는 어려웠을 터, 이토록 사람들이 매년 찾는 철원의 명소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철원군의 마을공동체 정원 조성사업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깡통 열차를 운영하며 관람객과 소통하고, 아름다운 꽃들 사이로는 곳곳의 지역 작가들의 손에서 태어난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 공중전화, 우체통, 학교 의자, 옛 농기구 등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은 예술과 꽃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즐거움은 물론 추억도 되새길 수 있다. 각 작품 앞에서 자연스레 웃음꽃 피운 사진도 남기게 된다.

그중에서도 꽃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어린왕자 전망대’는 고석정 꽃밭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포인트다. 꽃바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서 있는 등대 같은 전망대다. 그곳에 오르면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어린왕자와 여우를 만날 수 있다. 지구에 피어난 수많은 꽃을 보면서도 결국 자신에게 특별한 것은, 살던 별에 두고 온 장미 한 송이라는 걸 깨닫는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문득 겹쳐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밭에서는 잊고 지내던 감성도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꽃밭 곳곳에는 꽃말과 개화 시기가 적혀 있는 팻말이 세워져 있어 꽃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동선을 따라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고석정 꽃밭만의 라디오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스튜디오’의 음악과 사연이 흘러나온다. 쉼터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신청곡과 사연을 보낼 수 있다. 꽃밭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 스피커가 달린 드론이 앞에 와 말을 거는데, 지금 서 있는 배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포즈를 취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입장할 때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 양산과 화관을 소품으로 활용하면 더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촬영한 사진은 정문 매표소 근처 부스에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한참 꽃밭을 거닐다 보면 슬슬 출출해지기 마련이다. 이때는 정문 매표소 방향에 마련된 먹거리 쉼터로 향하면 된다. 철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농특산물과 정겨운 지역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수수부꾸미, 메밀전병, 찰옥수수, 철원 오대쌀 등은 철원의 기후와 풍토, 정성이 빚은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여기에 떡볶이, 꽈배기, 어묵 같은 추억의 간식거리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간식을 즐기며 쉬어 갈 수 있다. 입장권을 구매하며 환급받은 상품권을 이곳에서 바로 사용할 수도 있다.

걷는 길 양옆으로는 꽃 울타리가 이어지고, 그 너머로는 끝없이 꽃이 펼쳐지는 곳. 크고 선명한 꽃과 은은한 빛깔의 작은 꽃까지 만날 수 있는 고석정 꽃밭. 더 많은 사람이 이 아름다움을 만끽할 때까지, 고석정 꽃밭은 매해 계속 피어날 것이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취재협찬 철원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