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영우 기자] 대한민국의 AI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10월 1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점에서 열린 '프렌들리AI 서울 밋업 2025'가 바로 그것이다.
AI 추론 플랫폼 기업 프렌들리AI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특별했다. 올해 정부가 선발한 'K-AI 1차 정예팀' 5개 기업 중 4곳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LG AI 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NC AI가 각자의 기술과 비전을 공유하며, 한국 AI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LG AI 연구원 "에이전트 AI 시대, 추론과 행동이 핵심"
행사의 첫 발표자로 나선 이진식 LG AI 연구원 상무는 '에이전트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생성형 AI가 수동적으로 답변을 생성하는 단계였다면, 에이전트 AI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단계"라며 "추론(reasoning)과 행동(action) 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진정한 에이전트 AI가 구현된다"고 설명했다.LG AI 연구원이 개발한 '엑사원(EXAONE)' 모델은 이러한 철학을 담고 있다. 2021년 12월 첫 버전을 출시한 이후 올해 7월 4.0 버전까지 발전시킨 엑사원은 추론 특화 모델인 '엑사원 딥(EXAONE Deep)'과 일반 능력까지 갖춘 하이브리드 모델 4.0으로 구성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제 산업 현장 적용 사례였다. 이 상무는 "석유화학 원재료 공급 스케줄링을 자동화하고, 기능성 화장품 핵심 성분 개발 기간을 1년 10개월에서 단 하루로 단축했다"며 "AI 기술을 파이낸스 분야에 적용해 높은 수익률도 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학습 데이터의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는 '넥서스(NEXUS)', 암 발생 예측 인자를 발굴하는 '엑사원 패스(EXAONE Path)'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활용되고 있음을 소개했다.
SK텔레콤, "한국어 특화가 경쟁력"
이어진 발표에서 이태훈 SK텔레콤 AI 모델랩 팀장은 자체 개발 모델 'A.X 4.0'을 중심으로 에이전트 개발 현황을 공유했다. SK텔레콤은 2019년 한국어 딥러닝 모델 'KoBERT'를 선보인 이후 꾸준히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이 팀장은 "A.X 4.0은 한국어에 특화된 토크나이저를 탑재해 KMMLU 벤치마크에서 GPT-4o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며 "한국어 처리 시 GPT-4.5 대비 평균 33%의 토큰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서비스 적용 사례도 다양했다. 에이닷 통화요약 서비스는 하루 최대 5천만 콜까지 처리할 수 있으며, 에이닷 비즈를 통해 사내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이 팀장은 "API와 챗 서비스를 무료로 공개해 누구나 가입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며 "실제로 협동로봇을 이용한 인형 뽑기, 쇼핑몰 최저가 비교 등 다양한 테스트에서 충분한 성능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업스테이지, "B2B 시장의 4단계 진화"
업스테이지의 이활석 CTO는 AI B2B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했다. 그는 "AI B2B 시장은 4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며 "1단계는 태스크별 AI 도입, 2단계는 기존에 안 되던 태스크를 AI로 대체, 3단계는 미션 하나를 AI로 완수, 4단계는 AI 중심의 워크플로우 재설계"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기술과 기업 현실의 간극을 지적했다. "MIT 리포트에 따르면 기업의 AI 도입 성공률은 5%에 불과하다"며 "깊은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기업이 'AI 레디' 상태여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강조했다.

업스테이지는 문서 이해에 특화된 '도큐먼트 AI'와 자체 LLM '솔라(SOLAR)'로 1~2단계 시장에 집중하고 있으며, 3~4단계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 CTO는 "우리는 VLM(비전 언어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OCR(광학 문자 인식) 기술로 접근한다"며 "특히 보험업에서 천 페이지 이상의 문서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NC AI, "멀티모달로 콘텐츠 산업 혁신"
NC AI의 이연수 대표는 멀티모달 AI 기술이 콘텐츠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소개했다. NC는 2011년 TF 출범 이후 14년 이상 AI 기술을 게임 제작에 활용해 왔으며, 최근 이를 범용 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 대표가 소개한 기술은 다채로웠다. 'VARCO Vision'은 VLM을 활용해 장면을 인식하고 대화형으로 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VARCO Voice'는 상황과 감정을 반영한 음성 연기가 가능하며, 일레븐랩스보다 우수한 TTS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VARCO Sound'는 프롬프트만으로 다양한 효과음을 생성하고 레이어별로 편집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VARCO 3D' 기술이었다. 이 대표는 "게임에서 건물이나 도시 하나를 만드는 데 몇 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며칠 만에 완료할 수 있다"며 "프롬프트나 이미지를 입력하면 바로 3D 모델링이 생성되고 편집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AGI로 가려면 월드 모델이 필요한데, 3D 생성 기술이 그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프렌들리AI, "AI 추론 인프라가 성공의 열쇠"
마지막으로 전병곤 프렌들리AI 대표는 AI 추론(inference) 플랫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AI 추론이란 학습을 마친 AI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여 결과를 내놓는 과정을 말한다. 챗GPT에게 질문하면 답변을 생성하는 것, 이미지 생성 AI가 그림을 만드는 것 등이 모두 AI 추론에 해당한다.
전 대표는 "모델을 만들고 학습시켜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며 "AI 추론 비용이 전체 운영 비용의 80~9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모델을 한 번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진 모델을 수많은 사용자가 계속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프렌들리AI의 플랫폼은 45만 개 이상의 오픈소스 모델을 지원하며, 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전 대표는 "같은 GPU로 2배 이상의 처리량을 제공하며, 50% 이상의 GPU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 달에 15조 토큰을 처리하는데, 이는 오픈AI API 플랫폼이 처리하는 2.67조 토큰에 비해 훨씬 많은 규모"라고 덧붙였다.

"엑사원, 실제로 어떻게 써보나?" 쏟아진 질문들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실용성에 관한 것이었다. 한 참석자는 "엑사원이 이름은 높은데 실제 써본 사람은 별로 없다"며 구체적인 사용 방법을 물었다. 이진식 상무는 "엑사원 언어 모델은 허깅페이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업로드되어 있어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며 "텐서RT-LLM, vLLM 등 다양한 오픈소스 플랫폼으로 서비스 가능하고, 프렌들리AI를 통한 API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AI 활용 시 법적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법률 관련 AI를 사용했을 때 변호사법 같은 법에 저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엑사원 프로젝트에서 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진식 상무는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게 바로 그 부분"이라며 "AI 모델을 만들 때 데이터 중에는 저작권 이슈나 지적재산권이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넥서스(NEXUS)'라는 플랫폼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학습에서 제외하는 프로세스를 거쳐 법적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병곤 프렌들리AI 대표는 이날 행사에 대해 "국내 AI 선도 기업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사이트를 나누는 귀중한 기회였다"며 "앞으로도 AI 기술 교류와 발전을 위한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