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는 제주를 여행하는 가장 싱그러운 방법이다. 적당한 속도감으로 바람을 가르다 보면 렌터카와는 또 다른 자유가 느껴진다.
스쿠터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이번 제주 여행을 위해 50cc 스쿠터를 대여했다. 그것도 시내가 아닌 숙소에서 말이다. 24시간 대여비 3만원, 배송·회수비 왕복 2만원, 보험료 1만5,000원. 총 6만5,000원이 들었다.
스쿠터 여행의 매력은 ‘속도’에 있다. 자동차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시속 40km 남짓한 속도로 달리다 보면, 한편으로는 짙푸른 바다가, 또 한편으로는 한라산이 속도에 스며든다.
스쿠터는 온몸으로 제주를 읽게 한다. 자동차에서라면 잘 보이지 않았을 마을 이름이 적힌 이정표, 작은 카페의 창가, 돌담의 그림자까지 눈에 담긴다. 피부에 스치는 햇살과 억새 바람으로 계절을 감각하는 시간, 제주 스쿠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스쿠터 렌털업체는 주로 제주시 공항 주변에 몰려 있다. 직접 찾아가 대여해도 되지만, 섬 지역을 제외한 제주 전역에서 예약 후 배송받고 반납을 할 수 있다. 50cc 스쿠터는 자동차 면허만 있으면 누구든지 운전할 수 있다.
대여할 때 가장 먼저 바퀴, 브레이크, 라이트, 깜빡이, 미러 등 기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주행할 때는 2차선 중산간 도로와 혼잡한 시내, 그리고 해가 지고 난 후의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속도를 줄이고 모래, 자갈이 많은 구간은 미끄러질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물론 헬멧 착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1. 풍차에서 노을까지, 제주의 서쪽을 잇는 코스
▷추천 라이딩 코스
신창 → 용수포구 → 노을해안로 → 모슬포
제주 서쪽 해안을 따라 신창에서 출발해 용수포구, 수월봉 노을해안로, 모슬포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서정적 바다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코스다. 게다가 도로 폭이 넓고 차량 통행이 적당해 스쿠터 초보자에게도 큰 무리가 없다.
신창풍차해안도로는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하늘. 바다의 푸르름이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정취를 만들어 내는 길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고기 조형물과 싱계물공원에서 등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그냥 두고 떠나기가 아쉬운 제주 서쪽의 상징적 스폿이다.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용수포구가 있다. 주민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방사탑’, 그 뒤편 바다로는 ‘차귀도’와 또 다른 무인도 ‘와도’의 모습이 또렷하다. 신혼부부들이 들러 백년해로를 기원한다는 ‘절부암’,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뒤 귀국하던 김대건 신부의 ‘표착기념관’까지, 용수포구 또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포구를 지나면 잠시 바다와 헤어져야 한다. 당산봉을 휘돌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구내포구에서 수월봉까지는 바다와 나란한 해안 절벽을 따라 달릴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4바퀴 달린 차량은 입출이 금지된 귀한 길이다. 수월봉은 제주 지질을 한눈에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응회암 절벽 지형으로 천연기념물 513호(제주 고산리 화산쇄설층)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해발 77m의 낮은 오름이지만 정상에서는 차귀도와 형제섬,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오며, 날씨가 맑은 날엔 멀리 송악산 능선까지 조망된다.
노을해안로는 대정읍 신도리와 일과리를 잇는 약 12km의 서부 해안 코스다. 이름처럼 석양이 아름다워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해안누리길로도 지정돼 있다. 이 구간에서는 남방 큰돌고래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바다에 120마리 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돌고래는 하루에 260km를 이동하는데 보통 5~15마리 정도의 무리를 유지한다.
풍요로운 어장을 품은 모슬포는 예로부터 어업이 성했던 곳이다. 자리돔, 부시리, 방어 등 난류성 어종이 풍부해 지금도 제주 서남부의 대표 어항으로 꼽힌다. 특히 방어철이 되면 항구 일대가 활기를 띠며, 신선한 회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이 줄을 잇는다.
한편, 모슬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많은 수탈, 징발, 노동력 착취 그리고 학살을 겪었다. 알뜨르비행장, 일본군 지하벙커, 해안 동굴 진지, 예비검속 학살 터, 포로수용소 유적 등은 당시의 흔적들이다. 스쿠터 여행의 끝에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묵직한 울림을 느껴 봄직하다.
Check Spot 1
미쁜제과
신도리 해안가의 ‘미쁜제과’는 한옥을 개조해 만든 베이커리 카페다. ‘미쁘다’는 ‘믿음직하고, 정직하다’라는 뜻이다. 고풍스러운 감성을 지닌 카페는 약 6,600m2의 부지를 자랑하며 내부만도 대략 495m2이나 된다. 물론 나무와 연못 그리고 분수로 조성된 정원도 있다. 미쁜 제과의 모든 빵은 유기농 밀가루를 자연 숙성해서 만든다. 천연 발효종 소금방, 마약빵, 옛날 팥빵이 수준급이다.
Check Spot 2
감저카페
모슬포의 카페 ‘감저’는 옛 전분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곳으로 부지만 무려 6,600m2에 이른다. 공장 운영주의 2세가 한동안 방치되었던 시설을 부인과 함께 10년 가까이 리모델링했다. 옛 건조장 건물은 카페, 창고는 갤러리로 변신했다. 카페 내부에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커다란 전분 기계가 우뚝 서 있었다. 카페 옆 건물 ‘감저팩토리’는 화산석과 검은 모래로 시공된 돌 건축물로 제주의 풍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2. 옛 정취와 새 감각이 느리게 스며드는 코스
추천 라이딩 코스
성읍 → 가시리 → 동쪽송당 동화마을
제주는 조선 태종(1416년) 이후 고종 때까지 제주목과 대정현, 정의현의 ‘1목 2현제’를 유지했다. 성읍은 정의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1984년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옛 제주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마을의 대부분 가옥은 전통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속도를 줄이고 돌담 사잇길을 달리다 보면 마치 사극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볼거리도 풍부하다. 1,0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군,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근민헌, 임금의 위패를 모신 객사 등의 유형 유산과 오메기술, 고소리술 등 유무형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성읍녹차밭과 가시리 녹산로 사이에는 3km의 서성로가 새롭게 놓였다. 왕복 4차선의 널찍한 도로에 차량운행도 여유로워 스쿠터의 속도를 조금은 올려 봐도 좋은 구간이다. 가시 3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면 본격적인 가시리 녹산로로 접어들게 된다.
가시리 녹산로는 제주시 남동쪽, 남원읍 가시리마을에서 시작해 표선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10.7km의 도로다. 제주에서는 드물게 직선으로 길게 뻗은 평탄한 구간으로, 사계절 서로 다른 꽃들이 도로를 감싼다.
길의 중간에서는 조랑말공원과 억새가 장관이라는 유채꽃 플라자를 거치게 된다. 봄이면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드는 곳이지만, 가을에는 여유롭고 한결 편안하다. 방목 중인 소와 조랑말이 풀을 뜯는 모습 너머로 한라산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스쿠터 위에서는 이렇듯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제주의 바람이 머무는 듯, 계절을 단단히 품었다. 동쪽송당 동화마을은 대천 사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스폿이다.
경내에는 ‘스타벅스 더제주송당 R점’뿐만 아니라 ‘파리바게뜨, 미스터밀크, 제스코 관광매장, 도토리숲, 코리코카페’ 등이 자리한다. 제주 신화에 관심이 있다면 ‘돌조각 공원’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나무와 바위 사이 수많은 석상은 제주의 신들이다. 닮은 듯해도 엄연히 다른 나름의 이름과 임무가 있다. 특히 길가에 세워진 3기의 석상은 아기를 점지하고 출산과 양육을 관장하는 삼승할망, 해상안전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 그리고 설문대할망이다.
성읍에서 동쪽송당 동화마을까지는 해안을 벗어난 중산간 내륙 구간이다. 제주민의 오랜 정서와 또 최근의 콘텐츠를 두루 살펴볼 수가 있어 더욱 묘미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송당이나 표선 방향으로 여행의 동선을 늘려 가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Check Spot 1
제주술익는집
우리나라 ’찾아가는 양조장’ 중 하나다. 이곳 양조장에서는 제주 고유의 술로 전해져 내려오는 발효주 오메기 맑은술과 증류주 고소리술을 직접 만들어 판다. ‘고소리 술 익는 집’의 내부는 ‘찾아가는 양조장’답게 제주 전통미에 현대적 감각이 잘 어우러져 있다. 양조장은 분위기 있는 카페를 연상시킨다.
Check Spot 2
오늘은 녹차한잔
‘오늘은 녹차한잔’은 제주의 동쪽을 대표하는 녹차 체험형 카페다. 1층은 족욕 체험실과 기념품숍, 2층은 카페로 구성돼 있으며 광활한 녹차 밭 사이로 산책도 즐길 수 있다. 동굴은 녹차 밭 아래 움푹 꺼진 공간 한편에 숨어 있다. 깊이는 약 50m 정도로 짧지만 대신 입구가 매우 넓은 특이한 구조의 동굴이다.
Check Spot 3
스타벅스 더제주송당 R점
제주에는 모두 18개의 스타벅스가 있다. 제주 송당공원R점은 지상 2층, 약 1,190m2 규모에 340석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리저브 전용’ 매장이다. 리저브는 소량만 재배되어 한정 기간에만 맛볼 수 있는 고품질의 스페셜티를 의미한다. 내부는 제주의 돌과 커피의 스토리를 반영해 꾸몄고, 국내 스타벅스 최초로 ‘키네틱 아트’ 작품을 설치했다.
3. 속도 너머로 흐르는 햇빛, 바람, 바다를 만끽하는 코스
추천 라이딩 코스
세화 → 하도 → 종달 → 오조 → 섭지코지
세화에서 하도, 종달, 오조를 거쳐 섭지코지에 가 닿는 25km의 구간은 제주 동부의 핵심 해안 루트다. 세화는 길 하나만 건너면 하얀 모래와 투명한 물빛을 만날 수 있는 제주 여행의 표지 같은 곳이다. 숙소, 카페, 식당, 소품숍에 더해 향토 오일장과 플리마켓까지 열리니 베이스캠프로 더할 나위 없다.
스쿠터로 해안을 달린다는 것은 제주의 감성을 단박에 만끽할 수 있는 멋진 경험이다. 특히 하도 포구를 지날 때는 잠시 멈춰서도 좋다. 별방진 성곽에 오르면 하도 포구와 마을의 모습이 평지에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감성의 깊이는 가끔 높이와도 비례한다.
조붓함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하도해수욕장’은 철새도래지 ‘용목개와당’과 마주 보고 있다. 철새도래지 ‘용목개와당’은 겨울 철새의 월동지로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오롯한 자연의 모습과 한적함을 스쿠터 여행의 기준이라 한다면 이곳 또한 최고의 스폿이다.
종달항으로 가는 길에는 ‘불턱’을 눈여겨봐야 한다. 불턱은 해녀들이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거나 물질 후 언 몸을 녹이던 곳이다. 종달리 갯가에는 ‘고망난 돌, 희길이네 못’ 등 재미있는 이름의 불턱이 늘어서 있다.
해안도로가 성산 갑문에 다다를 무렵 스치게 되는 마을이 있다. 일출봉에 해가 오르면 가장 먼저 그 빛을 받는다는 오조리다. 용천수 족지물을 출발, 식산봉과 오조포구를 거치고 마을 길을 통과 원점으로 회귀하는 구간은 N회차 여행자들마저 손꼽는 보물과 같은 코스다. 스쿠터를 세워 놓고 도보로 돌아보면 여정이 훨씬 뿌듯해진다.
성산 일출봉은 육계도였다. 터진목이라 부르는 육계사주를 통해 제주 본섬과 연결되고 떨어졌던 것을 일제강점기 말에 도로를 놓아 연륙했다. 또한 갑문(한도교)이 놓이면서 오조리와 성산은 시야만큼 가까워졌다. 이는 식산봉 뒤편에서 성산까지 펼쳐진 온화한 바다가 내수면이 되었던 두 가지 이유다. 내수면에 물이 빠지면 제주 유일의 갯벌이 드러난다. 통알밭이라 부르는 이곳은 조개바당이다.
섭지코지는 제주의 동쪽 끝, 바다와 절벽이 맞닿은 대표 해안 명소다. 스쿠터라면 바람 속 풍경을 한층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쓰인 언덕길은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Check Spot 1
세화오일장
제주 동부지역의 대표 향토 오일장으로 매월 0과 5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이 시장은 세화·하도·종달 인근 주민들이 농수산물을 거래하던 생활 장터에서 출발했다. 시장은 세화 해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창 너머 시선이 닿는 곳마다 바다와 하늘이 번갈아 넘실댄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플리마켓 모모장도 열린다.
Check Spot 2
토끼썸
하도리 바닷가에는 토끼섬이란 이름을 가진 작은 무인도가 있다. 문주란 자생지로 알려진 곳이다. 토끼썸은 토끼섬이 바라다보이는 해안가의 카페다. 내부에는 담요, 바구니, 라탄테이블, 조화 등의 장식이 준비돼 있다. 모두가 연출용 소품이다. 이곳의 피크닉 세트는 토끼섬을 주제로 만든 콘셉트다.
Check Spot 3
오조포구
오조포구에는 ‘돌창고’가 하나 있는데, 이곳은 드라마 <웰컴투삼달리>의 촬영지였다. 주인공 삼달이와 용필이가 일회용 카메라를 샀던 ‘럭키편의점’이 바로 이곳이다. 물론 현재는 세트장이 모두 철거되고 본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드라마의 여운은 오래 남는 법, 여행객들의 꾸준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글·사진 김민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제주관광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