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인간이 바라본 W 오사카.
W 오사카를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
W 오사카에 묵는다고? 너가?’ 비수처럼 꽂힌 이 짧은 질문은 그 바탕에 은은한 무시가 전제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론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오사카의 선선한 가을 저녁, 오사카에 사는 친구들과 난바 어느 포장마차에 앉아 수다가 한창이었다. 자리에서 나 홀로 여행자인 입장인지라, 대화 주제는 주로 오사카에서 내가 남긴 족적에 관한 논쟁이었다. ‘아, 그 라멘집은 현지 사람 안 가는 곳인데, 그 옆 가게 커리가 진짜 맛있는데, 아니 거길 왜 가? 그걸 또 왜 거기서 샀어?’ 같은 핀잔들. 여행자의 경험은 현지인에 의해 너무 쉽게 부정당하곤 하니까, 뭐 나름 괜찮았다. 그러던 중, 한 놈이 내게 물었다. ‘너 호텔은 어디야?’ 내가 답했다. ‘W 오사카’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입가에 나지막이 실소가 피었다. 이윽고 나오고야 만 누군가의 외마디의 감상, ‘너랑 너무 안 어울리는 호텔 아니야?’
나란 사람, 참으로 내향적인 인간이다. 사람 관계에 소극적이라기보단 마음의 페이스가 느려, 적응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 그래서 늘 도시를 여행할 때면 잠자리만큼은 평범한 곳을 찾는다. 복작복작한 도시의 유대감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자 하다 보니, 돌고 돌아 클래식한 호텔을 찾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W’는, 맹세컨대 단 한 번도 나의 예약 리스트에 두지 않았던 알파벳이다. W호텔은 1998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했는데, 당시 5성급 호텔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품위에 관한 고정관념을 산산조각 낸 브랜드다. 정장에 가깝던 호텔 유니폼을 청바지로 대신했고, 호텔리어는 투숙객과 격식이 없이 동네 친구처럼 수다 떨기 바빴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로비 DJ 부스에서는 쉴 새 없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그 모습이 사실상 호텔이라기보단 어느 클럽에 더 가까웠다.
호텔 이름인 ‘W’는 ‘Welcome, Warm, Wonderful, Witty, Web’ 등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모든 단어의 첫 글자에서 따온 것이란다. 될 대로 되라 싶은 이름의 뿌리답게, W호텔은 모든 공간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용어로 재구성한다. 로비는 ‘리빙룸(Living room), 컨시어지는 왓에버/ 웬에버(Whatever/ Whenever), 주차장은 휠스(Wheels), 피트니스 & 사우나는 츠앤스웨츠(Wets & Sweats)’라 통칭하는 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거다. 그래서 왜 하필 나는 오사카의 수두룩한 클래식 호텔을 제쳐 두고, 트렌드의 최전선인 W호텔을 선택했을까. 푸른빛 네온사인 번쩍이는 W 오사카의 발랄함을 품은 이가, 바로 ‘안도 다다오(Ando Tadao)’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참 좋다.
이곳과 어울리는 당신을 위하여
2021년 오픈한 W 오사카는 일본 최초의 W호텔이다. 오사카 심장부인 미도스지 중심에 자리하며, 27층에 걸쳐 총 337개의 객실을 구성했다. W 오사카의 외관 디자인은 ‘안도 다다오’가 맡았다. 오사카 출신인 그는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단순한 구성과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으로 대표되는 건축가인데, 그의 건축에는 언제나 지역의 정서가 깊게 투영되어 있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W라도, 그의 단호한 명료함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W 오사카의 외관은 건물을 마치 검은색 벨벳으로 덮어 둔 모습이다. 언뜻 직사각형의 검정 광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일본 전통의상인 ‘하오리(羽織)’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이다. 하오리는 외출할 때 기모노 위에 덧입는 겉옷을 뜻한다. 화려함을 금지했던 에도 시대 당시, 오사카 상인들은 형형색색의 기모노를 숨기기 위해 검은 하오리를 그 위에 걸쳐 입었다고 한다.
안도 다다오가 꽁꽁 싸맨 W의 검정 하오리를 걷어 내면, 비로소 W호텔다운 터널이 펼쳐진다. 터널에는 총 3,000개가 넘는 원형 금속 아치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의 종이접기 예술, ‘오리가미(折紙)’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이다. 터널은 봄의 벚꽃을 상징하는 핑크색, 여름의 바다를 상징하는 푸른색, 가을의 단풍을 상징하는 노란색, 겨울의 눈을 상징하는 하얀색 순서로 계절마다 색을 달리한다.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로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자면, 문득 매트한 질감의 천장 구조물이 눈에 띈다. 이는 삼나무 잎을 묘사한 ‘아사노하(麻の葉)’ 문양을 형상화한 구조물이다. 일본 사람들은 생명력이 강한 삼나무의 잎에는 나쁜 기운을 내쫓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3층으로 올라서면 ‘리빙룸’이라 부르는 로비가 나온다. 어느 공연 무대를 위한 구성의 리빙룸의 중앙에는 DJ 부스와 바 공간이 자리한다. 그야말로 뜬금없이 자리한 빨간 원형 계단과 공연장 모형은 오사카의 독자적인 개그 문화인 ‘만자이(Manzai)’ 공연 무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만자이는 대화의 흐름에 따라 관객을 웃게 만드는, 일종의 오사카식 만담 개그다. 그 옆쪽으로 펼쳐지는 형형색색 소파 위로 장방형 조명이 천장에 가득하다. 오사카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건너편 벽면에는 일본 전통 목각 인형인, ‘코케시 닌교(こけし人形)’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전시해 두었다. 볼 것도 많고, 앉을 곳도 많아서 리빙룸에는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는 늘 대화가 돌고, 대화가 잦은 곳의 늦은 밤은 특히나 무르익기 마련이다. 매일 저녁, 새로운 DJ가 W 오사카 리빙룸 DJ 부스를 찾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내향인들, 걱정할 건 없다. 호텔은 방에서 자는 곳이다. W 오사카의 룸 타입은 총 6개. 그중 가장 추천하는 타입은 코너룸인 스펙타큘러(Spectacular) 타입이다. 침대를 중심으로 양쪽 통창이 뚫려 있어 누웠을 때 개방감이 좋다. 27층에 위치한 ‘익스트림 와우(Extreme Wow) 타입’은 프레지덴셜 스위트다. 일본 전통 가옥의 방식에 따라 정원, 침실, 욕실, 거실, 주방으로 공간을 5등분 했다. 침대 위쪽으로는 네덜란드 출신 아티스트, ‘지그리드 칼론(Sigrid Calon)’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침대 왼편, 욕실 한가운데에는 팽이 모양의 스테인리스 욕조가 놓여 있는데, 참으로 도발적이다. 욕조에 들어가면 어느 방향으로 둘러봐도 씻고 있는 자신이 비춰 보인다.
호텔 창밖으로 오사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미도스지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가을이라 노란 은행나무 잎이 길가에 아무렇게나 흩날려 있다. 365일 정갈하기로 소문한 일본의 길거리지만, 오사카는 사뭇 다르다. 소란스럽지만 따뜻하고, 거칠지만 묘하게 안정적인 도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오사카의 선선한 가을 저녁, 친구들과 난바 어느 포장마차에서 놀고 있던 그때로. W 오사카는 내게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을 겸허히 듣고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물론 삐진 것은 아니다. 내향형 인간은 언제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할 뿐). 안도 다다오가 W 오사카에 입힌 검은색 하오리는 어쩌면 W의 화려함을 숨기려는 장치가 아니라, 그 속의 열기를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절제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제서야 문득, W 오사카가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려함을 감추되 지루하지 않고, 시끌벅적하지만 이따금 혼자 있어도 괜찮은 리듬. 그건 어쩌면 호텔이 도시를 버티는 방법이자, 내향형 인간들이 세상을 견디는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그러니 내향형 인간들이여, 누가 뭐래도 당신은 W 오사카와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강화송 기자의 호소문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강화송 기자의 휴식 호소문. 어떻게 하면 호텔에서 좀 더 뒹굴 수 있을까. 기자 생활 내내 고민 끝에 찾은 단 하나의 돌파구. 1년 365일 쉬고 싶은 그가 선택한 세계 곳곳의 호텔 소개문.
글·사진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