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박귀임 기자] "엔도로보틱스는 전문 의료진의 오랜 연구와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의사들은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촛불과 거울을 사용했다. 1950년대 광섬유 기술이 도입되면서 내시경은 비로소 진단 도구로 자리 잡았고, 1980년대 등장한 복강경 수술을 통해 최소 침습 수술의 시대가 열렸다. 피부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도 수술할 수 있다는 당시 발상은 혁명이었다. 그로부터 40년, 의료 기술은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한다. 이번엔 로봇이 주역이다.
의료 로봇 스타트업 엔도로보틱스는 내시경 수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기술 개발로 주목 받는다.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실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글로벌 의료 시장까지 두드리는 상황이다. 내시경 수술 로봇 분야에서 국내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획득한 것. 김병곤 대표를 만나 엔도로보틱스의 성장 전략과 목표를 들어봤다.
고려대 교수 지지로 창업 결심
엔도로보틱스는 김병곤 대표가 2019년 홍대희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와 공동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사명은 내시경을 뜻하는 '엔도스코프(Endoscope)'와 로봇 기술을 의미하는 '로보틱스(Robotics)'를 결합한 것으로 엔도로보틱스의 주력 분야인 내시경 수술 로봇 개발을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전공한 김병곤 대표는 처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학박사 졸업을 앞두고 내시경 수술 로봇 관련 논문 연구에 집중하며, 로봇 전문 대기업 입사를 계획했다. 졸업 논문으로 연구한 로봇 아이템이 실제 병원에 상용화하기 적합하다는 의견을 들었을 때도 초반에는 기술 이전만 고려했다. 그러던 중 지도교수인 홍대희 교수는 물론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진의 용기와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최종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김병곤 대표는 2019년 대학원 졸업 후 불과 한 달만에 엔도로보틱스를 창업했다. 창업 아이템은 졸업 논문으로 연구한 내시경 수술 로봇이었다. 모든 기능을 탑재한 하나의 내시경 로봇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기존 내시경 치료 기기에 호환되는 탈착식 로봇 솔루션을 개발하기로 했다. 김병곤 대표는 "스코프를 포함해 일체형으로 내시경 로봇을 만들면 더욱 최적화된 설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내시경과 경쟁해야 한다.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내시경은 오랫동안 사용된 친숙한 의료 기기다. 기존 내시경을 활용하면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기술적 난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로보페라 한 대로 내시경 수술 손쉽게
엔도로보틱스는 내시경 치료 솔루션을 제공한다. 기존 내시경 진단 및 치료 기기와 호환이 가능하다. ▲트랙클로저(TraCloser) ▲롤링스티치(RollingStitch) ▲엔도큐봇(EndoCubot) ▲로보페라(ROBOPERA) 등이 대표적이다. 트랙클로저는 내시경 탈착형 다관절 견인 로봇팔로 병변의 박리와 클로징을 연속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시경 장착형 봉합기 롤링스티치 역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엔도큐봇은 시뮬레이터 기반 내시경 시술 트레이닝을 위한 새로운 솔루션인 만큼 위나 대장 중 정확한 병변 위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환자의 호흡과 재채기 등 실제 인체 내부와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뛰어나다. 로보페라 역시 정밀 내시경 수술을 위한 첨단 로봇 플랫폼으로 기존 내시경 치료 기기와 호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로 작동도 쉽다.
특히 로보페라는 완전 비침습 수술을 실현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피부 절개나 침습적 조작 없이 신체 내부에 접근, 질병 치료 및 진단을 수행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은 물론 빠른 회복도 가능하다. 김병곤 대표는 "로보페라의 핵심은 미세 케이블 제어 기술이다. 사람의 목구멍은 직경 약 15mm 정도로 제약이 있다. 그 속에 집게, 카메라, 수술 도구가 모두 작동하도록 만드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며 "엔도로보틱스는 720도까지 회전 가능한 유연 케이블을 통해 기존 내시경의 제한된 자유도를 극복했다. 수술의 정확성과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로보페라의 또 다른 강점은 실용성이다. 기존 다빈치 수술 로봇은 의료업계에 혁신을 일으켰지만 규모가 커 수술방 구조를 바꿔야했고, 비용도 덩달아 올랐다. 로보페라는 다르다. 호환형 탈착식으로 진단용 내시경에 로봇팔을 장착하면 수술 로봇으로 바뀌고, 수술이 끝나면 다시 진단용 내시경으로 복원된다. 이에 의료업계에서 더욱 각광받는다. 김병곤 대표는 "전 세계의 소화기 내과에 큰 변화 없이 우리 기술이 도입될 수 있다. 기존 내시경 치료 기기와 호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입 부담도 낮다"고 밝혔다.
올해 FDA 승인…독자적 기술력+전략적 접근 통해
엔도로보틱스는 창업 후 꾸준히 성장했다. 2021년까지 사업 기반을 다졌고, 2022년부터 제품 사업화에 매진한 결과 의료기기 품질관리 GMP 인증뿐만 아니라 시리즈B 투자 유치로 1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2024년에는 글로벌 의료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의료 학술 대회 'DDW(Digestive Disease Week) 2024'와 글로벌 내시경 분야 포럼 'ENDO(World Congress of GI Endoscopy) 2024'에서 연달아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김병곤 대표는 "DDW 2024는 미국에서 열린 유명한 행사였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부스 1개 규모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엔도로보틱스는 과감하게 부스 4개를 확보해 글로벌 중견기업 수준으로 참여했다. 'DDW 2023' 사전 답사에서 부스 1개만 운영하는 스타트업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시 글로벌 의료기업에서 큰 관심을 보였고 실질적인 협력으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ENDO 2024에서도 엔도로보틱스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로보페라로 수술하는 실시간 영상을 공개한 것. 로보페라 경험이 있는 의사가 집도했지만 새로운 의료 기술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뜨거운 반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해 로보페라를 처음 접한 인도 현지 의사가 다음날 임상 수술할 때 정말 쉽다는 뜻의 '소 이지(So easy)'를 연발했다. 또 자신의 손 기술보다 장비 덕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로보페라의 직관적인 사용성과 실용성을 단적으로 입증한 사례였다. 김병곤 대표는 "당시 내부에서도 굉장히 뿌듯해했던 기억이 난다"며 미소 지었다.
이러한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로보페라는 올해 9월 FDA로부터 다빈치 수술 로봇과 동일한 'NAY' 코드를 승인받았다. 이 코드는 단순 보조 액세서리 수준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시경 중재 수술을 수행하는 차세대 수술 로봇에만 적용된다. 즉 로보페라가 FDA 기준에서 안전성, 유효성, 품질 관리 등 고도 수준 규제를 요구하는 중등도 위험(Class II) 의료기기군에 속하게 된 것이다.
FDA 승인은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수 년이 걸리거나 거부 당하기도 한다. 로보페라의 경우 철저한 사전 질의 및 준비를 통해 FDA 510K 신청서 제출부터 심사와 승인까지 10개월 만에 통과해 더욱 의미가 크다.
엔도로보틱스는 로보페라의 FDA 승인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 김병곤 대표는 "FDA 승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전 질의 과정부터 꼼꼼하게 전략을 세웠다. 여러 대응책도 미리 만들었다"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을 제안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FDA 측 입장에서 생각해 그들이 만족할만한 답변이나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나씩 해결하며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덧붙였다.
로보페라는 FDA에 이어 유럽 CE(Conformité Européenne, 유럽 적합성) 인증도 진행한다. CE는 유럽연합 시장에서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판매 및 유통하기 위한 법적 필수 인증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인다. 엔도로보틱스는 연내 시리즈C 투자 유치로 글로벌 진출 전략도 가속화할 방침이다.
글로벌 내시경 수술 표준 '확신'
이러한 엔도로보틱스의 성장에는 서울홍릉강소특구(이하 홍릉특구)의 역할이 컸다. 엔도로보틱스는 2021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인 홍릉특구 연구소 기업으로 지정된 후 강소특구육성사업, 기술이전사업화(R&BD) 등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홍릉 첨단과학기술사업화 제1호 펀드 매칭을 통한 시리즈A 투자 유치부터 IPO 컨설팅 프로그램 참여 및 예비기술성 평가 지원, 포스트팁스(Post-TIPS) 기업 선정 등을 통해 기술 경쟁력 진단과 상장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도 했다.
김병곤 대표는 "창업 초기에 홍릉특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홍릉 첨단과학기술사업화 제1호 펀드 매칭을 통해 투자받은 부분도 엔도로보틱스가 성장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엔도로보틱스의 핵심 과제는 기술 개발과 인허가를 넘어 생산이다. 올해 7월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 이전한 엔도로보틱스는 이곳에 제조 시설도 추가로 구축한다. 현재 경기 성남에 위치한 제조 시설을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김병곤 대표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 개발하는 사람, 생산하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 사람 간의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도로보틱스는 목표도 명확하다. 김병곤 대표가 그리는 미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하이테크를 활용하되 환자와 병원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업무 환경과 직장 만족도가 높은, 행복한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김병곤 대표는 "복강경 수술이 처음 도입됐을 때도 획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제는 표준이 됐다. 현재 엔도로보틱스의 내시경 수술 로봇 기술이 복강경 수술 초창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기술이 글로벌 의료업계의 표준이 되는 건 예측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했다.
김병곤 대표의 도전으로 시작된 혁신이 글로벌 의료 시장에서, 그리고 인간의 삶을 바꾸는 긍정적인 기술 사례로 기록될 날을 응원한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