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코너를 돌며 폭발적 속도로 질주하는 자율주행 머신. 선두 차량을 추격하는 또 다른 AI 레이서가 근접하며, 인간 드라이버 없이도 완벽에 가까운 레이싱 라인과 공격적인 추월 시도를 구현하는 A2RL의 기술력을 보여준다.(A2RL 제공)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시속 250km.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야스 마리나 서킷 위에서 폭발적 토크를 내뿜는 머신들이 칼날 같은 간격으로 서로를 압박한다.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추월, 곧장 맞받아치는 역공, 관중석에서는 비명이 터지고 숨이 막히는 긴장감이 서킷 전체를 뒤덮는다.
겉모습만 보면 F1 못지않은 광기 어린 스피드 전쟁이지만 이 장면에는 단 하나, 랜드 노리스와 같은 드라이버가 없다. 조종석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없다. 그럼에도 이 머신들은 인간 레이서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정확히 판단하고, 과감히 찌르고, 미세한 흔들림까지 제어하며 레이스의 본능을 폭발시킨다.
아부다비 야스 마리나 서킷에서 17일(현지 시간), 세계 최초로 6대의 완전 자율주행 레이스카가 동시에 출전한 A2RL(Abu Dhabi Autonomous Racing League) 시즌2 그랜드 파이널이 펼쳐졌다. ‘연구실의 실험’이 아닌 ‘진짜 모터스포츠’ 단계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리였다.
올해 우승은 독일 TUM(Technical University of Munich)이 차지했다. 결과보다 더 강렬했던 건 경기 자체였다. 경기 초반, 폴 포지션의 TUM은 이탈리아 '유니모레(Unimore)의 매서운 속도에 일격을 당했다.
불과 두 바퀴 만에 6번 코너에서 AI 기반 오버테이크가 완벽히 성공하며 선두가 바뀌었다. 양 팀은 시속 250km 이상, 0.5초 이내 간격, 10바퀴 이상 이어진 밀고 당기기로 자율 레이싱 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레이스 중반, 백마커 추월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로 유니모레가 가 코스를 이탈하며 다시 선두는 TUM으로 넘어갔다. 유니모레는 비록 탈락했지만 대회 전체 최고 랩타임(Fastest Lap)을 기록하며 기술 발전 속도를 입증했다.
아부다비, 야스마리나 서킷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 아래, 자율주행 레이스카들이 스타팅 그리드를 채운 모습. 8,000여 관중이 몰려든 대회장은 인간 없는 머신들이 펼칠 ‘새로운 시대의 레이스’를 기다리며 뜨거운 환호로 가득 찼다.(A2RL 제공)
가장 극적인 장면은 F1 출신 다닐 크비얏(Daniil Kvyat)이 챔피언 팀 TUM의 자율주행 머신 HAILEY와 맞붙은 특별 이벤트였다. 크비얏의 최고 랩타임은 57.57초, TUM AI 랩타임은 59.15초로 단 1.58초 차이에 불과했다. 현장에서는 AI 자율주행 머신이 인간 드라이버를 앞서 달리는 일이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웅성거림이 나왔다.
불과 18개월 전만 해도 인간과 AI 간에는 10초 이상 격차가 있었다. 지금은 사실상 레이스가 되는 수준으로 좁혀졌다는 의미다. 크비얏은 “기술 발전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AI와 달리는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모터스포츠”라고 말했다.
대회 조직위와 팀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제는 기술 개발이 아닌 레이스 자체가 기술을 끌어올리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A2RL은 단순한 기술 쇼케이스가 아니라 실시간 의사결정(Real-Time AI), 고속 파지션 경쟁, 복잡한 교통 상황 대응, 가상 시뮬레이션과 실차 테스트 결합(SIM Sprints) 등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술 압력 테스트베드’로 평가받는다.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 소속 기관인 아스파이어(ASPIRE)의 CEO 스테판 팀파노는 “18개월 만에 인간을 넘어서는 랩타임을 만들었다. 이 속도라면 AI 레이싱의 기술은 자동차, 물류, 항공 등 모든 자율 시스템 산업을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행사로만 여겨지던 자율 레이싱이 이제는 관중을 끌어 모으는 모터스포츠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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