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엘레트라 (로터스 제공)
[오토헤럴드 정호인 기자] 전동화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자동차 브랜드가 말하는 ‘럭셔리’의 의미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고급 소재, 조용한 실내, 높은 완성도 같은 공통 기준이 있었다면, 지금은 각 브랜드가 자신만의 언어로 ‘고급’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다.
하드웨어 중심이었던 럭셔리는 이제 UX, 소프트웨어, 감성 경험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브랜드별로 지향하는 ‘럭셔리의 감각’ 또한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는 각 브랜드가 사용하는 단어와 UX 설계 방식에 그대로 녹아 있다. 포르쉐는 ‘정밀함’을, BMW는 ‘감각’을, 테슬라는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로터스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로터스 에메야 (로터스 제공)
로터스= 침묵 속의 몰입, 조용한 속도의 미학
로터스가 말하는 럭셔리는 화려함이나 과시가 아니다. 전동화 시대로 접어들며 로터스가 정의하는 고급은 잡음을 걷어내고 남은 ‘순수한 집중’이다. 하이퍼 OS를 중심으로 한 경량 UX, 주행 몰입형 인터페이스는 불필요한 시각적 장식이나 복잡한 메뉴 구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기술적 우월성을 과감히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마치 고요한 산책로처럼 운전자에게만 은밀히 집중의 통로를 건넨다.
‘정숙한 퍼포먼스’라는 표현 역시 단순히 소리가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과한 그래픽 없이 명확한 정보만 전달하는 화면, 손의 움직임을 예측하듯 반응하는 인터랙션, 소음 대신 미세한 전기적 반응만 들리는 가속감 등이다. 로터스에 럭셔리는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감각을 깊이 끌어올리는 경험이다. 자극적인 기술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시대에 로터스는 오히려 기술을 깊이 몰입하며 다가가는 방식으로 고급을 만들어낸다.
포르쉐 카이엔 (로터스 제공)
포르쉐= 정밀함, 기술 완성도가 만드는 고급
포르쉐는 럭셔리의 개념을 정밀한 기술의 체감으로 정의해왔다. 예전에는 가속 페달, 스티어링, 변속 로직과 같은 주행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인터페이스 반응까지 모든 요소가 정교하게 맞물릴 때 운전자는 자연스럽게 ‘기술의 절대 안정감’을 느낀다.
그만큼 PCM과 디지털 스포츠 UX는 버튼의 압력감, 화면 전환 속도, 메뉴 구조의 논리까지 모두 철저하게 통제된 정밀함을 목표로 한다. 화려함보다는 오류가 없는 UX에 가깝다. 그만큼 포르쉐에 럭셔리는 신뢰의 경험이다. ‘운전자가 기술 위에 올라탄다’라는 브랜드의 오랜 철학과 맞닿아 있다. 포르쉐의 럭셔리는 결국, 기술적 완성미가 주는 미세한 쾌감이다.
BMW i7 (로터스 제공)
BMW= 몸으로 느끼는 감각 중심의 구조
BMW는 럭셔리를 물리적 감각 전체로서 정의한다. Operating System 9(OS 9) UX는 조작감·피드백·음성 연동 등 운전자가 차와 교감하는 모든 과정에 감각적인 연결을 보여준다. 터치와 조그셔틀, 제스처까지 다양한 입력 방식을 제공하는 이유도 운전자의 감각 선호를 존중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BMW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단순히 좋은 소재나 조용한 실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차의 떨림, 스티어링의 무게, 버튼의 저항감, 엔진·모터의 반응처럼 신체적 피드백 전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고급이 완성된다. 즉, 시각이나 편의의 결과가 아니라 운전자가 몸을 통해 차를 이해하는 과정 자체를 선호한다. 드라이빙의 감성을 강조하는 브랜드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메르세데스-벤츠= 시각적인 풍성함과 한눈에 보는 고급감
메르세데스-벤츠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럭셔리 감성 중에서도 특히 시각적 만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MBUX 하이퍼스크린이 있다. 넓은 화면과 고해상도 그래픽, 조명과 색채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보이는 고급을 기본 가치로 삼는다.
화면 자체가 실내 디자인을 완성하며 사용자에게는 눈을 즐겁게 하는 경험을 통해 고급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여기에는 화려한 직간접 조명도 한몫한다. 이처럼 인테리어의 미학과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결합된 형태로 벤츠는 럭셔리 감성을 자극하는 시각 예술에 가깝게 발전시켰다.
테슬라 (오토헤럴드 DB)
테슬라= 효율·단순함이 만든 미래형 럭셔리
테슬라는 기존 럭셔리 개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텍스처가 풍부한 그래픽이나 화려한 애니메이션 대신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기술력을 럭셔리로 해석한다. 단일화된 터치 UI, OTA 중심의 운영, 극단적인 메뉴 단순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사용자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선택이 된다.
테슬라 UX의 럭셔리는 화려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효율을 통해 사용자의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또한 OTA를 통해 차량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통해 업그레이드되는 럭셔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는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가 갖지 못한 시간과 혁신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정호인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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