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깊은 숲, 그리고 수억 년의 지층이 빚어 낸 시간.
삼척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담은 7곳을 모았다.
옥빛 바다를 따라
새천년해안도로
삼척의 옥빛 바다를 따라 시원하게 이어지는 해안도로. 거센 바닷바람이 다듬은 기암과 푸른 송림이 나란히 서 있어, 풍경만으로도 이미 여행이 된다. 이 아름다움 덕분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도로의 길이는 약 4.6km. 삼척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작은후진해수욕장, 후진항, 두꺼비바위, 조각공원, 소망의 탑을 지나면 삼척항에 닿는다. 자동차나 자전거, 도보, 버스 등 어떤 방식으로도 즐길 수 있으며, 걸어서 완주하면 약 1시간이 걸린다.
길 중간에는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포인트와 쉼터가 많아,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하나의 여행 코스가 된다. 도로의 끝에는 새천년해안유원지가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해맞이축제가 열려 붉게 차오르는 해와 함께 새해의 첫 아침을 맞을 수 있다. 바로 옆 소망의 탑에서 소원을 비는 일은 이제 수많은 여행자들의 연례 행사가 됐다.
바닷속 어항
장호항
쪽빛 바다 위로 솟은 기암괴석이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 준다. 덕분에 바위 품 안의 장호항에는 부드러운 물결만 흐른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천연 수영장처럼, 파도는 잔잔하고 물빛은 투명하다. 수심이 얕아 스노클링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물속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해조류가 춤추듯 헤엄치며, 그 풍경은 투명 카누를 타고서도 감상할 수 있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비치는 바다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체험이다. 스노클링과 카약 구역이 나뉘어 있고, 장비 대여와 안전요원이 상시 배치돼 준비물 없이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천혜의 해양 환경 덕분에 장호항은 2001년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20년 넘게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바다 래프팅 등 다양한 해양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항구 주변에는 갓 잡은 해산물을 바로 손질해 내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신선한 가자미, 오징어, 대구, 대게, 도루묵, 임연수어 등 장호항의 대표 어종을 맛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다.
으뜸가는 비경
죽서루
죽서루는 강원도 동해안의 절경을 대표하는 ‘관동팔경’ 중 첫 번째 경관으로, 삼척의 상징과도 같은 누각이다. 바다를 품은 다른 팔경들과 달리 산과 강, 절벽이 어우러진 내륙의 풍경 속에 자리해 사계절마다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처음에는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는 뜻의 ‘서루’라 불렸으나, 14세기 후반부터 대나무 숲 안 절 ‘죽장사’ 서편에 있다는 뜻의 이름, ‘죽서루’로 불리기 시작했다. 누각은 사방을 트고 경치를 감상하도록 벽과 문을 두지 않은 높은 집을 말한다.
오십천을 따라 굽이진 절벽 위에 선 죽서루는 기둥의 절반 이상이 자연 암반 위에 서 있어, 평평한 터가 아닌 바위 위에서 각기 다른 높이로 세워진 독특한 자태를 뽐낸다. 이런 구조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건축 양식으로, 고려시대인 12세기 이전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 전기 재건을 거쳐 여러 차례 보수와 증축을 반복했으며, 조선 후기의 형태가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시대의 건축이 겹겹이 쌓인 죽서루는, 단순한 누각이 아니라 시간의 미학이 머무는 공간이다.
신라 설화가 눈앞에
수로부인헌화공원
바다를 마주한 산 정상, 거대한 조각상이 서 있다. 높이 51m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남화산 정상에 동양에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천연석상 ‘수로부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 10.6m, 너비 15m, 무게 5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은 태풍이 몰아쳐도, 파도가 덮쳐도 끄떡없을 듯한 위용을 뽐낸다. 수로부인헌화공원은 이 조각상을 중심으로 삼국유사 속 ‘헌화가’와 ‘해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조성된 테마공원이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그녀를 둘러싼 두 개의 노래에는 그 미모가 불러온 운명이 담겨 있다.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남편을 따라가던 길, 수로부인이 절벽 위에 핀 꽃을 탐하자 한 노인이 그 꽃을 꺾어 바치며 노래한 것이 ‘헌화가’이고, 용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바닷속으로 끌고 갔을 때 백성들이 불러 구했다는 노래가 ‘해가’다. 전설처럼, 이곳에서는 노래와 설화를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걸으며 느낄 수 있다.
푸른 숲길 따라서
삼척활기치유의숲
활발한 기운을 되찾고 싶다면 이곳으로 향하자. 숲이 있는 삼척 미로면 ‘활기리’는 이름 그대로 ‘늙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마을이다. 맑고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깨어난다. 숲에는 다양한 수종이 자생하며, 곳곳에 군락지를 이룬다.
특히 황장산 금강송 군락지에 자리한 만큼 대표 수종은 금강송으로, 그 수가 무려 1,000그루 이상이다. 평균 수령은 70년, 둘레 70cm가 넘는 거목들이 하늘로 뻗어 있다. 이외에도 굴참나무 군락지와 자작나무 숲, 미인송과 대왕소나무가 있는 ‘삼척천년의숲’ 등 걸을수록 새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대표 산책 코스인 ‘치유의 길’은 총 16개 코스로, 난이도에 따라 상·중·하 3단계로 나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숲길 산책 후에는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으로 휴식을 이어 갈 수 있다. 산림치유 프로그램, 인진쑥과 아로마 오일을 넣은 족욕 테라피, 온열돔과 반식욕을 즐기는 온열 테라피, 차의 향과 색을 음미하는 힐링 다도실 등이 마련돼 있다.
지하에 숨겨진 시간의 궁전
대금굴 & 환선굴
수억 년 전 열대 심해의 산호초 지형이 솟아오르며 형성된 대금굴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회암 개방동굴인 환선굴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가 품은 두 개의 거대한 지하 세계다.
2,000년 땅속에서 울려 나온 천둥 같은 소리로 존재가 확인된 대금굴은 3년의 조사와 7년의 정비 끝에 2006년 공개된 곳으로, 황금빛 종유석과 석순, 높이 8m의 비룡폭포, 커튼처럼 늘어진 12m 종유석이 어우러진 ‘물의 궁전’이라 불린다.
반면 약 5억3,000만년 전 형성된 환선굴은 길이 6.2km에 이르는 통로와 하얀 모래 연못이 펼쳐진 거대한 암실을 품은 곳으로, 옥좌대와 만리장성 같은 독특한 형상들이 압도적인 규모 속에서 빛을 발한다.
상시 기온 11도의 동굴 안에서는 관박쥐와 꼬리치레도룡뇽 등 고유종을 포함한 20여 종이 살아 숨 쉬며, 2010년 개통된 모노레일 덕분에 입구까지 보다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같은 대이리 지대 안에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를 지니는 두 동굴은, 지질과 시간의 깊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장소다.
삼척의 산토리니
쏠비치 삼척
삼척의 해안 절벽 위. 바다를 정면으로 껴안은 리조트가 있다. ‘쏠비치 삼척’. 전체적인 외관 분위기는 그리스 산토리니 콘셉트로 확고하다. 하얀 벽, 파란 지붕, 아치형 구조물.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대충 찍어도 엽서처럼 사진이 나오는 조합이다.
2016년에 문을 연 쏠비치 삼척은 시간이 쌓아 올린 안정감과 노련함이 있다. 대형 리조트일수록 동선, 풍경 활용, 객실 구조의 완성도가 차이를 만드는데, 여긴 그게 이미 다 자리 잡혀 있다. 마치 ‘경험 많은 선배’ 같은 호텔이랄까. 객실동과 편의시설, 레스토랑이 흩어져 있지만 이동 동선이 직관적으로 설계돼 처음 와도 헤맬 일이 거의 없다. 전체 건물이 해안선 곡선을 따라 배치돼 있어 어디에서든 바다 조망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도, 단순한 운이 아니라 구조 설계에서 비롯된 강점이다.
객실은 호텔동과 리조트동으로 나뉜다. 총 709개의 전 객실에 발코니가 설치돼 있고, 그중 86%의 객실이 오션뷰다. 문만 열면 바다가 화면처럼 펼쳐지는 느낌. 발코니는 단순한 풍경 감상용이 아니라, 삼척 바다만의 감성 자체를 통째로 담는 액자에 가깝다. 일출 감상은 특히 쏠비치 삼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경험 중 하나. 높은 지대에 자리해 있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정면으로 깨끗하게 바라다 보인다.
F&B도 상당히 탄탄하다. 아침에는 셰프스키친의 조식 뷔페가 기세를 올린다. 뷔페 구성이 알차서 여행 전 든든함을 채우기 좋다. 전면 유리창으로 펼쳐지는 오션뷰는 그 자체로 조식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
카페 겸 베이커리인 마마티라는 쏠비치 삼척의 핫플레이스다. 커피와 스콘도 만족스럽지만, 시그니처 메뉴는 따로 있다. ‘우바곰(우유에 빠진 곰)’과 ‘에바곰(에스프레소에 빠진 곰)’이다. 수제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곰 세 마리 모형에 우유 또는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는 메뉴인데,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한식이 당긴다면 한식 레스토랑인 해파랑으로 향해 보자. 올 11월에 공개된 석갈비 쌈밥정식은 해파랑의 야심 찬 신메뉴다. 200도의 뜨거운 돌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를 바로 싸 먹는 맛은 담백함의 극치. 여행의 피로를 순식간에 씻어 준다.
글·사진 트래비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찬 삼척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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