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도 12월이 됐습니다. 연말 결산이나 올해의 인기 순위, 겨울방학이나 졸업/입학 맞이 제품 추천, 새해까지 더는 미룰 수는 없으니 이제는 새 걸 사자는 기획이 나오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말은 몹시 거창하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단순합니다. 저 중에 뭘 핑계로 대도 결론은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거든요. ‘근데 이제 CPU 뭐 삼?’
램값이 이렇게 흉악하게 오르는데 새 CPU를 사자는 말이 진심이냐고요? 진심입니다. 램값이 오르건 말건 필요하면 사야죠. 그리고 램값 뿐만 아니라 다른 부품들도 가격이 올랐거나, 혹은 오를 에정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으니, 이제야말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CPU가 라면이나 햇반도 아니고요. 쌀 때 사서 쟁여둔다기보다는 필요할 때 사서 쓸 수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또 램값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었으니 다른 부품에 투자할 비용은 한정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다른 부품은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골라야 합니다.
조립 PC를 사는 목적이나 용도는 제각각 이지만, 가장 큰 용도는 역시 게임입니다. 게임하는 사람들만 조립 PC를 구입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게임 성능이 조립 PC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단순 사무용이라면 뭘 써도 성능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우니 뭘 써도 상관없고요. 게임 성능이 어느 정도 받쳐 준다면 다른 성능도 어느 정도는 따라오기 마련이거든요.

한국 시장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에서도 조립 PC 시장과 CPU 인기 순위를 AMD 라이젠이 휩쓸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입니다. 게임에 최적화된 대용량 3D V 캐시를 탑재한 X3D 시리즈가 어떻게 시장을 압도하고 있는지는 설명해 봤자 입만 아프고요. 그게 아닌 일반 프로세서들도 경쟁사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이고 있거든요(라이젠 성능이 좋다기보다는 경쟁사 게임 성능이 너무 형편 없는거란 반박은 삼가해 주세요. 아무리 게임 성능이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했다지만 그런 돌직구는 너무 불쌍하잖아요). 여기에 다양한 제품으로 선택의 폭을 넓히고, 가격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인기가 높은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2025년 12월 기준으로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AMD CPU는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까요? 가격대/용도별로 정리해 봤습니다.
내가 쓰겠다면 - 메인스트림의 1황. 라이젠 5 7500F

스펙 좋고 성능 빵빵한 CPU를 제쳐놓고 라이젠 5 7500F같은 소박하기 그지 없는 CPU를 가장 위에 올려둔 게 진심이냐고 물으신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진심입니다. 최고의 CPU가 뭐냐고 묻거나, 공짜로 줄 테니 하나 골라보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라이젠 9 9950X3D나,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을 과감히 덜어내고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다면 스레드리퍼 같은 걸 불러 보겠지요. 하지만 내 돈 주고 직접 사서 소장용이나 전시용이 아니라 실사용할 CPU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라이젠 5 7500F를 살 것입니다.
라이젠 5 7500F를 고르는 첫 번째 이유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현재 가격 기준으로 21만 원에 살 수 있거든요. 4코어 CPU가 멸종한 거나 다름 없는 지금, 이 정도면 6코어 프로세서의 최저가에 가깝습니다. 이보다 더 저렴한 모델인 라이젠 5 7400F도 있긴 한데, 7400F는 출시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7500F랑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요. 제가 아무리 모든 AMD CPU는 다 좋다고 주장할 사람이라고는 해도, 현 시점에서 저 정도 가격 차이라면 라이젠 5 7500F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보급형 시장의 강자인 AM4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CPU만의 경쟁력은 AM5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AM4 소켓의 6코어 제품군은 라이젠 5 7500F랑 비슷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AM4 소켓 메인보드나 DDR4 메모리가 아까워서라면 몰라도, CPU가 지닌 성능이나 AM5 소켓이 제공하는 앞으로 호환성까지 감안한다면 라이젠 5 7500F의 경쟁력이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램 값은 차이가 나긴 하지만, DDR5 뿐만 아니라 DDR4도 정신 나간 수준으로 오른 건 마찬가지라서요. 램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말은 어느 플랫폼이건 피할 수가 없지요.

라이젠 5 7500F와 코어 i5-14400F의 성능 비교 https://gigglehd.com/gg/16154337
라이젠 5 7500F가 단지 저렴하기만 했다면 추천 목록의 가장 위에 올려 놓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당근에서 샛디브릿지를 쓴 시스템에 적당히 SSD 하나 끼워주고 휘황찬란한 어항으로 케갈이한 물건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그걸 메인 시스템으로 쓸거냐고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겠지요. 라이젠 5 7500F가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성능을 지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이젠 5 7500F는 경쟁상대라 할 수 있는 코어 i5-14400F보다 더 높은 게임 성능을 제공하면서도 정품 멀티팩/밸류팩 기준으로 3만 원 이상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라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뛰어난 제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이젠 5 7500F는 함께 사용할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의 폭이 가장 넓은 제품이기도 합니다. 메인보드의 경우 지금 당장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A620 칩셋이 탑재된 모델을 고르면 됩니다. 그럼 대충 10만 원 선에서 해결되겠군요. 하지만 AM5 플랫폼의 끝까지 두고두고 함께 할 동반자를 구한다면 메인보드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법 합니다. 그렇다고 X870 수준으로 급을 올리는 건 너무 지나치고요. B850만 해도 차고 넘치며 B650도 A620랑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니 괜찮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래픽카드의 선택 역시 메인보드와 비슷합니다. 라이젠 5 7500F 정도면 어지간한 그래픽카드는 다 소화시킬 수 있지만, CPU는 가성비를 추구해 가장 저렴한 모델을 골랐으면서 그래픽카드는 가장 비싼 지포스 RTX 5090 같은 걸 박아둔다면 미아핑이 잔뜩 찍히겠지요. 형편 닿는 대로 아무거나 써도 되겠지만 그래픽카드도 CPU 가격대에 맞춰 사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30만 원 초반대에 구입할 수 있는 라데온 RX 7600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고, 최근에는 라데온 RX 9060 노말도 30만 원 중 후반대에 판매하고 있어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남이 쓴다면 - 신형 고성능 CPU, 라이젠 5 9600

라이젠 5 7500F에 대한 애정이 크고도 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다른 사람에게 ‘한번 잡숴보라’며 숟가락으로 떠 주겠느냐고 물어본다면 깊은 고민을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쓴다면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맞지만, 남이 쓴다면 가격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되 안전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나중에 머리 아플 일이 줄어들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쓴다면, 혹은 라이젠 5 7500F에서 좀 더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딱 10만 원만 더해서 라이젠 5 9600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라이젠 5 7500F가 부담 없이 팍팍 지를 수 있는 가격의 CPU인 건 맞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팍팍 권하기 조금 어려운 이유는 현 시점에서 명백한 구세대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아무 의심 없이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야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그런 경우에는 ‘요새 이게 완본체 시장에서 잘 나가는 CPU며, 이거 하나로 그래픽카드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서 라이젠 5 5500GT가 들어간 시스템을 권해도 됩니다. 하지만 어줍잖게 어디서 줏어 들은 건 있어가지고 ‘라이젠 7000? 그거 구형 아니냐?’라고 말할 것 같은 상대라면, 처음부터 안전하게 최신형인 라이젠 5 9600로 가는 게 맞지요.
사실 이름보다도 더 중요한 건 성능입니다. 젠4와 젠5의 아키텍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며, 그 동안 어떤 말전을 이루었는지 심도 깊은 고찰을 해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아키텍처가 한 세대 발전한 만큼, 성능 역시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산이나 작업에서는 6코어라는 체급은 변하지 않았으니 성능 역시 아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게임에서 성능 차이는 확실하기에 업그레이드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비싼 X3D까지는 아니어도 최신 아키텍처가 주는 이점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라이젠 5 7500F와 라이젠 5 9600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성능 차이가 납니다. https://gigglehd.com/gg/17972380
라이젠 5 9600 위로는 9600X가 있고, 아래로는 9500F가 있습니다. 다들 근본은 같은 젠5 6코어 프로세서고, 가격 차이도 크지 않기에 수급 상황이나 그때그때 가격에 따라서 다른 걸 골라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가격이 딱 성능에 비례하고, 시장 수요에 맞춰서 정해진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요. 9600X는 그냥 쓰면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으니 성능 설정을 이것저것 만져줘야 할 것 같고, 9500F는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가격이 안정화된 9600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 될 듯 합니다.
라이젠 5 9600에 어울리는 메인보드도 라이젠 5 7500F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보급형 칩셋을 쓴다고 해도 성능이나 확장성에서 크게 아쉬울 일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신형 아키텍처가 탑재된 30만 원대의 CPU이니 거기에 맞는 메인보드 칩셋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어떤 칩셋이건 성능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테니 A620, B650, B850 등의 제품 중에서 적당한 걸 고르면 되리라 보입니다.
그래픽카드의 경우 라이젠 5 7500F보다는 많이 욕심을 내도 됩니다. 위에 첨부한 테스트는 지포스 RTX 5080을 장착해서 진행한 것인데요. 거기에서 어지간한 그래픽카드 한 등급이 올라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성능 차이를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라이젠 5 9600에서는 최소 라데온 RX 9060 노말, 혹은 욕심을 좀 더 내서 라데온 RX 9060 XT나 그 이상 그래픽카드까지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데 다들 이거 사더라 - 하이엔드 게이밍. 라이젠 7 9800X3D, 7800X3D

여기서부터는 굳이 이 글을 보지 않아도 될 사람을 상대로 한 제품일 것 같지만, 그래도 말은 하고 넘어가야겠지요. 위에서 아무리 ‘가성비 최고 7500F’, ‘최신 아키텍처는 써야하니까 9600’ 같은 소리를 했어도 다들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바로 3D V 캐시가 탑재된 라이젠 X3D 시리즈지요. 컴퓨터 하드웨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에서 X3D는 신이며, 이를 능가하는 제품은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을 겁니다’라던가 ‘없을 거라는 걸’ 같은 식으로 돌려 말해서 일말의 여지를 남길 필요도 없습니다. 현존하는 최강의 게이밍 CPU가 라이젠 9000X3D 시리즈인 걸요.
이 글 앞 부분에서 쓴대로, 조립 PC 시장에서 게임 성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3D V 캐시를 탑재한 라이젠 X3D 시리즈는 게임에서 항상 최고의 성능을 제공했으며, 그 중에서도 라이젠 9000X3D 시리즈는 발전한 아키텍처로 가장 높은 게임 성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라이젠 9000X3D 시리즈는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CPU 시장에서 항상 높은 인기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게임을 플레이하기에 충분한 8코어 구성에 X3D를 조합한 라이젠 7 9800X3D는 현재 가장 인기가 높은 CPU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아마존 기준으로 11월 판매 매출 1, 2, 3위가 모두 라이젠 X3D고, 그 중 1위가 바로 9800X3D입니다. https://gigglehd.com/gg/18245792

라이젠 7 9800X3D의 게임 성능 https://gigglehd.com/gg/16668422
하지만 이렇게 라이젠 7 9800X3D가 게임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준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게이머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선택’이 인텔 CPU라면 오히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인텔 주식에 쎄게 물려서 이렇게라도 매출에 기여를 하고 싶다거나,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파란색인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거든요. 그러지 않고서야 게이밍 시스템에서 게임 성능이 퇴보한 코어 울트라 200 시리즈나, 언리얼 엔진의 고질적인 안정성 이슈를 안고 있는 13/14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고를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만 그 ‘다른 선택’이 라이젠 7 7800X3D인 경우가 제법 있더라고요.
이런 선택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라이젠 9 9800X3D는 비싸다->라이젠 7 7800X3D는 그보다는 싸다(구체적으로 코어 울트라 7 265K나 코어 i7-14700K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싸다)->그래도 X3D 프로세서라고 게임 성능은 뛰어나며, 게임에 따라서는 라이젠 9 9800X3D와 성능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생각의 흐름이 이렇게 이어진다면, 플레이하려는 게임이 대용량 캐시빨은 많이 받지만 아키텍처의 영향을 덜 받는 경우이거나, X3D 한번 꼭 써보고 싶었는데 9800X3D가 좀 부담된다면 7800X3D를 선택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9800X3D+9070 XT vs 7800X3D+5070 Ti의 비교 https://gigglehd.com/gg/17404336
다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라이젠 7 9800X3D의 성능이 더욱 뛰어납니다. 어느 정도로 성능이 좋냐고요? 그래픽카드 체급을 낮추고 그 대신 7800X3D를 9800X3D로 바꾸는 쪽이 더 높은 성능을 낼 정도입니다. 연산이나 작업 성능이야 아키텍처가 바뀌었으니 성능이 더 잘 나오는 건 당연하다 치더라도, 그래픽카드를 지포스 RTX 5070 Ti 대신 더 저렴한 라데온 RX 9070 XT로 바꿔도 CPU빨로 우월한 게임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라이젠 7 9800X3D는 그래픽카드를 타협하더라도 써 볼만한 CPU라는 소리지요.
라이젠 7 정도 되면 보급형 칩셋이 달린 메인보드를 쓰긴 아깝죠. 넉넉한 전원부와 확장성을 갖춘 메인보드가 필요합니다. B 시리즈만 되도 성능에는 문제 없지 않겠냐고 말한다고 해서 잡혀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X3D 프로세서가 뭡니까? 게임에 특화된 성능을 발휘하는 제품이지요. 그러니 앞으로 나올 그래픽카드까지 감안해서 PCIe 5.0 x16을 지원하는 B650E나 B850부터 시작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그래픽카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가능한 최고의 그래픽카드를 쓰는 게 CPU가 아깝지 않은 선택입니다. AMD 제품 중에서는 앞서 말한 라데온 RX 9070 XT가 가장 높은 성능을 내면서도 가성비도 뛰어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저랑 친하게 지내요 - 설명이 필요 없는 플래그쉽. 라이젠 9 9950X3D

라이젠 9 9950X3D를 사지 않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굳이 9950X3D가 필요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게임 성능만 따지고 보면 라이젠 7 9800X3D가 9950X3D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니까, 게임만 하겠다고 9950X3D를 사는 건 과소비입니다. 좀 더 강하게 말하면 돈낭비고요. 다른 하나는 돈이 없어서입니다. CPU 하나로 게임부터 작업까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백만 원에 육박하는 9950X3D가 부담되기에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그러니까 라이젠 9 9950X3D를 사는 부유한 분들을 보면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해 봅시다.
라이젠 7 7000X3D까지만 하더라도 X3D 프로세서는 ‘게임에만 몰빵’한 제품이라 게임 외에 다른 성능이 다소 떨어지는 걸 안고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젠 9000X3D 시리즈는 개선된 아키텍처와 더불어 2세대 3D V캐시 기술 덕분에 기본적인 연산 성능의 체급이 올랐고, 또 X 시리즈 못지 않은 높은 클럭을 달성했습니다. 덕분에 게임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뒤쳐지지 않는 올라운더 CPU이자, X 시리즈의 상위 모델로 취급할 수 있는 존재가 됐지요.
라이젠 9 9950X3D는 그 정점에 서 있는 CPU입니다. 최신 아키텍처인 젠5, 데스크탑 프로세서 중에서 최상급인 16코어 32스레드의 구성, 그리고 대용량 3D V 캐시까지. 그래서 작업 성능은 라이젠 9 9950X와 동급이면서도 게임에선 X3D답게 최고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또 9000X 시리즈가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다소 공격적인 설정이 이루어진 것과 달리, 9000X3D는 적정한 선에서 설정을 맞춰 두었기에 전력 사용량과 온도의 부담이 모두 적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라이젠 9 9950X3D의 연산/작업 성능은 9950X와 같지만

게임 성능은 X3D 탑재 모델답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온도와 전력 사용량은 9950X보다 낮습니다. https://gigglehd.com/gg/17195293
라이젠 9 9950X3D에 어울리는 그래픽카드가 무엇인지 굳이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걸 사야죠. 라이젠 7 9800X3D에선 라데온 RX 9070 XT가 잘 어울린다고 했지만, 9950X3D라면 최소 라데온 RX 9070 XT는 써야 하는 수준이 됩니다. 백만 원 짜리 CPU에 그 정도 대접은 해야 하겠죠.
메인보드와 칩셋도 CPU 체급에 걸맞는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가장 저렴한 A620에 꽂아도 작동은 할테고, 전원부 괜찮게 나온 B 시리즈 메인보드에 써도 성능 발휘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이젠 9 9950X3D 씩이나 쓰는 사람이 얌전하게 그래픽카드 하나, SSD 하나 정도만 메인보드에 물려둘 거라고는 생각되지가 않네요. 9950X3D를 쓴다면 게임과 방송과 편집을 시스템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전업 스트리머 같은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그렇다면 각종 주변기기를 메인보드에 가득 끼워둘테고 안정성에도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겠지요. 그래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X870이나 X870E 칩셋을 쓴 메인보드를 알아서 넣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새 미친듯이 치솟는 램값 때문에 어떻게든 돈을 아껴 보겠다며 해외 직구로 CPU를 구입하는 건 어떨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쿠폰에 프로모션을 덕지덕지 붙여 가격 오류 급을 넘어 판매자 파산각이 보이는 역대가가 뜬다면야 저부터도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요새 램값 못지 않게 환율도 정신을 놓고 올라가고 있어서 해외 구매의 가격적인 매리트가 많이 줄었고요. 힘들게 바다 건너 온 CPU가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할 때까지 아무 신이나 골라 잡아서 잘 되길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화면이 안 켜지면 내 정성이 부족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RMA나 판매자 연락을 시도해야 하는데, 이게 잘 풀리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일이 복잡하고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리고요. 중국 판매자의 경우 판매 전에는 프렌드와 브라더를 외치며 내칙 친밀감을 내세우지만, 일단 결재가 끝난 후에는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설령 초기 불량을 피해갔다 하더라도, CPU라는 물건은 어느날 갑자기 ‘나 죽을께’하고 드러 누울 수도 있는 물건인지라, 적잖은 위험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싸게 사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좋겠지만, 저처럼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컴퓨터가 안 켜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블루스크린 한 번에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사람이라면 그냥 정품 CPU를 쓰는 게 여러모로 정신 건강에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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