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가 품은 신기하고 묘한 자연을 만나러 베이터우로 향했다.
타이베이의 몽환적인 지옥, 지열곡
타이베이 시내에서 MRT 레드라인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시먼딩과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있다. 지룽강(Keelung River)과 단수이강이 교차하고, 양명산과 다툰산(datun Mountain)에 기대어 앉은 베이터우다. 산과 강, 습지, 사찰, 박물관 등이 모두 모인 ‘종합 관광지’이며, 현지인들이 주말에 가볍게 다녀오는 온천 마을로도 유명하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 풍경도 매력이다. 봄이면 산자락과 공원에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단수이 강가에서 드래곤 보트 경기가 펼쳐진다. 양명산 국립공원에 펼쳐지는 초원 지대, 새들이 모여드는 관두 네이처 파크(guandu Nature Park), 유황 연기가 자욱한 지열곡 등의 자연 풍경도 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온천 박물관, 타이완 최초의 친환경 건축 도서관인 베이터우 도서관 등도 빠트릴 수 없다.
베이터우가 처음이라면 지열곡(Thermal Valley), 베이터우 온천박물관(Hot Spring Museum), 베이터우공원(도서관), 베이터우 구 역사 박물관(Xinbeitou Historic Station), 푸싱공원 족욕탕 등 3~4시간의 일정으로 여행하는 걸 추천한다. 기점은 온천 마을의 심장부인 지열곡이다. 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 뜨거운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모습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곳을 지옥곡, 귀신 연못이라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지열곡의 온천은 옅은 옥빛을 띤 물로, 온도는 약 80~100도에 이른다. 예전에는 뜨거운 온천수에 달걀을 삶는 풍경도 흔했지만, 지금은 수질 보호와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됐다. 베이터우의 뜨끈한 물을 경험하고 싶다면 근처 온천 리조트에서 머물거나 푸싱공원 족욕탕 같은 공공시설을 활용하면 된다.
또 이곳을 특별하게 하는 건 베이터우석(Beitou Stone 또는 Hokutolite)이라 불리는 광석이다. 베이터우 온천 지역에서 발견되는 돌로, 수천 종의 광석 중 타이완 지명이 붙은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로컬이 선물한 새 생명,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지열곡에서 나와 신베이터우역 방면으로 걷다 보면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혼합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연기는 사라졌지만, 우뚝 솟은 굴뚝도 보인다. 과거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다. 지금의 베이터우 온천박물관은 한때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중목욕탕이었다. 1913년 6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이즈 온천 대중탕을 모티브로 지어졌으며, 베이터우 온천 문화의 출발점이었다. 온천 관광이 활발했을 때 유랑 악사와 게이샤가 유입됐고, 오토바이로 연주자와 바 종업원이 오가던 독특한 풍경, 베이터우식 타이완 요리의 발전 등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또 1960~1970년대에는 베이터우가 타이완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했다.
해방 이후 관할이 여럿 바뀌며 운영이 끊기자 시설은 방치됐고, 한동안 잊혀져 유적으로만 남았다. 그러다 1994년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역 문화 답사에 나선 베이터우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버려진 목욕탕을 발견해 보존을 청원했고, 1997년 2월 시 지정 사적으로 등록됐다. 1년 반 동안의 복원 작업을 거쳐 베이터우 온천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역공동체 주도로 폐건물을 박물관으로 전환한 첫 성공 사례이자 베이터우 문화 보존의 시작점이다.
2,300m2(약 695.8평), 2층 규모의 박물관에서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2층에는 다다미가 깔린 휴식 공간과 발코니가 있는데, 발코니에 서면 작은 개울과 살랑이는 나무들이 보인다. 1층에는 실제로 사용했던 대욕탕이 그대로 남아 있고, 목욕탕과 관련된 전시와 옛 사진들이 벽면을 꾸미고 있다. 이 밖에도 베이터우 지역의 발전사와 박물관 연혁을 볼 수 있는 특별전시 구역과 기념품 상점 등이 있다.
기차역에 새겨진 이야기, 베이터우 구 역사 박물관
신베이터우역 옆으로 단층짜리 목조 건축물과 오래된 기차가 덩그러니 서 있다. 단순한 모조품은 아니고, 지역의 과거를 알려 주는 이야기 창고다. 베이터우 구 역사 박물관은 ‘신베이터우’라는 지명 자체를 만든 역에서 출발한다. 1916년, 담수이선에서 갈라진 지선에 신베이터우 승강장이 놓이며 온천 마을의 관문이 됐다. 70년 넘게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던 역사는 1988년 담수이선 폐지와 함께 운행을 멈췄다. 건물은 해체돼 외지로 떠나야 했다.
시민과 도시의 긴 환수, 복원 노력 끝에 2017년 원래 위치와 가까운 치싱공원(Qixing Park)에 다시 자리 잡았다. 역사적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타이베이시 지정 고적이 됐고, 지금은 철도와 베이터우의 온천 문화를 나란히 소개하는 공간이 됐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