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화재 우려가 적고 높은 에너지 밀도로 장거리 주행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전고체 배터리가 사실은 완전 방전된 상태나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전해질을 고체화해 화재 위험을 낮추고 에너지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 SSB)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전기차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공포감을 키워 온 ‘열폭주’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전고체는 가장 안전하고 장거리 주행에 유리한 ‘게임 체인저’ 기술로 부상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배터리 산업과 학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낙관론에 대한 경계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고체가 기존 리튬이온보다 이론상 넓은 안전 영역을 확보할 가능성은 있으나 열폭주와 내부 단락 위험을 완전히 제거한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고체 역시 고에너지 전기화학 시스템으로서 리튬 금속의 높은 반응성을 피할 수 없다. 산소가 없어도 양극과 반응해 극단적 고열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 과정은 완전 방전된 상태에서도 발생 가능해 위험성이 남아 있다.
또 고체 전해질 적용만으로 수지상(dendrite)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체 전해질 내부 미세 균열이나 결정립 경계면을 따라 수지상이 성장할 수 있으며 이는 내부 단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의 고에너지화를 위해 채택되는 고니켈 양극·실리콘 음극 조합 역시 열적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전고체 개발 경쟁은 오히려 가속되고 있다. 중국 주요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는 물론 일본 도요타 등도 2026~2027년을 전후해 파일럿 생산과 실차 적용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350Wh/kg 이상 고밀도 셀 양산 계획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양산 일정이 과도하게 앞당겨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생산 공정 난제, 안전 검증 체계 미흡, 소재 공급망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실제 양산 시점은 2030년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또 전고체 배터리 기술 노선 개편이 향후 양산 속도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때 유력 기술로 여겨졌던 황화물계 전해질은 높은 이온전도도 장점에도 불구하고 수분 민감성, 비용, 제조 공정 난이도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반면 산화물 및 고분자 기반 전해질은 상대적으로 공정 안정성과 양산 적합성이 부각되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고체 시장이 어느 기술 노선을 중심으로 재편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논쟁의 초점을 ‘전고체가 액체를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라 ‘용도별 최적 배터리 시스템은 무엇인가’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에너지 밀도·장거리 주행·높은 열 안정성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전고체의 장점이 유효하겠지만 비용 효율성과 생산성이 요구되는 시장에서는 액체 혹은 반고체 배터리가 여전히 경쟁력을 가진다는 분석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동화 시대의 핵심 기술 후보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절대적 안전을 당연시하거나 일정 단축을 우선하는 경쟁 구도는 위험하다. 냉정한 실험 데이터 축적, 표준화된 안전 인증 체계 구축, 소재·전극 구조 설계 개선, 열 관리 강화, 수지상 억제 기술 확보 등 근본적 안전 확보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전고체 배터리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는, 기술 실증과 안전성 검증이 산업 확산 속도보다 먼저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