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라는 세계
스페인 카탈루냐는 ‘가우디’라는 세계의 입구다. 그 문턱을 넘어, 그의 건축 세계로 들어가 봤다.
*2026년은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서거 100주년을 맞는 해다. 기념비적인 해이니만큼 연중 다양한 이벤트가 카탈루냐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 여기에 바르셀로나는 UNESCO-UIA가 선정한 ‘2026 세계 건축 수도’로 이름을 올리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 무대가 될 것임을 알렸다. <트래비>가 카탈루냐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우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생을 건 실험실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바르셀로나를 찾는 수많은 여행객들의 로망. 그 한가운데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다. 단순히 ‘가우디의 건축물’이라고 표현해 버리자니, 성당의 의미가 너무도 깊어 죄스럽(기까지 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에게 ‘작품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통째로 실현하려는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외부 파사드에서는 신앙의 이야기를 조각과 빛으로 표현했고, 내부에서는 자연의 구조를 닮은 기둥과 천장을 통해 하중과 공간, 감각의 관계를 실험했다.
건축과 장식,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질서로 작동하는지를 이 한 건물 안에서 끝까지 시험한 것. 실제로 그는 1914년부터 죽을 때까지 다른 일을 거의 내려놓고 성당에만 전념했을 정도로 이 프로젝트를 인생의 결론처럼 밀어붙였다. 본인 생전에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가우디의 사유가 가장 농도 짙게 응축된 공간, 그리고 후대가 이어 완성해 온 그의 실험실은 2026년 6월, 마침내 중앙 예수탑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에디터의 한마디
“중앙 예수탑이 완공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전망이다. 다만 완전한 완공은 아니고, ‘최최최종본’은 2036년 즈음으로 예상된다고.”
가우디의 캔버스
카사 밀라 Casa Milà-La Pedrera
이른 아침부터 건물 앞에는 깃발이 펄럭인다. 귀에는 수신기, 손에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이른바 ‘가우디 패키지 투어’ 참가자들이다. 그들의 액정에 가장 많이 담기는 건 파도처럼 물결치는 베이지색의 석재 곡선. 외관부터 가우디의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 이곳은 그의 실험적 캔버스, 카사 밀라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유기적 형태는, 자연의 흐름을 붓 삼아 건축의 질서를 그려 낸 가우디 세계관의 핵심이다. 내부 역시 관습에서 벗어난다. 하중을 벽이 아닌 기둥과 구조체가 지탱하는 자립 구조 덕분에 평면은 유연하게 열리고, 두 개의 중정과 굴곡진 공간은 빛과 공기의 흐름을 극대화한다. 특히 중정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타원형으로 프레임에 담기며 독특한 구도가 완성된다. 참, 루프톱은 숨겨진 사그라다 파밀리아 뷰 명소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카사 밀라의 입장료는 전혀 아깝지 않다.
에디터의 한마디
“놀라운 사실 하나. 카사 밀라에는 지금도 실제로 거주자가 살고 있다. 관광객의 동선과는 완전히 분리된, 거주자만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 역시 건물 어딘가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화려한 데뷔작
카사 비센스 Casa Vicens
누구나 첫 시작은 미숙하기 마련이지만, 가우디의 데뷔작만큼은 예외다. 카사 비센스는 가우디가 건축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 완성한 작품으로, 의뢰를 받아 전 과정을 주도한 첫 실제 건축물이다. 근데 이 출발점…, 놀라울 만큼 화려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카사 비센스는 애초에 거주가 아닌 ‘휴식’을 위한 여름 별장이었기 때문이다.
휴가지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는 통풍을 고려한 구조, 화려한 광택 타일, 반복되는 식물 문양 장식 등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외벽을 장식한 금잔화 타일이 특히 눈길을 끄는데, 당시 집 주변에 실제로 피어 있던 금잔화에서 착안했다고. 자연을 관찰하고 이를 곧바로 건축 언어로 옮겨 심으려 했던 가우디의 초기 시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요소다.
에디터의 한마디
“카사 비센스의 실내는 전기 설비보다 햇빛을 믿고 설계된 공간이다. 카탈루냐의 여름은 해가 늦게까지 지지 않기 때문에 딱히 조명을 켤 필요가 없었다는 게 현장 가이드의 설명.”
가우디식 문법의 원형
팔라우 구엘 Palau Güell
가우디 세계관을 초기 버전으로 압축해 둔 샘플이 있다면, 그게 바로 팔라우 구엘이다. 그의 평생 후원자였던 ‘에우세비 구엘’의 의뢰로 지어진 도시 저택으로, 이때부터 가우디가 일관되게 보여 주는 태도가 분명해진다. 건축, 장식, 동선, 빛을 따로 놀게 두지 않고 하나의 세계로 통합하는 것.
건물의 핵심은 중앙 홀(대연회 공간)이다. 위로 치솟는 공간감과 돔형 채광 장치를 통해 빛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공간을 조각하는데, 가우디가 훗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완성할 ‘빛의 건축’이 이미 여기서 시작된다. 가우디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화려함보단 설계의 원형을 보여 주는 이 저택을 놓치지 말 것.
에디터의 한마디
“솔직히 외관은 화려하지 않다. 심지어 가우디의 건축물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이들도 있을 정도. 그러나 놓치면 크게 후회할, 진정한 숨은 명소라고 자신한다.”
가우디 세계관의 확장판
구엘 공원 Parc Güell
가우디는 건축가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건축했던 사람인가. 그 ‘무엇’을 벽과 지붕이 있는 건물 정도로 생각해 왔다면, 공원을 마주하는 순간 십중팔구 놀라게 될 것. 가우디 세계관이 건물의 바깥으로 확장된 ‘결정판’이 바로 구엘 공원이기 때문이다. 원래 정원도시형 주거 단지로 기획된 이곳에서 가우디가 설계한 건 집 몇 채가 아니라, 땅의 곡선, 사람의 동선, 배수 시스템, 광장과 벤치까지였다.
언덕의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고가 산책로는 언덕의 일부처럼 자연스레 이어지고, 빗물을 기둥 속으로 흘려보내는 자연 배수 시스템은 설비이면서 동시에 풍경이 된다. 사람의 몸선을 따라 휘어진 세르펜타인 벤치와 그 아래 광장을 떠받치는 기둥 홀 역시 걷고 쉬며 머무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쓰인다.
이른 아침이면 산책로 사이로 지역 주민들이 조깅하고, 한낮에는 곡선형 벤치에 몸을 맡긴 관광객들이 다리를 주무르며 숨을 고른다. 아마 가우디가 직접 봤다면, 적잖이 흐뭇해했을 풍경들이다.
에디터의 한마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이어 바르셀로나 인기 명소 2인자에 빛나는 곳. 그래서 찍어 놓은 인증숏마다 배경에 누군가가 걸리기 일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아침 오픈런은 이럴 때 하는 것.”
기술보단 감각으로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
가우디의 초기 작품들이 그의 개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카사 바트요는 훨씬 자연스럽다. 그의 생각이 기술로 튀어나오기보다 감각으로 스며드는 단계랄까. 예컨대 이런 식. 중앙 채광정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타일 색을 짙게 배치해, 자연광의 강도가 층마다 달라 보이도록 시각적으로 조율했다. 창의 개폐 방식과 환기 구조 역시 공기의 흐름을 계산해 설계됐다. 특별한 장치를 인식하지 않아도 공간 자체가 자연스럽게 숨 쉬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완성도는 카사 바트요가 바트요 가문의 ‘집’, 그러니까 성당이나 공공 건물이 아닌 사람이 실제로 살던 생활 공간이었기에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장엄한 상징 대신 일상의 감각 속에서 작동하는 건축. 가우디라는 세계가 가장 부드럽고 밀도 높게 구현된 장면이다.
에디터의 한마디
“가능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골드’ 티켓으로 끊을 것. 볼거리가 훨씬 더 풍성하고, 바트요 가문의 프라이빗 룸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업그레이드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연의 법칙을 시험한 교회
콜로니아 구엘 교회 Cripta de la Colònia Güell
가우디의 또 다른 미완성작. 1898년, 후원자 구엘의 의뢰로 시작됐지만, 1914년 무렵 구엘 가문의 재정 악화로 자금 지원이 중단되며 지하 성당(크립트)까지만 완성된 채 공사가 멈췄다. 비록 미완성에 그쳤지만, 여긴 자연의 법칙을 구조로 번역하려는 가우디의 실험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소다.
기둥은 수직이 아니라 힘의 흐름에 맞춰 기울어 있고, 곡선과 사선 구조는 하중이 나무처럼 땅으로 흘러가도록 설계됐다. 카탈루냐 가로차 화산지대에서 가져온 현무암을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기둥에 사용했고, 색채 역시 아래는 갈색, 중간은 초록, 위는 파랑으로 이어지며 땅에서 숲, 하늘로 이어지는 자연의 층위를 연상시킨다. ‘자연의 법칙이 곧 구조’라는 가우디의 이러한 신념은, 훗날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이어진다.
에디터의 한마디
“교회 관람 후 동네 산책은 필수! 카 레스피날(Ca l’Espinal)을 비롯해 모더니즘 건축이 곳곳에 숨어 있고, 조용하고 한적해 슬렁슬렁 걷기에도 딱 좋다.”
가장 이질적인 집
베예스가드 저택 Torre Bellesguard
가우디 작품 중에서 가장 낯설고도 역사적인 주택. 중세 아라곤 왕 마르틴 1세의 성터였는데, 가우디는 이 역사를 숨기지 않고 고딕적 직선과 성곽 같은 실루엣으로 대놓고 드러냈다.
곡선이 휘몰아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여기서는 ‘직선’이 주인공이다. 화려한 표현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기를 지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하기 전 구조와 역사에 집중하던 때의 결과물. 자연보다 역사에, 장식보다 맥락에 방점을 찍은, 가우디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카탈루냐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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