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바깥의 가우디
바르셀로나 도심이 가우디의 정면이라면, 도심 밖의 카탈루냐는 가우디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세계다. 레우스와 리우돔스에서는 그의 뿌리와 유년 시절의 감각을, 몬세라트에서는 자연이 주도하는 신앙의 질서를, 포블라 데 릴렛에서는 풍경과 건축이 결합된 세계관의 확장을 읽을 수 있다. 바르셀로나 바깥의 이 4곳은 ‘건축가 가우디’를 넘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가우디를 가장 입체적으로 만나는 지름길이다.
■레우스 Reus
레우스의 중심
메르카달 광장 Plaça del Mercadal
레우스의 중심이자, 도시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곳. 중세부터 시장이 열리던 장소로, 지금도 카페와 상점, 시청 건물이 주변을 채우며 생활의 흐름을 이어 간다. 화려한 건축물보단 사람들의 동선과 체류, 발걸음의 온도와 오가는 대화의 기척이 먼저 보이는 공간.
가우디가 세례받은 그곳
산트 페레 프리오랄 교회
Prioral de Sant Pere
레우스에서 가우디의 삶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장소를 꼽으라면 여기다. 1852년, 가우디가 세례받은 교회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레우스 시절의 종교적 경험은 이후 그의 세계관 깊숙이 스며들어, 건축 전반에 반복되는 신앙의 언어로 남았다. 코앞에서 보는 것보단 한 발짝 떨어져 골목 사이에서 바라볼 때 존재감이 더 또렷해지는 곳.
가우디를 이해하는 첫 페이지
가우디 박물관 & 관광 안내소
Gaudí Museum & Tourist Office
가우디의 삶을 훌륭하게 정리해 둔 장소. 그의 생애와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내 그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차분히 알려 준다. 어린 시절의 환경과 가족사, 신앙을 거쳐 건축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흐름을 부담 없이 따라가 보자. 레우스를 여행하기 전에 먼저 들러 가우디에 대한 기본 스케치를 완성해 두면 더욱 좋다.
레우스에서 가장 화려한 집
카사 나바스 Casa Navàs
가우디의 고향 레우스는 대체로 소박하고 담백한 동네지만, 카사 나바스만은 예외다. 가우디의 동시대 건축가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1908년에 완성한 주택인데, 화려함이 상상 초월 수준. 외관 석조 장식부터 내부를 채운 스테인드글라스와 가구, 타일에 이르기까지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예술적 미학이 총집합된 느낌이다. 내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당시 큰 창을 통해 집 안의 풍경이 거리 쪽에서 그대로 들여다보였단다. 상류층이 건축으로 부유함을 과시하던 방식, 일종의 1900년대식 SNS인 셈이다.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가우디 생가 Casa Natal d´Antoni Gaudí
평범한 집처럼 보이지만, 1852년에 가우디가 태어난 자리가 바로 여기다. 현재는 개인 주택으로 사용 중이라 내부 관람은 불가. 감상은 외관으로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위대한 건축가의 출발선 앞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굳이 이곳을 찾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한 끼로 즐기는 레우스
베르무트 박물관 레스토랑
Restaurant del Museu del Vermut
레우스에서 지중해 및 카탈루냐 전통 요리와 타파스를 맛보고 싶다면 지도 앱에 저장해 둬야 할 레스토랑. 모든 메뉴가 기대 이상인데, 특히 브라바스(매콤한 스페인식 감자튀김)와 오징어 볶음 요리가 훌륭하다. 베르무트 박물관과 결합된 공간이라 식사 후 자연스럽게 관람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짜기에도 좋다.
가우디의 또 다른 고향
리우돔스 Riudoms
리우돔스는 가우디의 공식적인 출생지는 아니지만, 그의 유년 시절을 형성한 또 하나의 고향 같은 곳이다. 가우디 가문이 대대로 거주하던 농가인 카사 파이라르 가우디(Casa Pairal Gaudí)는 리우돔스에서 꼭 들러 봐야 할 장소 중 하나. 집 안에는 가족의 생활 공간과 함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하던 구리 공방이 복원돼 있다. 그의 방과 생활 공간은 가톨릭 가정답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이곳까진 이동이 쉽지 않았던 만큼, 한번 내려오면 비교적 오래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고. 현재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되며, 조만간 오디오 가이드 도입도 예고돼 있다.
중세 수도원의 깊이
산타 마리아 데 포블레트 수도원
Monestir de Santa Maria de Poblet
12세기 초에 씨스터시안(Cistercian, 가톨릭 수도회 중 하나) 수도승들이 세운 유서 깊은 수도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탈루냐의 대표적인 종교 건축이다. 아라곤 왕실의 묘소를 비롯해 교회와 회랑, 수도사 공간 등이 잘 보존돼 있으며, 현재도 약 47명의 수도승이 공동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가우디는 당시 폐허 상태였던 수도원의 복원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를 바탕으로 평면도 제안안을 설계했다. 레우스에서는 차로 약 40분 정도면 닿는다.
■몬세라트
Montserrat
자연 안에 들어온 신앙
몬세라트 수도원 Abadia de Montserrat
바르셀로나 근교 여행지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몬세라트 수도원. 그런데 여긴 사실 관광 명소이기 이전에,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지닌 장소다. 그가 직접 설계한 건물은 없지만, 그의 사유를 떠받친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가우디는 평생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몬세라트는 당시에도 지금도 카탈루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중심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대표되는 그의 후기 건축을 보면 신앙과 자연을 하나의 질서로 묶으려는 시도가 뚜렷한데, 몬세라트는 그가 건축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상태가 이미 풍경으로 완성돼 있는 장소다.
인공적으로 다듬지 않은 기암괴석 산 위에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리하는 수도원. 자연이 공간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신앙이 그 안에 끼워 넣어진 구조. 말하자면, 자연 자체가 신앙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검은 성모상, 몬세라트 소년 성가대, 수도원에서 도보 약 20분이면 닿는 검은 십자가 트레킹 코스까지. 반나절 이상의 투자도 아깝지 않으니, 최대한 여유를 갖고 돌아보기를 추천.
■포블라 데 릴렛
Pobla de Lillet
구엘 공원 이전의 가우디
아르티가스 정원 Jardins Artigas
바르셀로나 북쪽에 위치한 포블라 데 릴렛은 가우디가 건축을 ‘자연 속에 놓는 법’을 완전히 체득한 단계가 드러나는 지역이다. 섬유 공장주 아르티가스 가문의 초대로 머무는 동안 설계한 아르티가스 정원이 대표적인 예다. 자연 지형을 거의 건드리지 않은 채 완성된 산책형 정원으로, 가우디가 자연 속에서 실험한 소규모 프로젝트라고 이해하면 쉽다. 구엘 공원이 완성된 무대라면, 아르티가스 정원은 자연과 대화하며 사유를 다듬던 리허설 공간에 가깝다.
광산 기술자들의 숙소
샬레 델 카트야라스 Xalet del Catllaràs
구엘 계열 광산의 기술자 숙소로 설계된 산악 샬레. 산속에서 실험한 가우디의 거주 건축으로, 장식보다 혹독한 자연 환경에 대응하는 구조를 먼저 고민한 결과물이다. 급경사를 따라 낮고 단단하게 앉힌 형태와 최소한의 장식, 기능 위주의 공간 구성은 ‘보여 주기’보다 ‘버티기’를 택한 선택이었다. 현재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며 외관만 볼 수 있다. 접근성 역시 높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는 스폿이기도 하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카탈루냐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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