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행한 벤츠 전기차 화재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보상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장.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는 차량에 탑재된 파라시스 배터리를 CATL 제품인 것처럼 속여 전기차를 판 것으로 드러나났다.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메르세데스 벤츠에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 가운데 '위계에 의한 부당한 고객유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11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벤츠 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까지 결정했다.
2024년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한 이후 진행된 조사 과정에서 벤츠 코리아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제조사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데 따른 조치다.
공정위에 따르면 벤츠 코리아는 전기차 EQE와 EQS 일부 모델에 중국 파라시스(Farasis) 배터리 셀이 탑재됐음을 알고도 이를 누락·은폐하고 마치 CATL 배터리가 탑재된 것처럼 판매를 유도했다. 한편으로 벤츠 코리아는 전기차 출시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는 벤츠가 지분 투자까지 하며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 업체다. 그러나 당시 국내 시장에서는 사실상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다. 만약 벤츠 전기차에 파라시스라는 생소한 배터리가 탑재됐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사전에 알았다면 상당수 구매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벤츠 역시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독일 본사로부터 배터리 셀 관련 정보를 이미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사실을 판매 지침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한 이유다. 그 대신 전기차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한 것처럼 설명하도록 판매 전략을 설계했다.
실제 딜러에게 배포된 판매 지침에는 차량에 탑재되지도 않은 CATL 배터리의 세계 1위 점유율과 기술력을 강조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CATL이 아닌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도 전혀 다른 방향의 설명을 지시한 것이다.
딜러들은 이 지침을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했고 소비자들은 이를 믿고 차량을 구매했다.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가 배터리 자체의 결함 때문이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더 큰 문제는 세계 최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자처해 온 벤츠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제조사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차량을 판매했다는 사실이다.
전기차 시대에 배터리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다. 주행거리와 성능은 물론 화재 안전성까지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다. 벤츠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판매 지침에서는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불안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정보 자체를 숨겨버린 셈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차량은 약 3000대 판매됐고 판매 금액은 약 2810억 원에 달했다. 소비자가 알았다면 구매 결정을 달리했을 가능성이 높은 정보를 숨긴 채 거둔 사실상 사기 영업으로 거둔 매출이다.
벤츠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수입차 브랜드다. 그만큼 시장에서의 책임도 크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과징금이나 벌금이 아니다. 신뢰의 붕괴다.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프리미엄의 가치는 단순히 성능이나 브랜드 이미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가 믿고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위에서만 존재한다. 벤츠가 한국 시장에서 쌓아온 프리미엄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도 있다. 벤츠 코리아가 본사의 지침을 알고도 국내 판매를 위해 의도적으로 파라시스 배터리를 CATL로 둔갑시켰는지의 여부다. 업계에서는 벤츠 코리아가 본사 지침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을리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본사가 꼬리자르기를 한 것은 아닌지, 벤츠 코리아의 독자 결정이라면 어느 선에서 이뤄진 것인지를 밝혀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 과거의 사례처럼 책임자가 한국을 떠나버리면 책임도 묻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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