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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동아

    [정석희의 기후 에너지 인사이트] 11. 200년 전 물리학이 겨울 난방에 던지는 질문

    2026.05.26. 15:19:51
    읽음85

    [IT동아]

    태우는 문명에서 옮기는 문명으로

    겨울 아침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에는 한 가지 잊힌 사실이 숨어 있다. 그 따뜻함은 무언가를 태운 대가라는 것이다. 도시가스가 연소실에서 불꽃으로 바뀌고, 불꽃이 물을 데우고, 데워진 물이 방바닥을 흐른다. 열을 얻으려면 무언가를 태워야 한다. 이 원리는 인류가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운 이래 수만 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출처=AI로 생성한 이미지


    그런데 이 오래된 상식에 균열을 내는 발상이 에너지 전환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그것은 바로 열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옮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발상을 가장 흔하게, 가장 오래전부터 현실로 구현해온 장치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냉장고 뒤편에서, 한여름 에어컨 실외기에서 수십 년째 돌아가고 있는 히트펌프다.

    연소의 한계는 분명하다. 장작이든 석탄이든 도시가스든, 연소란 탄소를 품은 연료를 산소와 반응시켜 열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콘덴싱 보일러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밑바탕 원리는 모닥불과 같고, 결정적으로 보일러는 투입된 연료가 가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열을 만들 수 없다. 배기가스로 빠져나가는 열, 배관에서 식는 열까지 더하면 실질 효율은 100%의 벽을 넘을 수 없다. 연소라는 방식에 새겨진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히트펌프는 전혀 다른 원리로 움직인다. 영하의 겨울 공기 속에도, 차갑게 흐르는 하천 속에도, 심지어 매일 흘려보내는 하수 속에도 온도는 낮을지언정 분명히 열에너지가 들어 있다. 히트펌프는 이 미지근한 열을 끌어올려 쓸 만한 따뜻함으로 격상시킨다. 마당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듯, 흩어진 열을 퍼 올려 집 안으로 배달하는 셈이다. 이때 투입되는 전기는 열을 만드는 원료가 아니라, 두레박을 끌어올리는 힘, 즉 운반비에 가깝다.

    그래서 히트펌프의 성능은 효율이 아니라 성능계수(COP)로 표현한다. 얻은 열량을 투입한 전기로 나눈 값이다. COP가 4라면 전기 1을 써서 열 4를 얻는다는 뜻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늘날 시장의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보다 대략 3~5배가량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설명한다. 다만 오해는 금물이다. 전기 1로 열 4를 얻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다. 나머지 3은 바깥에서 끌어온 공짜 열이므로 에너지 보존 법칙은 조금도 깨지지 않았다.

    200년 전에 그려진 밑그림

    흥미로운 것은 이 발상이 결코 새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론적 출발점은 1824년, 프랑스 물리학자 사디 카르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최첨단으로 여기는 기술의 밑그림이 200년 전 물리학자의 머릿속에 이미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히트펌프의 가치는 ‘열을 퍼 올리는 능력’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퍼 올린 열을 어디로 보내고, 어디서 회수하며, 언제 저장할지를 조율하는 일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좋은 기술이라면 왜 우리 집은 아직도 가스보일러를 쓸까. 답을 찾기 전에, 이 기술의 진짜 도약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보면 흥미롭다.

    자동차가 먼저 보여준 지혜

    전기차 안에는 열을 신경 써야 할 여러 모듈이 있다. 배터리는 너무 차가워도 뜨거워도 탈이 나고, 모터는 달리는 동안 열을 뿜으며, 실내는 냉난방이 필요하다.

    과거의 전기차들은 이들이 분리된 회로로 작동해, 한쪽에서 남는 열을 버리면서 다른 쪽에서는 전기를 또 써 열을 만드는 낭비가 흔했다. 추운 날 모터에서 나온 폐열을 버리지 않고 배터리를 데우거나 실내 난방으로 돌려쓰는 통합 열관리는, 에너지 효율이 부품 하나의 성능이 아니라 ‘발생한 열을 얼마나 잘 회수하고 재배치하냐’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 원리를 도시 전체로 확장하면 풍경이 달라진다. 도시는 열을 소비하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열을 내뿜고 저장하고 다시 끌어 쓸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 공유 시스템이다. 영국 런던 이즐링턴의 ‘번힐 2’ 프로젝트는 그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지하철 터널의 후텁지근한 공기를 대형 히트펌프로 회수해 지역난방망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인근 1,350가구 남짓과 학교, 레저센터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버려지던 지하철의 더운 공기가 누군가의 거실로 환골탈태하는 셈이다.

    좋은 기술과 비싼 현실 사이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다. 이토록 영리한 기술이 왜 아직 우리 집 안방까지 들어오지 못했을까. 답은 물리학이 아니라 경제학에 있다.

    여기에 히트펌프의 역설이 있다. 사회 전체로 보면 분명 에너지를 아끼고 탄소를 줄이는 기술인데, 개별 소비자의 눈에는 비싼 초기 설치 비용과 불확실한 회수 기간이 먼저 들어온다. 기술의 합리성과 소비자의 선택 사이에 깊은 골이 패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수백 년 이어진 온돌 문화, 높은 도시가스 보급률, 전기요금 누진제라는 고유한 조건을 안고 있어, 해외의 정책과 설비를 그대로 옮겨 심을 수도 없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탄소중립은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도시 안을 흐르는 열을 얼마나 정교하게 회수하고 재배치하느냐가 진짜 관건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물이 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수와 수자원은, 더 이상 처리해서 버릴 대상이 아니라 도시가 흘려보내는 저온 열에너지의 통로일지 모른다.

    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옮기는 지혜, 버려지는 열을 다시 읽어내는 감각. 이것이 히트펌프가 21세기 에너지 전환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제 막, 발밑을 흐르는 미지근한 열을 다시 읽어내기 시작했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출처=전남대학교
    출처=전남대학교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스탠포드대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태그
    히트펌프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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