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과학 언어 속 힘, 에너지, 일률의 작은 균열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면 킬로와트시(kWh)라는 단위가 보인다. 킬로와트(kW)는 힘의 단위가 아니라 일률(power)의 단위이며, 이 일률에 사용 시간을 곱한 값이 바로 우리가 실제로 소비한 에너지량이다.
그런데 우리는 W로 표시되는 전기 송배전이나 kWh로 표시되는 전기 소모 모두 '전력(電力)'이라 부른다. 한자를 풀면 '전기의 힘'. 힘의 단위는 뉴턴(N)인데도 말이다. 힘(force), 에너지(energy), 일률(power)은 엄연히 다른 물리량인데, 우리말에서는 종종 세 개념에 모두 '력(力)'이라는 글자가 관습적으로 붙는다.
학창 시절부터 이 작은 어긋남에 주목해 필자는 과학 용어 재정립의 필요성을 느껴, 지난 5월 대한환경공학회지에 총설 논문을 발표했다. 기후, 에너지, 환경 분야에서 우리말 용어들이 물리량의 차원(dimension)을 형태소 수준에서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완적 용어 체계를 제안한 논문이다.
세 개념은 연결되어 있지만 같지 않다
물리학에서 이 세 양은 고유한 단위를 가진다. 힘은 뉴턴(N), 에너지는 줄(J), 일률은 와트(W).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힘은 물을 밀어내는 압력, 에너지는 양동이에 저장된 물의 총량, 일률은 유량과 유사하다. 이 셋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지 않다.
그런데 우리말 용어 체계를 보면, 에너지 단위(줄)를 쓰는 '원자력'과 '풍력'에도, 일률 단위(와트)를 쓰는 '전력'과 '동력'에도 똑같이 '력'이 들어간다. 한자어 '력(力)' 역시 본래 '힘' 일반을 뜻하는 광범위한 글자이기에, 일상 언어에서 energy나 power의 의미로도 쓰여왔던 것이다. 문제는 한국 물리 교육에서 ‘force = 힘 = 력(力)’이라는 관계가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전력'이나 '풍력'이 가리키는 실제 차원을 용어 표면에서 읽어내기 어려워진다는 점에 있다.
이웃 나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은 이 문제를 다르게 풀었다. 중국은 power를 '공률(功率)', 즉 '일(功)의 율(率)'로 부른다. 역학 영역이든 전기 영역이든 같은 물리량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공률'을 power로 대응한 것이다. 전기 입출력은 '전공률(电功率)', 기계 입출력은 '기계공률(机械功率)'처럼 분야를 수식어로 얹어 구분한다. 반면 한국은 역학에서는 '일률', 전기에서는 '전력'이라는 별도의 단어를 유지한다. 분야가 달라지면 같은 물리량이라는 사실이 용어에서 지워진다.
필자는 이 비교를 토대로, '전력'과 함께 학술·교육 현장에서 '전기일률' 혹은 ‘전일률’의 병행어 사용을 제안한다. '전기 분야에서의 일률(power)'이라는 뜻을 직접 담은 이 표현은, 펌프의 축동력과 모터의 입력전력이 서로 다른 단계의 같은 물리량임이 용어 표면으로 드러나 계산식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에너지 효율은 결국 출력 일률을 입력 일률로 나누는 식인데, 분자와 분모에 같은 개념어가 나타나면 개념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두자는 것
이 제안의 결론은 기존의 틀을 허무는 것이 아닌 병행 사용이다. '전력', '풍력', '원자력'은 산업과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말이고, 이를 하루아침에 교체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전기일률'/’전일률’, '바람에너지', '핵에너지' 같은 차원 투명한 보완어를 교육과 학술 문헌에서 함께 쓰자는 것이다. 이 용어들은 영어 'electrical power', 'wind energy', 'nuclear energy'와도 직접 대응돼 국제 표준 문서와의 간극을 좁혀주는 부가적 효과도 있다.
바람이 터빈 날개를 미는 것은 힘(force)이고, 그 바람이 품고 있는 것은 에너지이며, 발전기를 거쳐 전선으로 흐르는 것은 일률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 하나와 그로 인한 혼선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과학 언어가 얼마나 정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담겨 있다.
용어 표준화의 최종 결정은 국립국어원의 전문용어 표준화 절차와 학술 단체의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과 학술 문헌에서 보완어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언어의 주권은 대중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총설 논문 ‘정석희. 대한환경공학회지. 기후, 에너지 및 환경 분야에서 force, energy, power 관련 한국어 용어의 차원 정합성 검토. 2026 48(5) 118-126’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풍부하고 자세한 학술적 논의는 해당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보충자료에 보완용어에 대한 제안을 수록하였다.
글 / 정석희 전남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정석희 박사는 전남대학교 교수이자 에페트솔루션(EFET Solutions) 창업자 겸 CEO로, 미생물 전기화학 시스템 기반 그린 하폐수처리 및 에너지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 장학 지원으로 해당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지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환경 분야에서 3년 연속 스탠포드대 ‘세계 상위 2% 과학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며 기후 에너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광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리 /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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