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망 시내에서 열린 드라이버 퍼레이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드라이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팬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국제자동차연맹(FIA)과 르망 24시를 주관하는 프랑스서부자동차클럽(ACO)이 공동 운영하는 세계 내구레이스 선수권 대회 WEC(World Endurance Championship)는 단순히 가장 빠른 차를 가리는 모터스포츠가 아니다.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명문 제조사도 24시간을 버티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상상해 보라. 시속 200km에서 300km를 넘나드는 초고속 질주를 짧게는 6시간 길게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가운데 WEC의 정점에 있는 르망 24시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특히 최상위 등급인 하이퍼카 클래스는 포르쉐와 페라리, 토요타, BMW와 같은 세계 최고의 제조사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경쟁한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CLR과 닛산 GT-R LM 니스모처럼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사라진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총 길이 약 13.6km에 달하는 사르트 서킷은 일반 도로와 레이싱 트랙이 결합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장시간 풀 스로틀 주행이 가능한 뮬산 직선 구간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이 서킷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시속 300km를 넘나들며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차량의 내구성과 에너지 관리, 팀 운영 능력, 드라이버 기량을 종합적으로 검증받게 된다.
쟁쟁한 라이벌들의 리타이어 속 빛난 '데뷔전 완주'
르망 24시간 하이퍼카 클래스 출발 장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사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GMR-001이 경쟁자들과 함께 24시간의 대장정에 나서고 있다. (WEC)
그런 점에서 올해 르망 24시간은 제네시스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하이퍼카 클래스 데뷔전에서 GMR-001 하이퍼카 #19를 결승선까지 올려놓았다. 데뷔 시즌 신생 팀이 24시간 레이스를 끝까지 버텨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르망에서는 강팀들도 쉽게 완주를 장담할 수 없다. 토요타, 페라리, 캐딜락, 푸조, BMW, 알핀 등 오랜 레이스 경험을 가진 제조사들이 총출동하지만 이들조차 르망에서는 예기치 못한 고장과 사고로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도 종료 약 7시간 30분을 남겨두고 서스펜션 문제로 리타이어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17)은 물론, 우승을 노렸던 페라리(#50), BMW(#15), 캐딜락(#38) 등 쟁쟁한 경쟁차들도 24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완주에 실패했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완주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경쟁력이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지난해 LMP2 클래스에서 경험을 축적한 뒤 올해부터 차량 개발과 운영을 직접 책임지는 웍스 팀 체제로 전환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참가가 아니라 제조사의 기술력과 운영 능력을 모두 증명하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극한에서 검증된 기술력, 제네시스 고성능 라인업의 토대
석양이 내려앉은 라 사르트 서킷을 질주하는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GMR-001 하이퍼카. 극한의 내구 레이스 속에서도 안정적인 주행 성능과 내구성을 입증했다. (현대자동차)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르망은 거대한 실험실과도 같다. 일반 도로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 냉각 성능, 공력 패키지, 전자제어 시스템이 한계까지 밀어붙여진다. 수천 킬로미터 동안 축적되는 데이터는 개발실의 수많은 시뮬레이션보다 값진 자산이 된다.
앞으로 주목할 부분은 제네시스의 고성능 양산차다. 르망에서 확보한 데이터는 단순히 레이스카 성능 향상에만 쓰이지 않는다. 극한 조건에서 검증된 열관리 기술, 고부하 상태의 시스템 안정성, 차체 제어 기술은 향후 양산 모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제네시스는 그동안 럭셔리 브랜드로서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프리미엄 브랜드가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품질을 넘어 기술적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르망과 같은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는 그 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고 입증받을 수 있는 무대다.
따라서 제네시스가 이몰라와 스파에서의 완주, 그리고 르망 데뷔전 완주까지 이어진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신생 팀이 보여주기 어려운 안정성과 성장 속도를 증명한 결과다. 르망 완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몰라와 스파, 그리고 르망까지 이어진 성장의 흐름이 향후 마그마 브랜드와 고성능 양산차 개발로 어떻게 연결될지 이제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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