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훔 응용과학대와 솔라월드가 공동 개발해 2011~2012년 세계 일주 주행에 성공한 태양광 자동차 '솔라월드 그란 투리스모(SolarWorld GT). 태양광만으로 전 세계 3만km에 성공, 기네스북 기록을 세웠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태양광은 인류가 자동차의 무한 동력 에너지로 오래전부터 꿈꿔왔다. 연료를 태우지 않고 충전소에 들르지 않아도 햇빛만으로 달리는 자동차. 이상에 가까운 이 구상은 자동차 역사에서 수십 년 동안 반복돼 온 도전이었다.
태양광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1987년 호주에서 열린 월드 솔라 챌린지(World Solar Challenge)다. 제너럴모터스(GM)와 에어로바이런먼트, 휴즈가 공동 개발한 선레이서(Sunraycer)는 호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태양광 자동차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선레이서는 양산차가 아닌 실험차였다. 가볍고 낮은 차체, 극단적인 공기역학 설계, 제한된 탑승 공간은 효율을 위한 선택이었다. 햇빛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증명했지만 일반 소비자가 매일 탈 수 있는 자동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한 동력을 향한 끝없는 도전 '태양광 자동차'
1987년 제1회 호주 월드 솔라 챌린지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태양광 자동차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린 'GM 선레이서(Sunraycer)'. (GM)
이후 태양광 기술은 자동차의 주동력이 아니라 보조 장치로 방향을 틀었다. 토요타는 프리우스에 태양광 루프를 적용해 보조 전원 활용 가능성을 실험했고 현대차도 쏘나타 하이브리드 솔라루프를 통해 태양광으로 배터리를 충전해 짧은 거리지만 주행 거리를 연장하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태양광은 자동차를 직접 움직이는 동력이라기보다 배터리 방전 억제, 보조 충전, 전장 부하 감소에 가까웠다. 차량 지붕에 설치할 수 있는 패널 면적이 제한적이고 날씨와 주차 환경에 따라 발전량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에 비해 태양광으로 얻을 수 있는 전력은 여전히 작았다.
그럼에도 기술은 멈추지 않았다. 초기 태양광 자동차가 실험실과 경주용 무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고효율 태양전지, 경량 소재, 배터리 효율, 초저공기저항 설계가 결합하면서 상용화 가능성에 다시 접근하고 있다. 핵심은 태양광 발전량을 무작정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쓰는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데 있다.
일상 속 주행을 향해, '솔라월드 GT'의 세계 일주
8세대 현대차 쏘나타 하이브리드(2011년)의 지붕에 탑재된 태양광 패널 '솔라루프'. 야외 주차 시 배터리를 스스로 충전해 주행거리를 늘리고 방전을 막아주는 효과로 기대를 모았지만 효율성이 떨어져 지금은 사라졌다. (오토헤럴드 DB)
태양광 자동차로 주목받는 기업이 미국 스타트업 압테라 모터스(Aptera Motors)다. 압테라는 2005년 설립 이후 폐업과 재창업, 개발 지연을 반복한 끝에 다시 태양광 전기차 양산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샌디에이고 본사 인근 공공도로에서 검증용 시제차의 실제 주행을 시작하며 양산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압테라의 접근법은 기존 자동차와 다르다. 2인승 3륜 구조, 물방울 형태의 차체, 넓은 태양광 패널, 긴 화물 공간을 갖춘 독특한 형태다. 일반 승용차의 틀에 태양광 패널을 얹은 것이 아니라 태양광으로 의미 있는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 전체를 새로 설계했다.
하지만 완성차로 보기에는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 최근 공개된 검증용 시제차는 회생제동, 오디오, 소음·진동·불쾌감(NVH), 공조, 승차감 등에서 최종 조율이 필요한 상태다. 양산을 위해서는 인증, 품질 안정화, 공급망, 생산 자금 확보라는 더 큰 장벽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압테라의 도전에는 큰 의미가 있다. 태양광 자동차가 더 이상 전시용 실험차에 머물지 않고, 제한적이나마 일상 주행을 보조할 수 있는 이동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짧은 출퇴근 거리를 달리는 운전자라면 외부 충전 의존도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적게 쓰는' 태양광 전기차 등장
독특한 3륜 구조와 물방울 모양 차체 위에 고효율 태양광 패널을 얹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압테라(Aptera)의 태양광 전기차. (압테라)
태양광 자동차의 미래가 모든 자동차를 충전소 없이 달리게 하는 방향으로 곧장 이어지기는 어렵다. 차체 면적과 발전 효율, 기후 조건이라는 물리적 한계는 여전히 크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나 고성능 전기차처럼 에너지 소비가 큰 차종에는 태양광만으로 의미 있는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태양광 자동차의 현실적인 미래는 ‘완전한 무한 동력’이 아니라 ‘에너지 자립을 보조하는 고효율 이동 수단’에 가깝다. 선레이서가 실험의 시대를 열었다면 프리우스와 쏘나타 하이브리드 솔라루프는 보조 장치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압테라는 실주행형 태양광 전기차라는 다음 단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태양광 자동차의 성패는 햇빛을 얼마나 많이 받느냐보다 그 에너지를 얼마나 적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자동차가 가벼워지고, 공기저항이 낮아지고, 전력 소비가 줄어들수록 태양광의 가치는 커진다. 수십 년간 실패와 좌절을 반복한 태양광 자동차가 다시 도로 위로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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