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모빌리티쇼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동차가 아니었다(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올해 부산모빌리티쇼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동차가 아니었다. 관람객들의 열기는 여전했고 주요 전시장마다 긴 줄이 이어졌지만 정작 전시장을 채운 완성차 브랜드 숫자는 과거와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한때 국내외 주요 제조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차를 공개하고 미래 비전을 선보이던 부산모터쇼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단순히 부산모빌리티쇼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해석이다. 지금 세계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보다 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바로 모터쇼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네바와 프랑크푸르트, 파리, 디트로이트, 도쿄 모터쇼를 가장 중요한 무대로 여겼다. 수십억 원의 비용을 들여 화려한 부스를 만들고 콘셉트카와 신차를 공개했다. 언론은 이를 전 세계로 전달했고 소비자들은 모터쇼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모터쇼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오토헤럴드 DB)
그러나 스마트폰과 유튜브, 소셜미디어가 자동차 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제조사들은 굳이 특정 행사 날짜를 기다릴 필요가 없이 원하는 시간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온라인 공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신차 발표 영상은 수백만 명에게 즉시 전달되고 브랜드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과거 모터쇼가 독점했던 역할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이런 트렌드 속 결국 가장 먼저 무너진 곳은 제네바였다. 1905년 시작된 제네바 모터쇼는 한 세기 넘게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 무대였지만 코로나19 이후 참가 업체 감소와 비용 부담, 관람객 감소가 겹치며 회복에 실패했다. 주최 측은 지난해 사실상 행사 종료를 선언했다. 119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 권위의 모터쇼가 시대 변화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행사 장소를 뮌헨으로 옮기고 이름도 'IAA 모빌리티'로 변경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 더 이상 자동차만으로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행사 장소를 뮌헨으로 옮기고 이름도 'IAA 모빌리티'로 변경했다(오토헤럴드 DB)
오늘날 IAA에는 자동차뿐 아니라 배터리 기업과 소프트웨어 업체, 자율주행 스타트업, 마이크로 모빌리티 기업, 스마트시티 관련 기업들이 함께 참여한다. 도시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며 산업 전반의 변화를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원래 가전 전시회였던 CES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엿 볼 수 있다. 이제 자동차 기업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 가운데 하나가 된 해당 전시회에는 현대차그룹과 BMW, 메르세데스 벤츠, 소니혼다모빌리티, 퀄컴, 엔비디아 등이 한 공간에서 미래 모빌리티를 이야기한다.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더 이상 엔진 배기량이나 최고출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자율주행, 커넥티비티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 성장하는 모터쇼도 있다.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모터쇼로 이들 행사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중국 자동차 산업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BYD와 샤오미, 니오, 리오토, 샤오펑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업과 기술, 제품이 쏟아지는 시장에선 여전히 모터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 중이다.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모터쇼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바탕으로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오토헤럴드 DB)
그렇다면 부산모빌리티쇼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우선 참가 브랜드 숫자에만 집착하는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매번 행사가 끝난 뒤 "어느 브랜드가 참가하지 않았다"는 논의가 반복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제조사들이 모터쇼를 떠나는 이유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산업 구조 변화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산만이 가진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부산은 대한민국 최대 항만도시다. 세계적인 물류 허브이자 미래 해양 산업의 중심지다. 자동차 생산기지와 배터리 산업이 밀집한 동남권과도 연결돼 있다. 서울모빌리티쇼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신 자율주행 물류와 스마트 항만, 전동화 상용차, 수소 물류 시스템, 선박 전동화, 도심항공교통(UAM), 로보틱스 등 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 이동 산업을 중심에 둬야 한다. 여기에 스타트업과 소프트웨어 기업, 인공지능 기업, 배터리 업체, 통신사, 로봇 기업까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더 이상 자동차 회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오토헤럴드 DB)
자동차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더 이상 자동차 회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배터리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통신 인프라가 결합된 생태계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산모빌리티쇼가 진정한 의미의 '모빌리티쇼'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생태계를 담아내야 한다.
올해 행사에서도 BMW의 노이어 클라쎄 'iX3'와 현대차의 차세대 '아반떼', BYD '씨라이언 6 DM-i' 등 주목할 만한 신차들이 공개되며 일정 부분 존재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만으로는 향후 10년 뒤 부산모빌리티쇼의 위상을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 부산모빌리티쇼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전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미래 이동 산업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제네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프랑크푸르트는 IAA 모빌리티로 변신했으며, CES는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중심 무대로 자리 잡았다. 세계 모터쇼의 질서는 이미 재편되고 있다.
부산모빌리티쇼 역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자동차 브랜드 참가를 기다리는 전통적인 전시회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미래 이동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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