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2026 부산모빌리티쇼에서 세계 최초 공개한 '디 올 뉴 아반떼'. 토션빔 서스펜션 탑재로 '싸구려'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사람의 몸에는 300개가 넘는 관절이 있다. 손가락 끝마디부터 발목까지 모두 제 역할이 있지만 몸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축을 꼽으라면 무릎을 빼놓을 수 없다. 걷고 뛰고 방향을 바꾸는 모든 순간, 무릎은 체중의 몇 배에 이르는 하중을 받아내면서도 충격을 흡수한다. 무릎 관절이 제 기능을 잃으면 일상에서 이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 제한받게 된다.
자동차에도 그런 부품이 있다. 서스펜션이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걸러내는 역할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서스펜션의 역할과 임무는 훨씬 많다. 차체를 떠받치고 급제동 때 자세를 잡아주는 것은 물론 코너에서는 네 바퀴가 최대한 노면을 붙잡도록 만든다. 승차감과 조종 안정성, 타이어 접지력까지 모두 서스펜션의 손을 거친다.
자동차를 이야기할 때 맥퍼슨 스트럿, 더블 위시본, 멀티링크 같은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름만 놓고 보면 서열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 자동차 개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떤 구조를 선택했느냐보다 차의 성격과 무게, 차체 강성, 목표 가격에 맞춰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었느냐가 완성도를 좌우한다.
같은 멀티링크라도 세팅이 부족하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고 토션빔 역시 어떻게 조율을 했고 완성차 업체의 기술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른 주행 감각을 만들어낸다.
최근 현대차가 공개한 8세대 풀체인지 '디 올 뉴 아반떼'를 둘러싼 논란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은 후륜 토션빔(Torsion Beam Axle)을 일부 채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원가 절감', '싸구려 서스펜션'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수 년전 당시 르노삼성차가 신차 SM5를 출시하면서 벌어졌던 논란처럼 구조적 특성만으로 차량의 주행 성능을 단정 짓는 오류가 다시 벌어진 셈이다
토션빔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구조가 단순해 공간 활용이 뛰어나고 무게를 줄이기 쉬우며 내구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덕분에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 SUV에서는 실내 공간과 적재 공간을 확보하는 데 큰 장점이 있다. 제조사들이 지금도 이 방식을 꾸준히 사용하는 이유다.
(오토헤럴드 편집)
유럽 제조사들도 다르지 않다. 폭스바겐 골프는 엔트리급 모델에 토션빔을 적용해 왔고 르노 메간 R.S.는 토션빔 기반 후륜과 전용 섀시 세팅, 퍼포허브(PerfoHub) 프런트 서스펜션 등을 조합해 뛰어난 서킷 주행 성능을 입증했다. 푸조 308 역시 토션빔을 사용하면서도 날카로운 조향감과 균형 잡힌 핸들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유럽 시장에서 토션빔이 '싸구려'라는 인식을 갖지 않는 이유다.
반대로 멀티링크가 항상 정답인 것도 아니다. 구조가 복잡해지는 만큼 제조 비용과 차량 가격은 올라간다. 공간 활용에도 불리하다. 물론 고성능 모델이나 프리미엄 세단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일상 주행이 대부분인 준중형 세단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소비자에게 이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0년 넘게 수입차 하체 정비와 서스펜션 튜닝을 해온 전문가는 "일반적인 도심 주행에서는 토션빔과 멀티링크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라며 "차체 강성과 스프링, 댐퍼, 부싱까지 어떻게 조율했는지가 실제 승차감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개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싱을 개선하고 지오메트리를 최적화하는 등 차체와 서스펜션의 균형을 계속 다듬어 왔다. 토션빔이라는 구조 하나만으로 차량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준중형 세단과 소형 SUV를 살펴보면 후륜 토션빔을 사용하는 모델이 적지 않다. 아반떼 역시 토션빔을 탑재해 왔음에도 소비자들이 일상 주행에서 구조적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한 건 그만큼 완성도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은 이름으로 성능을 설명하는 부품이 아니다. 설계 철학과 세팅, 그리고 엔지니어의 경험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토션빔이든 멀티링크든 중요한 것은 차의 목적에 얼마나 잘 맞는가에 있다. 이제는 구조만 보고 우열을 가르는 오래된 편견보다 자동차가 실제로 보여주는 완성도를 먼저 살펴볼 때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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