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와 행동, 성격과 지식 등을 디지털 DNA로 저장해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영화 아카이브(Archive, 2020)는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의식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식하려는 과학자의 집념을 그린 SF 작품이다. 인간의 기억과 성격, 행동 패턴을 디지털로 저장해 기계 속에서 다시 살아가게 한다는 설정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반복된 단골 소재였다.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의 움직임과 지식, 성격, 심지어 생체 반응까지 디지털로 기록해 사후(死後)에도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존재를 이어가는 이른바 '디지털 DNA(Digital DNA)' 프로젝트가 등장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베테런스 퍼스트 포 아메리카(Veterans First for America)가 공개한 'QAIAx 4E HRR'은 양자 컴퓨팅 기반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결합해 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축적한 경험과 지식, 행동 특성을 AI가 학습해 디지털 인격체를 만들고, 이를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홀로그램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40개의 센서를 갖춘 햅틱 슈트를 활용한다. 이 슈트는 사용자의 걸음걸이와 손동작은 물론 생체 신호, 직업적 기술, 행동 습관 등을 장기간 기록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개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모사하는 '디지털 DNA 프로필'로 변환된다.
개발진은 이 프로필을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홀로그램에 이식해 사망 이후에도 가족이나 후손과 대화를 나누거나 교육, 상담, 업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족이나 기관이 신탁 또는 재단 형태로 해당 데이터를 관리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AI와 로봇이 도시 운영을 담당하는 미래 사회도 함께 제안했다. 계획에 따르면 미국 군사시설과 연방 부지를 중심으로 300개의 '마이크로시티(Microcity)'를 구축하고 AI와 자동화 시스템이 행정과 공공서비스의 약 90%를 수행하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사람은 의료 판단이나 감사, 정책 결정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만 맡는 방식이다.
개발진은 PTSD와 약물 중독,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정신·행동 건강 분야의 임상 프로그램에도 해당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군 참전용사들의 치료와 사회 복귀 지원이 우선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이 기술을 실제 구현 단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재 공개된 내용은 대부분 개념 제안 수준으로 실제로 인간의 정체성과 의식을 어느 수준까지 디지털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AI와 휴머노이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죽음 이후에도 나를 대신하는 디지털 존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을 어디까지 보존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과연 '나'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도 벌어질 수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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