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영우 기자] 프린터를 쓰다 보면 잉크나 토너를,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를 쓰다 보면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한다. 이러한 소모품 교체는 제품의 성능과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반복되는 지출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제조사가 공급하는 정품 소모품 대신, 다른 업체가 만든 호환(비정품) 소모품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호환 소모품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가격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공기청정기 호환필터의 가격은 정품 대비 30~56% 수준에 불과하다. 정품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성능과 안전을 생각하면 정품을 쓰는 편이 현명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이런 논쟁이 종종 벌어지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 논쟁의 핵심은 결국 두 가지 질문으로 좁혀진다. 정품 소모품은 그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호환품을 쓰더라도 정말 성능이나 안전에 문제가 없는가. 제조사들 역시 정품 소모품 또한 제품의 성능과 기능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며, 이를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런 논쟁을 살펴보기 좋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기청정기 필터다. 이와 관련해 최근 드러난 몇 가지 정보는 꽤 구체적인 답을 던져준다.
호환필터 20개 중 4개만 기준 충족...유해가스 제거력 '뚝'
한국소비자원이 7월 28일 공개한 '공기청정기 호환필터 품질비교' 결과를 보면 깊이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소비자원은 LG전자, 삼성전자, 위닉스, 샤오미 등 4개 브랜드 공기청정기와 호환되는 필터 20개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시험평가했다.
우선 유해가스(폼알데하이드·암모니아·아세트알데하이드·초산·톨루엔) 제거효율 시험에서는 20개 제품 중 단 4개만 관련 기준을 충족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16개 제품의 평균 제거효율은 20~63% 수준으로, 정품필터 4종의 평균 제거효율(81~100%)에 크게 못 미쳤다. 미세먼지 제거성능 역시 8개 제품만 기준을 충족했을 뿐, 나머지 12개 제품은 공기청정기 표시값 대비 68~89% 수준에 그쳤다. 정품필터 4종의 미세먼지 제거성능이 표시값 대비 102~113% 수준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 심각한 건 안전성 문제다. 20개 제품 중 2개(T사, S사)의 유해가스 제거(탈취)필터에서 함유가 금지된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이 검출됐다.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상 필터에 항균·멸균 처리를 할 경우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등의 물질이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업체들은 소비자원 권고를 받아들여 판매를 중단하고 무상 교환·환불에 나선 상태다. 유해가스·미세먼지 제거성능이 미흡했던 나머지 업체 대부분도 재질 변경이나 생산 공정 개선 계획을 소비자원에 회신했다.
브랜드까지 도용한 ‘짝퉁’ 필터까지 등장
이처럼 호환필터를 둘러싼 불안감이 커지는 사이, 아예 단순한 호환품을 넘어 브랜드 자체를 도용한 '짝퉁' 필터까지 등장했다. 지난 7월 3일 관세청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도용한 이른바 '짝퉁' 공기청정기 필터 등 6만 9000점(정품 시가 70억 원 상당)을 중국에서 밀수입해 국내에 유통한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인천공항세관은 총책을 관세법 및 상표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국내 온라인 유통에 가담한 공범 3명도 함께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세관 검사를 피하기 위해 상표를 표기하지 않은 박스에 가짜 필터를 담아 들여오거나 개인 사용 물품으로 위장해 반입한 뒤, 국내 창고에서 정품 포장 박스로 다시 포장하는 이른바 '박스갈이' 수법을 썼다. 오픈마켓에서는 소비자가 짝퉁을 의심하지 않도록 정품 대비 80~90% 가격으로 판매했고, 판매 계정이 차단되면 다른 계정으로 갈아타며 유통을 이어갔다.
문제는 가격 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압수된 가짜 필터(5개 브랜드 10종 모델)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에 의뢰해 시험한 결과, 3개 모델에서 사용이 금지된 유해물질인 CMIT와 MIT가 검출됐다. 두 물질 모두 호흡기와 피부, 눈 등에 자극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해당 제품에 대해 수입·판매 금지 및 회수 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렸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사건은 정품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단순히 형태와 기능이 비슷한 호환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정품 브랜드를 그대로 도용해 '박스갈이'까지 해가며 유통할 만큼 정품이라는 이름값 자체가 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정품 여부를 구매 기준으로 삼는 한, 이를 노린 위조품 유통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온오프라인 유통가에서 정품인 줄 알고 가짜 필터를 사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소비자를 속이려는 가짜 제품이 갈 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살 때 주의해야 한다.
"막연한 홍보 아닌 데이터로"...제조사의 정품 가치 알리기
비정품 필터의 안전성·성능 문제가 반복해서 불거지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는 가전제조사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대표적인 공기청정기 제조사인 LG전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LG전자는 지난 3월부터 자사 정품 필터의 성능과 안전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신소재 필터 'M7'을 앞세운 캠페인으로, 정품 필터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과 KOTITI 등의 검사에서 MIT·CMIT·OIT 등 살생물물질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0.01㎛ 크기의 극초미세먼지를 99.999%까지 제거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앞세우고 있다.
정품 필터를 제대로 장착하면 제품의 성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부가기능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2025년부터 출시된 LG 공기청정기는 정품 필터를 장착할 경우, 인식센서가 필터 사용량을 정확히 파악해 모바일 앱(LG 씽큐)으로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최근 가전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제품 구독 서비스와 연계해, 교체 시기에 맞춰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정품 필터로 교체해주는 LG구독 전문케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역시 필터 교체 알림 기능이 정품필터를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짚으며, 호환필터를 쓸 경우 판매처가 권장하는 별도의 교체주기를 소비자가 직접 챙겨야 한다는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다만 가전 제조사들의 과제도 남아 있다. 그동안 정품 소모품을 향한 소비자 불만의 상당 부분은 "정품이 더 좋다"는 막연한 설명뿐, 그 값이 왜 그만큼인지 납득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LG전자처럼 시험 데이터와 구체적인 수치를 앞세운 캠페인이 소비자의 판단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정품 가격에 담긴 연구개발 비용과 성능·안전성의 차이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알리는 노력이 뒤따라야, 정품과 호환품 사이의 해묵은 논쟁도 감정싸움이 아닌 데이터에 근거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가격 차이가 있는 만큼 호환 소모품의 수요가 있다는 것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조사 결과들은 '싼 게 비지떡'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숫자로 보여준다. 프린터 잉크든 정수기 필터든 공기청정기 필터든, 소모품은 제품 본연의 기능을 지탱하는 부품이다. 그 부품이 정작 제 역할을 못 하거나,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물질을 내뿜는다면 소모품을 아껴서 얻는 이득보다 잃는 게 더 클 수 있다. 결국 소모품을 고르는 기준은 눈앞의 가격이 아니라, 그것이 제품을 제대로 작동시키고 있는지 여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