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새롭게 도입한 '비상 탈출 주행(Emergency Drive Away)'. 범죄 등 위협 상황 발생 시 충전 케이블이 연결된 상태로도 주행이 가능하다. (X 캡처)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충전 케이블이 연결된 상태에서는 주행이 불가능했던 전기차의 기술적 금기가 깨졌다. 테슬라가 충전 중 총격이나 차량 탈취 등 급박한 위협에 노출됐을 때 케이블을 꽂은 채 즉각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비상 탈출 주행 기능을 전격 도입했다.
테슬라는 최신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2026.38.3)를 통해 슈퍼차저 이용 중 차량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주행(D) 모드로 전환해 탈출할 수 있는 '비상 탈출 주행(Emergency Drive Away)' 기능을 선보였다.
그동안 전기차 업계는 고전압 감전 및 충전 설비 파손 방지를 위해 충전 플러그 체결 시 구동 모터로의 동력 공급을 차단하는 '인터록(Drive Interlock)'을 필수 안전 규격으로 적용해 왔다. 그러나 충전 구역에서 발생하는 강력 범죄나 화재 등 비상 상황 시 운전자가 꼼짝없이 차량에 갇히게 되는 치명적인 안전 취약점이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번 기능 도입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8월 미국 아이다호주 트윈폴스(Twin Falls)의 인앤아웃 버거 인근 슈퍼차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이다. 당시 3명이 숨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참사 현장에서 일부 피해 차량이 충전 케이블에 묶여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참변을 당하면서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당초 일부 차주들은 충격 시 장착부가 강제로 분리되는 서드파티 어댑터 'EV젝트(EVject)' 등을 대안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테슬라는 2024년 해당 제품의 과열 위험성과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분쟁을 벌였고 관련 업체가 초기 모델을 리콜하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이에 테슬라는 외부 부품 추가 없이 소프트웨어 로직 제어만으로 근본적인 비상 탈출 방식을 구현했다.
작동 방식은 직관적이다. 충전 중 위험을 감지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주행(D) 또는 후진(R)으로 변속하면 센터 디스플레이에 차량 및 충전기 파손 위험을 알리는 '비상 탈출 주행' 경고 창이 뜬다.
운전자가 화면 속 활성화 버튼을 누르면 구동 락이 즉시 해제되며 가속 페달을 밟아 현장을 벗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결합된 커넥터는 강제로 뜯겨 나가게 된다.
비상 탈출 주행(Emergency Drive Away)' 기능은 상황 발생시 기어를 주행(D) 또는 후진(R)으로 변속하고 센터디스플레의 '비상 탈출 주행' 경고 창을 활성화하면 된다. (X 캡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만큼 적잖은 대가도 따른다. 차량의 충전 포트 및 래치 어셈블리는 물론 슈퍼차저 케이블 파손은 불가피하다. 테슬라는 고의적인 오남용을 막기 위해 기능 작동 즉시 전후측면 카메라 녹화 영상을 본사 서버로 전송하도록 설계했다.
정당한 생명 위협이 아닌 단순 조급함 등으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되면 차주에게 충전소 복구비와 막대한 수리 비용이 청구된다.
현재 이 기능은 미국 내 슈퍼차저 설비에서 우선 지원한다. 하드웨어 규격 차이로 인해 2021년 이전 생산된 구형 모델 S와 모델 X는 업데이트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편 테슬라를 제외한 대다수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여전히 충전 중 주행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현대차그룹(E-GMP)을 비롯해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폭스바겐, 포르쉐 등 주요 제조사들은 국제 표준 규격(ISO 17409 및 SAE 규격)에 따라 충전 커넥터 분리 전까지 기어 변속 자체를 물리·전자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타사 전기차 운전자는 화재나 범죄 위험에 직면하더라도 직접 차 밖으로 나와 충전을 멈추고 케이블을 분리해야만 피신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충전 인프라와 독자적인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를 수직 계열화했기 때문에 파격적인 인터록 해제가 가능했던 것"이라며 "북미 충전 표준(NACS)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충전소 내 강력 범죄 예방을 위한 긴급 탈출 프로토콜 도입 논의가 완성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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