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이 내려앉은 도로 위,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은 지친 일상과 아스팔트 전쟁터에서 마주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시동 버튼을 누르고 잠들어 있던 엔진의 숨결이 깨어나는 순간, 함께 여정을 준비해 주는 고마운 존재가 라디오다. 대부분 운전자는 뉴스를 듣고 날씨 정보를 찾아 채널을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연결해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운전은 한없이 지루하고 고단한 공간을 버텨내는 일이기도 하다. 꼬리를 무는 정체와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아스팔트 전쟁터에서 낡은 것이든 고급스러운 것이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나 음악은 운전자가 오롯이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위안이 된다.
그래서일까? 창문을 살짝 내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멜로디에 몸을 맡기면서 짧거나 길거나 소박한 ‘로드트립’을 즐기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운전대 앞에서 마주하는 음악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스즈(Isuzu UK)가 최근 영국 운전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로드트립 음악 설문 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꽤 흥미로웠다. 팝의 본고장이자 비틀스와 퀸, 오아시스의 나라인 영국 운전자들이 꼽은 ‘최고의 로드트립 앤섬(Anthem)’ 1·2위는 뜻밖에도 모두 미국 록 음악이었다.
응답자의 27%가 지목한 1위 곡은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이글스(The Eagles)의 1977년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2위 역시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1984년 히트곡 ‘본 인 더 유에스에이(Born in the USA, 24%)’가 차지했다.
주목할 부분은 설문 참여자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음악이 장거리 운전 중 졸음을 쫓고 집중력을 유지(Stay x-alert)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답했는 점이다. 지루한 운전에서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가 뇌를 적절히 자극해 나른한 졸음을 깨우는 ‘청각적 각성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 사람 중 한 명(31%)은 특정 음악을 통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정서적 안정을 얻는다고 말했다.
영국 운전자들은 의외로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운전 중 가장 많이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키피디아)
운전대 앞에서의 솔직하고 유쾌한 일상도 눈길을 끈다. 응답자의 40%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것(Belting out)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고 운전 중 노래를 부르는 횟수는 일주일에 평균 7번이나 됐다.
심지어 운전자의 33%는 혼신의 힘을 다한 자신의 ‘열정적인 열창’ 때문에 동승자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겁먹게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동반자로는 파트너(42%)나 자녀(35%)와 함께 화음을 맞출 때 가장 즐겁다고 꼽았다.
영국 운전자의 절반 이상(56%)은 “운전할 때 음악을 듣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다”고 단언한다. 또 응답자의 절반은 오직 장거리 드라이브만을 위한 전용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품고 있었고 이 리스트에 담긴 곡 수는 평균 44곡에 달했다.
우리 도로 위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꽉 막힌 올림픽대로나 시원스레 뻗은 동해고속도로를 달리는 대한민국 운전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로드트립 앤섬’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음악이 담겨져 있을까?
BTS나 리센느의 경쾌한 비트일 수도, 도로 위를 잔잔하게 물들이는 임영웅의 감성적인 보컬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복잡한 스트리밍 앱 대신 손때 묻은 다이얼로 주파수를 맞추고 DJ가 우연히 골라 틀어주는 흘러간 옛 노래와 사람 냄새 나는 사연 한 줄에 미소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온갖 첨단 기술이 가득한 스마트 시대지만 운전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는 여전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사연과 음악뿐 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하늘이 주는 선물로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사이를 구르고 있는 당신의 차 안에는 지금, 어떤 선율이 흐르고 있을까?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