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웨이모의 로보택시가 차량 진입이 전면 차단된 보행자 전용 장터에 난입하면서 자율주행차의 안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최대 이슈는 단연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완전 ‘자율주행차’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정도로 국내 관심 역시 뜨겁다.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불신과 각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천 대의 무인 로보택시가 미국과 중국에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발 늦었다며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일본은 ‘더 늦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기차 전환이 늦어지면서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겼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테슬라와 웨이모의 무인차가 도쿄 상륙을 예고하자 “일본이 또 뒤처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완성차 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 회장을 맡고 있는 사토 고지(佐藤恒治) 토요타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자율주행 기술은 충분히 자체 경쟁력을 쥐고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가 이렇게 단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이 생각하는 자율주행의 본질은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쓸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목적과 수단에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쇼맨십이 아닌 사회 모두가 '안전하다'는 신뢰로 수용하고 이동의 목적에 맞는 '일본형 자율주행'을 우선 구현하는데 있다.
일본형 자율주행을 고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광활한 격자형 직선 도로와 널찍한 차선이 즐비한 미국 실리콘밸리나 피닉스와 일본의 도로 환경은 근본부터 다르다. 일본의 도로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륜차와 소형차가 도심은 물론 비좁은 이면도로까지 뒤엉켜 달린다.
일본은 복잡한 도심 도로와 보행자와 자전거, 자동차 뒤 섞여 달리는 이면 도로의 특성에 맞춰 도로 인프라와 연계한 "일본형 자율주행'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오토헤럴드 DB)
이런 고밀도 도로망에서 카메라 몇 개와 알고리즘만으로 무인차를 굴리는 건 재앙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판단이다. 신호 체계, 고속도로 설계, ETC(전자통행료) 등 도시 인프라와 모빌리티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V2X(차량·사물 통신)·인프라 연계형 시스템’에 오랜 시간 매달려온 이유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차량 센서의 물리적 한계를 도로 인프라가 메워준다는 점이다. 고가의 라이다나 카메라 수십 개를 둘러싼 자율주행차도 건물 모퉁이나 대형 트럭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와 보행자까지 꿰뚫어 볼 수는 없다.
특히 카메라 비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테슬라 방식은 일본의 도로에서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 폴과 신호기가 사각지대 정보를 차량에 실시간으로 전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량 온보드 컴퓨터의 고비용 연산 부담을 덜어 양산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센서 오류로 인한 돌발 사고를 도로망 차원에서 이중으로 걸러낼 수 있다. 일본 특유의 좁고 복잡한 도로 환경이 갖고 있는 한계를 도로 인프라와 연계한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정부와 완성차 업계의 정책 추진 과정과 명확하게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다.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연합은 JAMA 이사회 직속으로 ‘자율주행 프로젝트팀(PT)’을 신설하고 정부 6개 부처와 민·관·학 통합 기구인 ‘ITS 저팬’을 한데 묶은 일원화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카메라 비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테슬라 FSD의 안전성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오토헤럴드 DB)
이들이 택한 전략은 영리하면서도 집요하다. 이른바 ‘협력’과 ‘경쟁’의 철저한 분업이다. 차세대 AI, 엔드투엔드(E2E) 딥러닝 모델, 복잡한 교차로 인식 같은 소프트웨어 역량은 각 사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마트 폴과 통신망을 아우르는 공공 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고 원인 조사와 피해자 지원 등 사회적 신뢰 체계 마련, 대국민 수용성 확보는 업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도록 하는 공통 협력 과제로 못을 박아 놨다.
자율주행차에 도심 전체를 무리하게 전면 개방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확고하다. 대중교통이 무너지고 병원 갈 차편이 끊긴 지방의 이동 취약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스며들게 해 데이터와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축적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프론티어 AI의 차량 해킹 위협과 소프트웨어 보안 리스크까지 사전에 걸러내 ‘교통사고 사망자 제로(Zero Fatalities)’와 ‘이동의 자유’라는 본질을 향해 2030년 상용 비즈니스를 완벽히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화려한 베타 테스트로 주가를 띄우는 실리콘밸리식 쇼맨십 그리고 속도 대신, 도로 인프라와 법 제도, 사회적 신뢰라는 단단한 콘크리트 기초 위에 자율주행을 얹겠다는 전략이다.
누가 먼저 만들었냐보다 한국의 환경에 적합한 독자적인 데이터 생태계(플라이휠)와 표준화로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오토헤럴드 DB)
일본과 도로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차도와 인도 구분조차 명확하지 않은 도로가 유독 많은 우리도 일본의 전략을 깊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나서 "왜 테슬라 FSD 승인을 늦추느냐"라고 정부를 닦달하기에 앞서 정부와 완성차, 학계와 산업계를 망라한 통합 기구를 통해 일본 못지않게 복잡한 우리의 도로 여건과 환경, 인프라에 적합한 'K-자율주행'을 고민해야 한다.
자율주행은 쇼가 아니다. 쇼가 되어서도 안 된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자율주행 개발 임원 역시 "몇 대의 차가 운전석을 비우고 달리는가를 보여주는 것은 자율주행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라"는 일본 완성차 업계 메시지를 변명으로 들어서는 안된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