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의 2026년 1월~9월 실적 비교표. 폭스바겐그룹이 영업이익에는포르쉐 영업권 손상과 중국 자산 손상 등 대규모 일회성 비용을 감안한 기저 수치가 포함되지 않았다. (오토헤럴드)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영화 '넘버 3'(감독 송능한/1997년)에서 주인공 태주는 도강파의 최고 자리를 꿈꾸는 뜨내기 깡패다. 하지만 밑바닥을 벗어나 조직의 최고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영어 공부까지 하는 열성을 보이고 내부 쿠테타에서 보스를 구해 넘버 2의 자리까지 오른다.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화하고 있다. "바퀴달린 냉장고"라는 조롱까지 받았던 현대차그룹이 토요타와 함께 세계 완성차 업계를 쥐고 흔들었던 폭스바겐그룹의 턱 밑까지 추격해 '넘버 2' 자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의 글로벌 판매 격차는 올해 1~9월 누적 기준 약 51만 대(도매 기준)로 좁혀졌다. 1년 전 110만 대 수준이었던 격차가 절반 아래로 줄었다.
3분기(7~9월)만 보면 격차가 더 좁여진다. 폭스바겐그룹은 188만 3000대, 현대차그룹은 176만 8065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39만 5000대에 달했던 격차가 약 11만 5000대 수준으로 좁혀졌다.
두 회사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진 이유는 판매 증감율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폭스바겐그룹의 1~9월 판매는 588만 대로 10.6% 줄어든 반면 현대차그룹은 536만 5498대로 2.1% 감소에 그쳤다. 폭스바겐이 두 자릿수 넘게 빠지는 사이 현대차그룹은 2%대 감소로 선방하며 격차를 대폭 좁혔다.
격차를 줄인 일등 공신은 '중국'이다. 폭스바겐그룹의 올해 1~9월 중국 판매는 137만 8800대로 30.2% 급감했다. 전체 실적의 약 23%가 중국에서 나오는 구조 탓에 그 영향이 고스란히 전사 실적으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 역시 중국 시장의 1~9월 판매가 11만 5000대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2% 줄었지만 일찌감치 발을 뺀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덕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참고로 폭스바겐그룹은 대중 브랜드인 폭스바겐과 스코다, 세아트·쿠프라는 물론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인 아우디와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그리고 만(MAN)과 스카니아 등 상용차 브랜드까지 10여 개가 넘는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집단이다.
폭스바겐 독일 오스나브뤼크 공장. 경영 실적 악화로 폭스바겐이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방산 시설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토헤럴드 DB)
더 큰 문제는 수익성 격차다. 폭스바겐그룹의 1~9월 누적 영업이익은 7100만 유로(한화 약 1000억 원)에 그쳐 전년 동기(54억 유로, 약 8조 원) 대비 무려 98% 이상 급감했다. 포르쉐 영업권 손상과 중국 자산 손상 등 대규모 일회성 비용을 감안한 기저 영업이익(88억 유로, 약 13조 원)으로 보더라도 현대차그룹(14조 6947억 원)에 미치지 못했다. 영업이익율도 3.8%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그룹은 누적 합산 영업이익 14조 6947억 원, 합산 영업이익률은 6.3%를 기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동 분쟁 여파 등으로 전년 동기(7.5%)보다는 다소 낮아졌으나 대규모 적자 위기에 몰린 폭스바겐을 수익성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기업의 영업이익은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위기 관리 능력', '미래 R&D 및 시설 투자 여력', 그리고 '주주 환원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라는 점에서 폭스바겐그룹은 향후 경영 전략에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위기에 대응하는 양사의 전략은 정반대다. 폭스바겐그룹은 생존을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월 말 기준 직원 수는 64만 8100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2.2%(약 1만 5000명) 줄었다. 독일 오스나브뤼크 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고 미국 채터누가 공장의 ID.4 생산은 중단했다.
그룹의 상징인 차세대 순수 전기 ‘ID. 골프’ 개발마저 투자 여력이 확보될 때까지 잠정 중단하는 등 경영 위기 상황이 외부로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인도 푸네 신공장을 준공했다. 연간 생산능력 17만 대로 시작해 2030년 32만 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2년까지 인도에만 총 155억 달러(약 21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기아 안드라프라데시 공장을 포함한 그룹의 인도 내 연간 총생산능력은 142만 5000대에 달한다. 다만 현대차는 거시경제 불확실성을 반영해 올해 연간 판매 목표를 400만 대로 낮추고 자동차 부문 연간 투자 계획도 16조 원으로 현실화하며 내실 다지기를 병행하고 있다.
남은 4분기 양사의 격차는 더 좁혀질 공산이 크다. 지난해 4분기 판매 격차는 약 64만 5000대였다. 올해 4분기는 폭스바겐의 분기 판매가 5~15% 감소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현대차그룹이 조정된 연간 목표를 달성한다고 봤을 때 4분기 격차는 10만~35만 대 수준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판매 추이와 구조조정 속도가 이어질 경우, 20207년에는 분기 판매량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의 폭스바겐을 제치고 '넘버 2'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 나아가 2028년에는 연간 누계 판매 기준에서도 폭스바겐그룹과의 역전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토요타에 이어 글로벌 완성차 ‘빅2’ 자리를 꿰차는 것이 이제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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