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소아정신과에 내원한 부모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녀에게 일찍부터 많은 증상들이 발견되었는데도 병원에 가는 것을 긴 시간 동안 미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TV나 인터넷, 혹은 도서 등에서 접한 일부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느꼈었다고 합니다. 평소 자녀의 적응을 저해하는 문제들이 다수 발견됐지만 특정 행동을 보이지 않으니, 혹은 특정 행동은 보일 수 있으니 괜찮다고 여겨왔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심리적 약점이기도 합니다. 객관적인 지표들이 충분히 관찰되고 있지만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주 작은 구멍을 찾아서라도 문제를 빠져나가고 회피하고자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문제 대응은 당장은 마음이 편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 예상할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문제를 키울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이들의 정서, 행동적 문제에 대해 흔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아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빠른 치료적, 예방적 개입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자 합니다.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으면 ADHD가 아니다?
ADHD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주어진 과제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산만하고 부산스럽거나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여 부가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 진단하게 됩니다.
ADHD에 대한 오해 중 대표적인 것은 첫째, ADHD인 아이들은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ADHD인 아이들은 모두 충동적이고 산만하다는 것입니다.
ADHD인 아이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몰두하고 긴 시간 동안 집중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과 같이 지루한 활동을 싫어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레고, 보드 게임 같이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놀이 활동이나 과학 도서, 만화책과 같이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도서에는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시간 이상 조용히 앉아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지표 삼아 주의력이나 과잉 행동의 문제를 배제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또 모든 ADHD인 아이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과잉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조용한 ADHD 혹은 AD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아이들은 눈에 띄는 과잉 행동은 없지만 평소에도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이리저리 주의가 분산되어 과제를 주어진 시간 내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물이 그리 좋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행동 문제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주의력으로 인해 학습이나 일상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경우 주의력 문제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지적 장애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장애다?
지적 장애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애이고 많은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한두 번씩은 만나보기 때문에 대략적인 인상을 알고 있는 편입니다. 다소 순박하고 미성숙하며, 엉뚱한 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모든 지적 장애는 증상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적 장애는 지능지수가 70 미만에 사회적인 적응 능력이 부족할 경우 진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 지능지수에 따라 적응 양상이 상이하게 관찰됩니다. 특히 70에 가까운 경도의 지적 장애나 70~79 정도의 경계선 수준에 있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들로 하여금 학습에 관심이 없고 발달이 느린 편이라는 느낌을 줄 뿐 지적 장애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또래들과 비슷하게 자조(自助) 기술을 배우고 연령에 기대되는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가벼운 지적 장애는 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드러나는데, 아이가 숫자나 한글을 배우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복잡한 지문이나 낯선 과제는 잘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기초 학습에 어려움이 있고 그로 인해 부모와 갈등이 빈번할 경우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아이의 지적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고 끈기가 없다고 질책만 한다면 아이 스스로도 답답한 마음을 느끼며 위축되기 쉽고,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습니다.
소아 · 청소년의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으로 관찰된다?
어린이도 타고난 기질적 성향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기분 장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의 기분 장애는 성인과 그 양상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특히 성인 우울증과 같이 뚜렷하게 울적한 기분이나 무기력한 행동으로 관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갑작스럽게 짜증이나 화를 내고, 수면이 지나치게 짧거나 많아지며, 식욕이 급격히 줄거나 늘어나기도 합니다. 또 이전과 다르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갈등이 빈번해지거나 성적도 눈에 띄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린이에게서 이전과 다른 행동이 뚜렷하게, 또 지속적으로 관찰된다면 단순한 사춘기로 치부하지 말고 기분 장애를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부모 때문에 생기는 장애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장애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부모의 양육 행동에 따라 증상의 정도가 영향을 받을 수는 있더라도 완전히 양육 행동에 의해 장애가 발생하거나 완치될 수는 없습니다.
양육 행동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성 발달 부진으로는 '반응성 애착 장애'가 있습니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유사하게 사회적인 반응성이 좋지 않고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장애입니다. 하지만 반응성 애착 장애는 현대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반응성 애착 장애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방임이나 학대 수준의 극심한 양육의 박탈이 있어야 하며, 그 정도의 아주 해로운 양육 행동이 있어야만 사회적 반응성의 손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보호자가 산후 우울증을 겪어서, 혹은 시댁과 갈등이 많아서, 아니면 직장에 다니느라 잘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정도로 자녀에게 소홀했다고 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처럼 사회적 능력 손상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자녀가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다른 정서적 문제를 겪을 수는 있겠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발생한다고 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직접적인 유전적 소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유전자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어떤 요인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되어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임신해 있는 동안 무언가 실수를 해서, 혹은 남편의 유전자가 좋지 않아서 등 불필요한 고민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보일 수 있는 정서 행동 문제들은 그 증상 자체가 모호하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 등에 따라 또 각양각색으로 관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ADHD 진단을 받더라도 극심하게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낙천적이고 충동적인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증상의 유무를 판단하기 보다 아이가 이전과 다르게 큰 변화를 보이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는 등 적응상 어려움을 보일 경우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와 의논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방수호 기자/bsh2503@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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