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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온라인 게임의 보드게임화(판이나 카드를 가지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게임)는 이미 유저들에게 있어 친숙한 것이 되었다. 유희왕의 성공 때문인지 유독 TCG에 편향된 경향을 보이고는 있지만, 어찌 되었든 심심치 않게 게임 기반의 보드게임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이하 보드게임)'은 미국산으로 2007년도에 발매된 게임이지만, 지난 6월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원작의 국내 인기와 인지도를 감안, 한글화하여 정식 발매했다는 점에서 인기 온라인 게임의 보드게임화와 같은 형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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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크고 아름다운(?) 패키지 |
■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 출시 |
단순한 보드게임이 아니다
필자는 본 게임을 리뷰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으로 게임 룰을 파악하기 위해 만만해 보이는 두께의 설명서를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만만하다고 느낀 것도 잠시, 약 이틀 정도를 정독하고 나서야 드디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스타 보드게임은 최소 1:1에서 최대 6명까지 동시 진행이 가능한 전략 게임으로 2:2나 3:3 팀플레이도 가능한, 꽤 스케일 큰 게임이다.
설명서에는 1:1의 경우 평균 게임 시간이 90분이고 6명이 즐길 경우 240분이라고 써있을 정도로 플레이 타임도 길다. 게임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고, 진행을 위해선 숙지해야 할 사항이 많아 진입의 벽이 다소 높다는게 단점이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함께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스타 보드게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
거의 대부분의 게임 용어가 원작과 동일하기 때문에 PC 패키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조금이라도 해본 유저라면 보드게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이 게임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자원 지역을 점령하고 질럿이나 저글링 같은 원작에 나오는 것과 동일한 유닛을 생산해 적과 싸우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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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퀄리티가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종이말이 아닌 게 어딘가? |
■ 게임의 준비 |
세력 & 행성의 선택
게임은 세력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종족은 원작과 동일하지만 한 종족이 두 세력으로 나뉜다. 테란, 저그, 프로토스가 각각 2개씩, 그러니까 총 6개 세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종족은 같은데 세력이 다르다고 해도 특성은 모두 같으며 단지 '특별 승리조건'이 조금 다를 뿐이다.
▲ 이것을 행성이라 부르는데, 여기에 항로를 이어 붙여 게임판을 만든다 |
세력을 선택하면 이제 플레이어의 행성을 2개씩 선택해야 한다. 뽑기든 가위바위보든 원하는 방식으로 행성을 선택했다면 해당하는 행성의 판이 플레이어의 시작 위치가 된다. 이를 원작처럼 표현하자면 선택 행성 중 하나가 스타팅 포인트가 되는 것이고, 해당 행성의 지역(행성 안에 포함된 칸)에 커맨드센터나 해처리 같은 본진 건물을 위치시켜야 한다.
▲ 항로(행성을 잇는 통로)에 수송선을 두어야 유닛 이동(공격)이 가능하다 |
플레이어는 모두 절대로 고갈되거나 빼앗기지 않는 기본 자원이 주어지고 여기에 추가로 행성마다 존재하는 자원을 채취할 수 있다. 보드게임에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미네랄과 가스의 두 가지 자원이 존재하는데, 각 행성마다 채취 가능한 자원의 양이 다르고 특정 자원은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서 처음 시작시 행성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승리조건
이 게임의 포인트는 일꾼을 생산해 자원을 채취하면서 건물을 짓고 유닛을 생산해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거나 적을 전멸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의 경우 적을 전멸시키는 게 유일한 승리조건이지만 보드게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승리조건이 존재한다.
a. 점령 점수 15점 획득 b. 특별 승리 조건 달성 c. 적 전멸 |
■ 계획 - 실행 -재편성 세 단계로 진행 |
계획 단계
게임은 명령 토큰을 행성 위에 쌓아 두는 것으로 시작되며 이를 '계획 단계'라고 한다. 명령 토큰은 '이동'(유닛의 이동과 전투), '건물 건설/유닛 생산', '연구'(이벤트카드&전투에 도움이 되는 카드 구입 및 획득)의 세 가지로 구분되며, 플레이어는 각각 4개의 명령 토큰을 행성 위에 뒤집어 올려두어야 한다. 올려두는 차례는 플레이어 순서에 따라 번갈아 1개씩 올려야 하고 이렇게 모두 토큰을 쌓아 두었다면 계획 단계가 종료된다.
왼쪽부터 이동, 건설, 연구 토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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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토큰 위로 적의 토큰이 올라갈 수도 있다 |
실행 단계
계획 단계가 종료되면 이제 '실행 단계'로 이어진다. 계획 단계가 명령을 내리는 단계였다면 실행 단계는 그 명령을 실행하는 단계이다. 플레이어는 순서에 따라 자신의 토큰을 위에서부터 뒤집어 원하는 명령을 실행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사용하는 토큰이 먼저 뒤집어 둔 토큰이 아니라 가장 위에 올려져 있는 토큰이라는 점이다.
만일 내 차례에 내 토큰이 모두 다른 플레이어의 토큰 밑에 깔려있다면 어떠한 명령도 실행할 수 없고, 대신 '이벤트 카드'(소소한 혜택을 주는 카드) 한 장을 뽑고 다음 차례에게 실행권을 넘겨야 한다. 다른 플레이어가 내 토큰 위에 있는 토큰을 모두 실행하면 그 때는 명령을 실행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이미 내가 하려고 했던 명령이 무의미해 질 수도 있다.
▲ 다양한 도움을 주는 이벤트 카드, 후반으로 갈 수록 강력한 이벤트 카드가 나온다 |
그런 이유로 계획 단계에서는 항상 상대방의 명령을 잘 예측해 토큰을 쌓아야 한다. 상대방이 내 명령을 예측해 방해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에 이런 심리전을 잘 이용해 내 명령을 의미없는 명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혹은 상대방 명령을 의미없는 명령으로 만들기 위해 토큰 하나로 적절한 심리전을 구사하여야 하는 것이다.
명령 토큰을 이용한 심리전 |
재편성 단계
행성 위에 명령 토큰을 남김없이 사용했다면 이제 '재편성 단계'로 넘어간다. 재편성 단계는 실행 단계를 정리하는 단계라 볼 수 있다. 적에게 점령당한 지역에 아군 건물이나 일꾼 혹은 자원이 있다면 파괴시키고 자원을 넘겨줘야 한다. 후에 승리조건을 충족한 플레이어가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일꾼을 가스와 미네랄에 적절히 배분한다(자원은 누적되지 않기 때문). 마지막으로 순서에 따라 이벤트 카드를 사용하면 재편성 단계가 종료된다. 그러면 한 차례가 끝난 것으로 다시 계획 단계로 넘어가 명령 토큰을 쌓아둔다.
▲ 자원 누적이 안 되는 만큼 유닛 생산에 드는 소모 자원은 저렴한 편 |
■ 재미는 있지만 시작이 어렵다 |
입문의 벽
일단 이 게임을 두고 누군가 재미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음~ 괜찮아 할만 해"라며 권해주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가 "오 이거 할만 하네"라고 느낄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게임을 두세 판(1:1평균 90분*2판=170분) 이상은 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룰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아도 숙지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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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는 전투카드(공격력, 체력, 기술 결정)를 이용하여 처리 |
복잡하지 않지만 숙지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문장이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맞고를 예로 들어 보자. 맞고의 룰은 간단해서 누구든 쉽게 익힌다. 맞고의 문제점은 점수 계산인데 이는 점수판만 있으면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러나 스타 보드게임은 다르다. 맵을 만드는 방법, 전투 처리 방법, 이벤트 카드의 뽑는 시점과 사용 시점, 건물의 쓰임새 등 읽어 보면 별 것 아니지만 하나라도 숙지를 못하면 게임 시작이 불가능하다.
▲ 건물은 기지 방어나 유닛 생산등에 도움을 준다 |
가이드를 탄탄히
이런 이유로 이 게임은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면 '부루마불'같이 비교적 단순하고 가벼운 게임을 선호하거나 혹은 평소 보드게임을 즐기지 않는 라이트 유저들에게 더욱 입문의 벽이 높게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이트 유저든 보드게임 매니아든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내용의 정확한 숙지일 것이다.
그러나 설명서 정독에도 하루가 꼬박이 걸리는 것을 게임 한두 판에 정확히 숙지할 수는 없다. 설명서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모든 내용이 상세히 잘 쓰여있어 좋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상세한 면이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인상도 강하다. 하여 앞으로라도 축약되거나 정리된 설명서를 배포하는 방법을 고려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연구 명령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 기술카드의 일부 |
또한 설명서를 봐도 잘 이해가 안 돼 진행이 막힌다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점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러 게임을 많이 즐겨본 유저들은 용어나 진행이 낯설지 않겠지만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는 아예 엄두를 못 낼 수도 있다.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고객센터에 전화문의를 하거나 이메일 문의를 하는 것이겠지만 귀로 듣거나 글만 봐서는 이해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 게임 후반부에 랜덤으로 등장하는 이벤트 카드 |
개인적으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모든 유저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고스럽겠지만 정상적인 게임 진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진행이 막힌 유저는 막힌 부분만 참고하면 되고, 어찌 어찌하여 게임을 진행했던 유저들도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참고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각오가 되었다면 후회는 없다
게임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긴 하였지만 초보자 중심의 가이드를 보강한다 하더라도 게임의 특성상 입문의 벽은 쉽사리 낮추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스타 보드게임의 한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재미가 있으니 각오가 되어있는 유저에게는 흠을 찾기 어려운 게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