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오래 두고 천천히 살펴 보아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들이 있다. 인간관계가 장인의 손때묻은 연장 만큼이나 세월을 거듭해야 의미를 더하듯 그러한 것들은 최첨단을 달리는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 빠르고 더 편안하며 더 세련된 것, 그러니까 '스마트하다'는 표현으로 쉽게 접하게 되는 것들은 첫 만남 이후 일년 혹은 상황 따라 반년이면 더 이상 '스마트' 한 느낌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근자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스마트하지 못한, 적어도 첫 느낌에서 그러한 인상을 받을 수 없던 것들이 더 눈에 띄고 실제로도 오래 머물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다. 신차가 나와 누구보다 빠르게 만나고 타보면 대부분 빠르고 편리하면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흠을 찾을 수 없는 보통 'A등급' 이상의 상품성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어쩌다 몇개월 지나 그 때 그 차를 다시 타보면 불편한 부분이 하나둘, 그새 구식이 된 모습들이 마음 한 편을 찌른다. 이러한 것들이 비단 자동차 뿐 이겠냐만은 쓰임이 '스마트'해 이름도 '스마트폰'인 그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시간이 흘러도 고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모델들이 있으니 최근 시승한 지프의 랭글러 루비콘이 그랬다.
정확한 차명은 지프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으로 5인승 4도어 모델이다. '지프'하면 '정통 오프로더'가 바로 떠오르듯 시승차 역시 1박 2일의 시간 동안 일반 온로드는 물론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한결같은 승차감과 안정성을 보여줬다.
외관은 좀처럼 변화를 찾을 수 없는 전면부 7개의 수직그릴을 중심으로 좌우측 둥근 헤드램프, 사디리콜 휠 하우스로 랭글러 특유의 정체성을 반영했다. 물런 이부분은 이르면 올 연말께 국내서도 출시될 풀체인지모델에서 조금의 변화가 이뤄지나 여전히 큰 틀에선 랭글러를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시승차의 화려한 외장 컬러에 비해 실내는 단출한 모습이다. 실내 대부분은 최근 디지털화 되는 추세와는 담장이라도 쌓은듯 물리적 버튼으로 채워졌다. 그렇기에 랭글러 루비콘의 실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센터페시아 상단 6.5인치 디스플레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터치스크린 방식이 적용되고 USB 단자도 찾아 볼 수있다. 이와 더불어 나름 최근 트렌드에 맞춘다고 오토 라이트 기능, 후방 카메라 파크뷰 시스템 역시 탑재됐다.
랭글러 루비콘에는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284마력, 최대토크 35.4kg.m을 발휘한다. 정지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다보면 80km/h 이하 저속에선 단단한 승차감과 함께 높은 차체은 먼 거리 시야 확보에 도움이다. 엔진회전수가 상승할수록 2톤이 넘는 차체는 의외로 가뿐히 움직인다. 다만 운전대의 조향감은 동급 SUV와 비교해 적어도 온로드에선 둔감하다. 특히 회두성(回頭性)이 떨어지는 운전대 반응은 좌우측 커브길을 빠져나와 직진코스로 진입 시 차체가 한쪽으로 쏠리며 불안한 모습도 연출한다.
수치상으로 향상된 엔진의 성능을 경험하기 위해 과감히 가속페달에 힘을 실었다. 계기판 우측의 rpm 게이지가 2500에서 4000으로 상승하며 엔진에서 큰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속도계 바늘은 더디게 오르고 100km/h 이상의 속도에선 과도한 풍절음과 함께 육중한 차체로 인해 뒤뚱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운전대의 이러한 반응은 오프로드에선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극한 노면조건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전자식 전복방지장치(ESP, ERM), 내리막 주행 제어장치(HDC), 경사로 밀림 방지장치(HAS)와 험로 탈출을 위한 구동력 잠금장치(AXLE LOCK), 스웨이드바 분리장치(SWAY BAR) 등의 시스템 탑재는 왜 랭글러가 정통 오프로더의 아이콘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랭글러 언리미티드 루비콘의 가격은 4,840만원이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