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는 누구나 쉽게 녹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오랜 세월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뛰어난 음질의 CD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CD 녹음이 쉬워진 오늘날엔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됐다. 이젠 MP3이 대중화되면서 CD 역시 내리막길을 걷는 추세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잠식하고 대체하는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액셀을 밟는 발끝의 움직임을 읽는 방식 또한 디지털화되는 추세다. 지금까지는 액셀 페달의 움직임에 따라 케이블을 밀고 당겨 드로틀을 여닫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젠 페달이 스위치로 변해 밟는 양에 따라 전기 신호를 보내 전동 모터로 드로틀을 여닫는 드로틀 바이 와이어(throttle by wire)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이 와이어 기술은 스티어링 시스템에도 녹아들고 있다. 엔진의 힘을 빌려 운전자가 스티어링을 조작할 때 드는 수고를 더는 유압 펌프식 파워스티어링은 이제 전동-유압식의 과도기를 거쳐 전동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앞으로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drive by wire) 기술은 자동차 각 부분의 기계적 연결을 빠른 속도로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의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페달을 힘껏 밟으면 브레이크 호스 안의 브레이크액이 마스터 실린더를 통해 네 바퀴로 전달된다. 브레이크액이 각 바퀴의 브레이크 캘리버 속 실린더로 들어가 피스톤을 밀면 덩달아 브레이크 패드와 로터가 붙어 마찰이 생겨 차를 멈추게 된다. 제동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로터와 패드의 크기를 키우고, 피스톤 개수를 늘려야 한다.
현재 널리 쓰고 있는 브레이크 시스템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운전자의 발끝 움직임이 제동으로 연결되기까지 수많은 부품이 기계적으로 맞물려 있다. 액셀 혹은 스티어링 시스템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브레이크 시스템의 디지털화가 상대적으로 더뎠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Technology made Simple
지난 2005년 독일 지멘스(Siemens)사는 프랑크프루트 모터쇼에서 전기 웨지 브레이크(Electronic Wedge Brake, 이후 EWB)를 선보였다. 브레이크 시스템에 바이 와이어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접목해 완성한 시스템이다.
EWB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이전의 브레이크와 같다. 패드와 로터의 마찰을 이용해 자동차를 정지시킨다. 다만 이전엔 유압식 실린더가 패드를 로터에 밀착시켰던 반면 EWB는 전동 모터와 연관된 시스템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기술은 모든 걸 심플하게 만든다는 지멘스의 슬로건처럼, EWB는 이전의 브레이크 시스템보다 훨씬 간단한 구조를 갖췄다. 브레이크 라인과 브레이트 액, 마스터 실린더, 캘리버 안쪽의 피스톤이 사라진 것이다.
지멘스 EWB 시스템은 크게 5가지로 부품으로 구성된다. 브레이크 캘리퍼, 브레이크 디스크, 브레이크 패드, 전동 모터, 웨지 베어링 세트다. 이 가운데 웨지 베어링 세트가 EWB 기술의 핵심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양쪽 모터(3, 4)에 연결된 롤러 판(6)이 좌우로 움직이게 된다. 브레이크 패드와 연결된 롤러 판(2) 사이엔 웨지(wedge) 롤러 베어링(5)이 자리 잡고 있다. 이때 모터에 연결된 롤러 판(6)이 움직이면서 올록볼록한 면이 웨지 베어링과 부딪치며 좌우뿐만 아니라 아래위로도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서 패드를 밀착했다 놓았다 하는 식이다. 이전 캘리퍼 크기의 공간에 모든 구조물을 넣었다. 여기에 얇은 전선 몇 가닥을 브레이크 페달에 연결했다.
EWB 시스템의 장점
4EWB 시스템을 쓸 경우 브레이크 페달은 자동차 어디든지 달 수 있다. 기계적 링크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으니 굳이 발로 밟을 이유도 사라진 셈이다. 전기 신호를 이용하기 때문에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등 원하는 곳 어디든 달 수 있다. 물론 운전방법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긴 하다.
EWB 시스템은 단지 구조가 간단하고 무게가 가벼운 브레이크 시스템이 아니다. 반응이 훨씬 빠른 시스템이다. 브레이크액이 전달되면서 실린더 피스톤을 눌러 패드에 밀착하는 것보다 전선 신호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또한 최적의 브레이킹 효과를 내기위한 브레이크 답력을 찾아 설정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제동거리가 줄어든다. 아울러 ECU가 전기 모터를 작동하기 때문에 ABS 유닛 없이 프로그램만으로 ABS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ABS나 다른 전자제어 장치와 연동하여 작동할 수 있다. 네 개의 바퀴를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편제동을 막고 반대로 편제동을 이용하여 달리는 코너에서 브레이크를 조절하여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조절할 수도 있다.
2007년 4월 지멘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빙판길이나 눈길에서 EWB 시스템을 단 테스트 카가 이전의 유압식 브레이크 자동차보다 제동거리를 훨씬 줄였다고 전했다. ABS를 곁들인 유압식 브레이크를 단 차가 빙판에서 75m만에 멈춰섰을 때 EWB로 세팅된 같은 조건의 테스트 카는 64.5m를 기록했다. 제동거리를 15% 정도 단축한 셈이다.
지멘스는 현재 EWB를 작동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 테스트 중이다. 현재 EWB 시스템엔 두 개의 전기모터가 들어가는데, 이를 하나로 줄이고 반응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캘리퍼의 크기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멘스는 2010년 EWB를 양산차에 달 계획이다. 꿈의 브레이크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